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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막 시작되던 어느 저녁 무렵이었다

불편한 블루스

by rosa

가을이 막 시작되던 어느 저녁 무렵, 엄마는 친구들과 놀고 있는 나를 동생들 모르게 불러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는 동네초입 중국집으로 갔다.

“자장면 한 그릇만 주세요.”

갑작스러운 엄마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윤기 흐르는 자장면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 우~욱 ”

엄마는 한 젓가락을 뜨다 말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한참 후 돌아온 엄마는 내가 먹는 모습을 조금 떨어져서 보고만 있었다. 자장면조차 가족 모두를 불러 먹일 수 없는 형편이 일상이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나는 엄마가 막내 동생을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 밥 냄새가 너무 싫어서 …”

엄마는 심한 입덧으로 열 달 내내 고생했고 덕분에 맏딸인 나는 종종 엄마 대신 밥을 지어야만 했다. 그렇게 나와 열한 살 터울로 막내 동생이 태어나서 우리는 사 남매가 되었다.

착한 엄마를 두고 아빠는 며칠씩 사라졌다가 취한 채 돌아와서는 온 집안을 때려 부쉈다. 엄마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주먹질도 해댔다. 어린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방문은 아빠 발길질에 여기저기 구멍이 뚫렸고 유리창은 모두 깨지고 가구는 부서졌다. 엄마는 구멍 난 문짝 위에 낡은 달력에서 그림을 오려 내어 틈을 메웠고 비닐을 덧대어 깨진 유리 대신 바람막이를 삼았다. 엄마의 손은 유리에 베었고 주먹질에 벌게진 얼굴에는 핏물이 흐르기도 했다. 우리가 꽤 커서까지 엄마의 수난은 되풀이되었으나 우리는 엄마의 방패가 되어 주지 못했다.

아빠에 대한 기억은 두려움이 전부였고 상대적으로 엄마에 대한 연민은 자식들 속에 깊이 자리하여 언제부턴가 아빠와 우리는 다른 무리가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아빠와의 간격은 좁혀지지 않았다. 엄마는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아빠에 대한 이해를 호소했었다.


“ 아빠를 미워하면 안 돼. 아빠는 아주 어려서 엄마를 잃고 계모 밑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거든.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러서 그러는 거니까 자식인 너희가 이해를 해야 하는 거야.”

엄마는 귀에 못이 박히게 같은 말을 되풀이했지만 자식들에게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엄마는 아빠를 욕하는 적이 없었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랬다.

엄마의 눈물겨운 노력을 늦게나마 알았을까? 연세 들면서 아빠의 태도가 조금은 달라지는 듯 보였다. 차츰 자식들과의 소원한 관계도 어느 정도 회복 될 수 있었다. 아빠가 평생 원했던 대로 두 분이 산에 들어가서 아담과 하와처럼(아빠 표현) 몇 년을 행복한 척 지낸 것을 마지막으로 아빠는 먼저 하늘로 떠나셨고 엄마는 저렇게 슬피 울고 계신다.


남은 생을 울기만 할 것 같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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