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아빠가 하늘로 가시고 혼자 남아 있는 엄마는 아주 가끔만 편안한 얼굴을 했다.
“ 엄마 이제 밥시간 됐다고 급하게 올 일 없겠네요.”
“ 그러게, 평생 밥시간 걱정하고 살았는데 이제 안 그래도 되겠다.”
“ 엄마, 이제는 좀 놀면서 살아요. 친구들이랑 여행도 다니면서.”
“ 그러면 얼마나 좋겠냐만 허리가 따라 줄지 모르겠어.”
“ …….”
선영은 엄마의 말을 이어 갈 만한 문장이 생각나지 않았다. 평생을 당신 손으로는 차려 놓은 밥상 한번 가져다 드시지 않는 아빠 때문에 엄마는 한순간도 편하게 어디에 엉덩이 붙이고 수다를 떨어본 적 없이 살았다. 그러면서도 밥시간에서 일분이라도 늦으면 그 밥상은 고스란히 팽개쳐지기 일쑤였으니 밥시간에 대한 공포는 평생을 따라다닌 족쇄였다.
이제 겨우 한숨 돌리고 여유 있는 삶을 살 거라 기대했는데 칠팔 년 전부터 진단받은 파킨슨병으로 인해 엄마는 허리를 바로 펴지도 못하고 꼬꾸라질 듯 종종걸음을 걷는다. 엄마는 내색 없이 지냈지만 많이 불편하다는 것을 선영은 알았다. 관절염으로 소복이 부어 오른 무릎도 엄마의 불편을 더하는 요인이었으니 무슨 재주로 여행을 다니려나.
젊은 시절 여장부로 소문났던 엄마의 당당함을 선영은 선명하게 기억한다.
외할아버지를 닮은 엄마는 키가 컸고 몸도 날씬하여 어디서든 돋보이는 분이었다. 반면에 아빠는 160센티미터 겨우 넘는 키에 체중도 50킬로그램을 넘어 본 적이 없는 왜소한 분이었고 건강도 좋지 않았다. 까무잡잡한 데다 웃음기라고는 전혀 없는 볼품없는 남자. 어쩌면 아빠는 자신 콤플렉스 때문에 엄마에게 심하게 굴었는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는 아빠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왜 저렇게 심하게 대하는지, 엄마가 뭐가 부족하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천성이 상냥하고 활달했으며 성품도 착해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분이었다. 솜씨도 좋아서 요리, 바느질, 힘쓰는 일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았고 자동차 운전에 오토바이 운전까지 못하는 것 없이 척척 이었으니 어디서든지 빛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린 선영은 그런 엄마가 학교에 오는 것이 좋았다. 학교 운동장 저만치 끝에 있어도 엄마는 누구보다 먼저 보였고 친구들도 제 엄마보다 우리 엄마가 더 먼저 보인다고 할 정도였다. 오십을 훌쩍 넘어 육십이 되는 지금도 초등학교 동창생들은 젊은 시절 엄마를 회상하며 엄마의 안부를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이제 허리 굽고 무릎이 아파서 지팡이를 짚고도 힘들어하는 엄마를 떠올리며 선영은 가슴이 먹먹해 옴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