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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May 23. 2024

학교 다닐 때 기억에 남는 일

심리학의 이해는 전공 기초수업이었다. 1학년들은 전공기초 수업 중 몇 개를 듣고 2학년에 올라가며 과를 정했다. 책을 여러 권 내시고 각종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교수님이라 수업 수강신청은 꽤 치열했다. 윤혜는 그 수업을 들으러 학관에 처음 가봤다. 학관의 가장 큰 강의실에서 진행되는 수업이라 윤혜는 늘 일찍 가서 기다리다 이전 수업이 끝나고 문이 열리자마자 강의실에 들어갔다. 눈이 나빠서 큰 강의실에서 하는 수업은 꼭 앞자리에 앉아야 했다. 렌즈는 알레르기가 있어서 몇 번 시도하다 포기했고 안경은 콧등이 아프다는 이유로 맞추지 않았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는 것으로 안경을 대신했다. 중간고사 이후 첫 수업이었는데 윤혜는 어김없이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아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웅성웅성하더니 남학생 서넛이 앞쪽으로 들어왔다. 한 명은 집채만 한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남학생 두 팔에도 다 들어가지 않는 커다란 꽃다발이었는데 윤혜는 그렇게 큰 꽃다발을 처음 봤다. 하얀 꽃잎 여러 장 가운데 노오란 점이 콕 박혀있는 꽃 수십 송이가 광택 없는 검은 포장지로 둘러싸여 오간자 소재의 노란 리본에 묶여 있었다. 윤혜는 그 꽃을 심리학의 이해 교재 면지에 그려놓았다. 나중에 그 꽃 이름이 마가렛이라는 것을 찾아냈다. 남학생들은 각자 역할이 있었다. 한 명은 노래를 틀었고 한 명은 강의실 중간에 앉아 있던 여학생을 데리고 나왔고 나머지 한 명은 꽃가루 비슷한 것을 뿌리려고 준비 중이었다. 집채만 한 꽃을 든 남자는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남학생은 노래를 꽤 잘 불렀다. 윤혜가 좋아하는 김필 목소리와 검지 손톱만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노래가 끝나자, 남학생들은 일사불란하게 꽃가루를 치웠고 어느새 앞문에 들어와 계시는 교수님께 꾸벅 인사를 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학우 여러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리는 집채만 한 꽃다발을 들고 재빠르게 퇴장했다.  오늘 태어난 여학생 머리 위에는 아직 왕관이 남아있었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자리로 돌아갔다. 윤혜는 감동받았다기보다 창피한 쪽일 거라 생각했다. 교수님은 미리 와서 허락을 구한다면 수업 시작 후, 3분까지는 이해해 주겠다고, 많은 고백과 축하를 기다리겠다고 말씀하셨다. 윤혜는 교재를 넘기며 수업할 곳을 찾았다. 윤혜의 고개가 격하지 않게 좌우로 여러 번 흔들렸다. 팔랑거리며 꽃가루 몇 개가 윤혜 머리에서 떨어졌다. 윤혜는 수업 내내 저 학생은 감동했을까, 창피했을까를 따져보느라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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