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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

by rosa May 15. 2024

14.      





  점심 먹고 두 시까지는 오수(午睡) 시간이다.

  꼭 잠을 자는 것은 아니지만 낮잠 이불을 각자 펴고 누워 쉬는 시간.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등원한 때문인지 오전 내 프로그램에 참여하느라 피곤했던 노인 원생들은 모두 이 시간을 좋아했다. 물론 등원하자마자 이불을 깔고 누워서 하루를 보내는 삐딱이 들은 여기에도 있다.   

  

  호식은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코 고는 소리로 침상을 흔든다. 지만은 빨리 이어폰 사용에 익숙해져서 이 시간의 자유를 지키고 싶다 생각하며 누웠다.     

  잠이 청해 지질 않는다.     

  아까 들었던 연이의 노랫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젊은 시절부터 알고 있던 노래이기는 한데 연이를 통해 전해지는 노래 말 한 소절 한 소절이 새롭다.    


    '외로운 병실에서 기타를 쳐주고

     위로하며 다정했던 사랑 한 사람'         

  그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을 하다 멋쩍게 지만이 미소를 흘린다. '노래 가사잖아 크크'   

  그렇게 지만도 오수(午睡)에 빠져들고 있었다.     

   

  할머니 전용 건넌방에 누운 연이는 왼쪽으로 돌아서 고른 숨을 쉬고 있다. 허리가 아픈 이후부터 연이는 바로 누워 잠들 수가 없었다. 항상 왼편으로 누워 팔을 베개 삼아 깔고 눕는 연이의 수면자세는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했지만 연이는 그것이 오히려 편했다.   

  

  연이는 결혼 이후 한 번도 낮잠이란 것을 즐겨본 적이 없다. 스무 살 새댁 시절에는 시부모님을 모셔야 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쳐도 분가해서 조차 연이는 낮잠을 즐길 형편이 안 됐었다.     

  퉁명스러운 남편은 목수 일을 했다. 시아버님도 이름난 대목이셨고 남편 역시 인근에서는 솜씨 있다 알려진 말하자면 가업을 이은 셈이었다. 남편은 겨울에는 일이 없어서 거의 술병을 끼고 베개를 친구 삼아 지내곤 했었다. 쉬는 시간이 길어지면 남편은 술 때문인지 오히려 더 포악을 떨었다. 연이의 겨울은 언제나 그렇게 우울과 불안을 반복했다. 남편 나이 일흔 중반 즈음에서부터 철이 났는지 사나움을 조금 덜어낸 듯하였다.

        

  연이가 낮에 아랫목에 누워 본 것은 그즈음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아주 짧은 낮잠도 연이에게 주어 진 복이 아니었는지 스스로 듣고 놀랄 정도로 심한 잠꼬대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연이는 참아 온 세월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만나는 모든 사람과 싸웠다. 가끔 실제 주먹을 날리기도 했다. 일상에서 억누른 감정들이 무의식에서 표출되는 것일까. 밤에는 그 증상이 거의 발작에 가까웠다. 잠꼬대라고 말하기 어려운 정도로 연이의 목소리는 크고 생생해서 꿈꾸는 상황을 중계방송 하는 듯했다. 그런 이유로 연이는 잠을, 특히 본인 침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자본 적이 없었다.    

      

  잠드는 대신 연이도 지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힘찬 목소리로 부르는 전선야곡은 연이도 원래부터 좋아하는 곡이라서 속으로 조용조용 따라 불렀다.            

    '어머님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    


  두 사람은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같은 장면을 공유하며 오수(午睡)를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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