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연이는 첫날 그를 소개받았을 때 떨림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백 지만입니다.'
그녀는 젊을 때 에도 반듯한 저음의 목소리로 예의 바르게 말하는 남자에게 끌렸었다. 남편도 그런 편에 속했다. 연애 한 번 못해본 연이가 처음 본 남자, 오빠 친구였던 그 사람이 결국 연이의 단 한 사람 남자가 되었다. 적어도 약혼 시절까지 남편은 어린 연이가 그리던 이상형이었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보일 때 연이는 ‘이 사람의 어머니 역할까지 해 주겠다.’ 생각했고 평생을 바쳐 성실한 아내이고자 노력했다. 남편은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아내에게 항상 불안했었다. 마음으로는 넘치는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방법을 몰랐다. 그의 서툼은 점점 더 어린 아내에게 상처를 내었고 평생 지울 수 없는 못 자국으로 연이 가슴에 깊이 남았다.
‘전선야곡 ’
노래방 화면에 네 글자를 보면서 연이는 여전히 남편을 떠 올렸다. 그는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평소에는 조용히 듣기만 했고 어쩌다 기분 좋게 취한 날이면 골목 밖에서부터 노래를 불렀다.
전선야곡
불효자는 웁니다.
비 내리는 고모령
두만강 푸른 물에
노래들의 공통점은 어머니, 그리움이었다.
노년에 산속 생활을 몇 년 했을 때 남편이 가장 좋아했던 것은 오디오 볼륨을 한껏 올리고 본인이 만든 스피커를 통해 노래 듣는 것이었다. 뒤늦게 결혼생활을 즐기던 두 사람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울리던 그 노래. 연이는 지만의 선곡에서 남편을 보고 있었다. 그의 노래는 단정한 외모만큼이나 준수했다. 특별한 기교 없이 담백하게 부르는 노래를 통해 연이는 주책맞은 설렘을 느꼈다.
정안 수 떠놓고서 이 아들의 공비는
어머님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
아아아 쓸어안고 싶었소
연이는 노래를 듣는 내내 다가오는 떨림에 지금 당황하고 있다. 이 나이 먹도록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설렘. 반주가 끝날 무렵 연이가 살짝 눈물 찍어내고 있는 순간을 지만이 유심히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