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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한 사람

by rosa

9.



이유야 어찌 됐든지 연이는 단 숨에 센터의 센터 자리를 차지했다.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운전기사부터 원장님까지 그들의 관심은 단연코 연이의 무사 등원과 안전귀가였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연이의 옆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녀가 움직일 때면 손을 잡아 주었다. 코가 땅에 닿게 허리 굽은 노인들도 연이에게 손을 내미는 건 매한가지였다. 연이는 갑자기 쏟아지는 관심에 살짝 부담을 느끼면서도 싫지 않았다.


“괜찮아요? 정말 괜찮은 거예요?” 호식이 달려와서 호들갑스럽게 연이의 안부를 물었다.

“괜찮아요, 걱정 끼쳐드려서 미안합니다.”

“나 여태 살면서 그렇게 통나무 쓰러지듯 넘어가는 거 처음 봤거든요. 완전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내 심장 고장 나면 연이 씨 때문인 줄 아세요.”


역시 호식답다. 마무리 말은 어디서 한 번쯤 들어 본 말인데 웃음으로 끝내는 걸 보면 고백은 아닌 거 같아 다행이다. 그제와 같은 아침이 반복됐다. 연이가 원한 것은 아니지만, 화끈한 이벤트를 통해 사람들과 가까워진 듯해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다.


노래방 화면이 켜졌다. 다른 주간보호센터에 다니고 있는 친구에게 노래 시간에 대해 이미 들은 바가 있어서 연이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예상했던 대로 시작은 호식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 호호.’ 연이는 좌중을 둘러보며 모인 이들 중에서 호식과 연이가 그중 젊은 축에 든다는 걸 알았고 활달한 호식이 먼저 나설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익숙하게 번호를 외워서 누르는 호식의 손길이 예사롭지 않을 걸 보면 ‘노래방에 돈깨나 바쳤겠다.’라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었다. 신나는 반주가 나왔다.


언제나 내겐 오랜 친구 같은

사랑스러운 누이가 있어요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누이

(중략)


언제나

사랑하고 있어요

영원히

사랑하고 있어요


연이는 노랫말에 신경을 써 가며 호식의 열창을 들었다. 멋진 노래를 기대했던 것이 무색하게 호식은 노래를 망쳤다. 아니 그것이 호식의 노래실력 전부인 것 같았다. 연이는 좋은 노래 하나 알게 돼서 좋았다 생각하며 손뼉을 쳤다. 노래 못하는 사람이 유독 마이크를 놓지 않으려 한다더니 노인들도 다르지 않아 보였다. 호식은 그 후에도 두곡을 더 불렀고 역시나 꽝이었다. 어지간히 불렀는지 세 번째 곡을 마친 호식이 사회자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 혜성 같이 등장해서 우리 모두를 심장마비 걸려 죽게 만들뻔한 우리 센터의 막내 사 연이 양을 소개합니다. 박수!!!”


‘ 막내라고, 어이없네.’ 호식의 멘트가 살짝 거슬리기는 했지만 연이는 웃는 얼굴로 마이크를 받아 들었다.

“처음 오자마자 여러 어르신들을 놀라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예의 바른 연이는 몸에 밴 인사성을 십분 발휘하며 정중한 인사를 하고 호식의 도움을 받아 선곡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사랑의 괴로움을 몰래 감추고

떠난 사람 못 잊어서 울던 그 사람

(중략)


안녕이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지금은 어디에서 행복할까

어쩌다 한 번쯤은 생각해 줄까

지금도 보고 싶은 그때 그 사람


노래하면서 연이는 딸과 함께 이 노래를 부르던 때를 회상하고 있었다.

딸이 대학 3학년 때였다. 축제에 초청되어 다른 참가자들과 어울려 장기자랑을 했던 그때 불렀던 노래. 연이는 이곡을 십팔번 삼아 부르곤 했다. 국민학교 밖에 다니지 못한 설움을 딸에게서 풀어 보고자 힘들었던 살림살이에도 딸을 대학교에 보냈을 때 연이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비록 처음 원했던 대학에서는 낙방했어도 딸은 어렵다는 간호학과 공부를 장학금을 받고 다닐 정도로 우수한 학창 시절을 보냈고 그 덕분에 연이는 주치의를 옆에 둔 것처럼 든든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며 행복을 느꼈다.


“우와~~ 아 잘한다.”

“가수다 가수야!!”


우렁찬 함성과 함께 박수가 쏟아졌다. 선생님들도 원생들도 이구동성으로 연이의 노래를 칭찬했다.


‘노인들도 이렇게 표현을 할 줄 아는구나!!’ 연이도 예상치 못했던 반응에 놀라고 있었다. 그때 수줍어하는 연이를 귀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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