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 엄마, 나 쉬는 날인데 점심 맛있는 거 먹을까요?”
“ 딸 쉬는 날은 자야지 괜찮겠어?”
엄마는 항상 좋으면서 그렇게 한 번 더 질문하는 분이다. 선영은 그런 엄마를 잘 알기에 더 물을 필요 없이 엄마를 모시러 주간보호센터에 갔다. 힘들 때면 고기를 드시고 싶어 하는 엄마의 식성도 이미 아는데 엄마 역시 고기를 싫어하는 딸의 식성을 알기에 오늘도 변함없이 연이가 고른 메뉴는 냉면이었다.
아빠랑 함께 가족들이 자주 들르던 식당.
아빠가 떠나신 후 처음 들른 식당, 자주 앉던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주문을 하고 선영은 목에서 우두둑 소리 나게 고개를 돌렸다. 그때 눈을 의심하게 하는 한 분이 거기 있었다.
“ 아빠?”
중절모를 단정하게 쓴, 뒷모습이 돌아가신 아빠를 빼다 박은 어르신이 보였다.
“ 엄마, 저기.”
“ 엄마는 들어오면서 봤지, 딸은 이제 봤구나?”
엄마도 돌아볼 만큼 닮은 어르신. 선영은 어르신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아빠가 떠난 지 어느새 이년이라는 시간이 이 지나고 있었다. 물론 한 달에 한 번은 아빠 계신 납골묘에 꽃 들고 가서 참배하고 방명록에 편지도 남겼었다. 그런데 선영이 그만큼 아빠를 그리워하고 있었는지 스스로 알지 못했다. 주문을 받으러 직원이 왔지만 선영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머쓱해하는 직원에게 연이가 대충 상황을 설명하였다. 보고 또 봐도 아빠와 너무 닮은 그 어르신은 혼자서 냉면을 드시고 있었다.
눈물을 수습하고 선영은 계산대로 갔다.
“ 저기 계신 어르신 자주 오시는 분이세요?”
“ 네 저희 단골이세요, 가끔 저렇게 혼자 오셔서 식사를 하세요.”
“ 저 어르신 식사비를 제가 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 어르신 단골이시라 저희가 잘 아는데 돈 많으신 분이세요. ‘
“ 돌아가신 제 아버지와 정말 많이 닮으셨어요. 그냥 아버지 생각나서 그러는데 한 번만 식사 대접하고 싶어서 그래요. 제가 냈다 하지 마시고 나가 실 때 간단히 설명하시고 늘 건강하시길 바란다고 인사만 전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선영이 자리에 돌아오고 멀지 않아서 식사를 마친 어르신이 계산대로 향하였다. 직원에게서 상황을 전달받으신 어르신은 잠시 당황한 듯했으나 아버지 생각해서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항상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전하고 갔다는 말을 듣고는
“ 하늘에 가 계신 아버지가 딸을 많이 아끼셨나 봅니다. 혹시 다음에 또 오거든 잘 대접받았고 고맙게 생각한다고 전해주세요.” 라며 인자한 미소를 남기고 떠났다.
그날 모녀는 행복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아빠에게 향했다. 높직한 자리에서 두 여자를 내려다보시는 아빠가 “ 딸, 오늘 참 잘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선영 눈에 연이도 오랜만에 편안해 보였다. 엄마 역시 그 어르신에게서 아빠의 모습을 보신 듯했다.
두 여자에게 한 남자가 무척 그리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