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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喪家)에서 우는 사람은 제 설움에 운다

불편한 블루스

by rosa

상가(喪家)에서 우는 사람은 제 설움에 운다는 말이 떠올랐다. 엄마가 무슨 설움에 저리 사설조차 없는 눈물을 쏟아 내는 것인지 선영은 이해할 수 있었다.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약골인 아버지에게 시집와서 며칠 전 중환자실에 들여보낼 때까지 엄마의 지극 정성은 누가 봐도 감동 그 자체였다.

아버지가 서른일곱, 선영이 초등학교 3학년 봄날이었다. 학교를 파하고 온 어린선영 눈앞에 무당이 사물 장단에 맞춰 미친 듯이 춤 추고 있었다. 무서워서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마당 구석에 숨어 있는데 옆집 노인이 다가왔다. 얼른 들어가서 깃발을 뽑으라고 했다.

“ 아가야 어서 깃발을 하나 뽑거라.”

선영이 아직 깃발에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 무당은 파란색,빨간색 깃발을 허공에 흔들어 댔다. 귀신이 물러갈 것을 소리치고 있었던 기억이 그날 울리던 장구소리 꽹과리 소리와 함께 어린선영에게 오래 동안 남아 있었다.

요즘에는 굿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으나 1970년대에는 하루 걸러 한 번씩은 꽹과리 소리가 들렸다. 누구나 어려웠던 그때, 살기 힘든 사람들에게 무당은 의사보다 가까웠다. 굿을 생각할 정도의 여유가 없었던 연이가 굿을 하게 된데도 사연이 있었다.

아직 연이가 교회에 나가기 전이었다. 언제나 바람 앞에 촛불 같던 남편 건강을 염려하며 여기저기서 돈 안 드는,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방책들을 알아보던 시기였다.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는 표시라며 대문 앞에 정화수를 떠 놓았던 바로 그날이었다.

“ 이 집에 병자가 있구나?”

“ 어찌 아시고… ”

“ 영험한 우리 장군님이 현몽하여 어서 가서 조상 제사 지내라 하셔서 왔네.”

“ 저희는 그럴 돈이 없어요.”

“ 잔말 말고 돼지 머리 잘 난 놈으로 하나 올리고 떡 한 시루만 찌거라. 나머지는 다 내가 알아서 한다.”

굿 한번 하면 집 한 칸 값을 긁어 간다고 소문난 만신이 제 발로 들어와서 무료 굿을 한다는데도 연이는 걱정이 앞서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무당의 주도하에 결국 계획에 없던 굿판이 벌어지게 되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그녀가 왜 이런 판을 벌이게 되었는지 사연을 들었다.


‘병자를 살려내지 못하면 너를 치리라.’ 무당이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인 명을 받고 시작했다는 엄청난 규모의 굿판이었다. 굿판은 2박 3일 동안이나 계속됐고 무당을 믿지 못하겠다고 버티던 아버지도 결국 3일째 날에 깔아 놓은 멍석에 엎드려서 눈물을 쏟아 냈다.


그러나 아버지 병세는 크게 호전되지 않았고 엄마의 새로운 방책에 대한 정보 수집은 계속되었다.

어린 자식을 셋이나 두고 젊은 아빠가 진짜로 죽을 것 같은 공포는 엄마에게 별별 짓을 다하게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봐도 엄마가 선택 한 방법들은 하나 같이 이해할 수 없는 것 들이었다. 어느 새벽 에는 아직 잠이 깨지도 않은 우리 가족을 모두 불러 앉히고 백설기를 먹인 적도 있었다, 그것도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지나가던 도사가 칠일 동안 쌀을 맨손으로 가루를 내어서 떡을 찌고 온 가족이 함께, 그것도 남들이 보기 전에 다 먹어야 아빠가 오래 살 수 있다고 했단다. 엄마는 그 말을 믿고 일주일 동안 정성스레 백설기를 찌어 새벽마다 가족에게 먹였다. 영문 모르는 우리 삼 남매는 귀찮게 한다고 화내는 아빠의 불평을 반쯤 뜬 눈으로 지켜보며 백설기를 먹었다. 이후에는 다시 맛볼 수 없던 귀한 맛이었다. 엄마 손은 쇠 절구 공이 때문에 물집이 가득했지만 아빠 목숨을 건지기 위한 노력은 그치지 않았다. 어떤 방법이 효험을 본 건지 알 수 없지만 아버지는 차차 병치레가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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