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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Jun 19. 2024

진짜진짜 미안해


38.      



     

   

  하루 지체한 주검이 둘째 날 오후에야 도착했다. 동생과 장조카가 시신을 확인하고 안치실에 모셨다. 마지막  아들 얼굴 보겠다는 연이를 선수가 설명 없이 부둥켜안고 막았다. 선영은 말하지 않는 이유를 짐작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연이에게 어찌 설명할지는 모두 다 빈칸, 정답을 내놓지 못했다.   

  3일장으로 하면 다음날 발인해야 하는 상황인데 동생을 그리 보낼 수 없었다. 선영이 가족회의를 열어 4일장으로 결정했다. 아버지 때처럼 준비 없이 맞이한 장례식이 또다시 선영의 몫이 되었다. 선수와 선재가 힘을 보탰다. 아직 어린 조카들이 상주로 섰지만 문상객 대부분은 형제들 손님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와 형제의 죽음은 그 무게가 확연히 달랐다. 아버지 장례 때 넷이 섰던 상주석에 조카와 삼 남매가 나란히 서니 영원히 공석일 큰 동생의 자리가 도드라졌다.  벌써 찾아온 그리움이 썰렁한 가을밤을 한층 스산하게 했다.


  입관식. 가족들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시간은 그때도, 지금도 슬픔 골이 깊었다. 연이를 생각해서 가장 짧은 입관절차로 진행해 달라는 선영의 부탁을 상조회사 직원이 착실히 이행했다. 얼굴까지 수의로 가린 시신 가슴에 꽃 한 송이 놓는 것으로 유족의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마침내 관뚜껑이 덮였다.


" 어이고 아들아 너 가는데 왜 얼굴을 안 보여주는 거니. 선길아, 아범아." 연이를 시작으로 견딜 수 없는 가족의 오열이 동시에 터졌다. 가족들 눈물에라도 위로받고 험한 길 편히 가라고 하늘 가서는 외롭지 말라고 마음 다해 쏟아내는 눈물로 서로에게 위로하는 뜨겁게 아픈 시간이었다.


  자정이면 문상객들이 모두 돌아갔다. 선영은 장례기간 내내 선수, 선재 두 동생과 빈소를 떠나지 않았다. 낮에는 조문객을 받고 장례를 의논하느라 분주했지만 밤에는 먼저 간 형제를 애도하며 삼 남매가 끌어안고 울었다. 어쩌면 누나보다 앞서 제단에 오른 선길이 내려와 같이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선영을 더 힘들게 한 것은 용서와 이해가 필요한 동생에게 누나로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이었다. 만약 죽기 전에 통화했다면 미안하다고, 돌아오라고,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었을지 자신이 없었다. 명색이 누나이면서 이기적으로 살아온 시간이 동생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 아닐까. 모두의 아픈 가슴 싸안고 긴긴밤은 소주와 함께 그렇게 범람하듯 흘렀다.  

   

  선길의 친구들이 문상 왔다. 고등학교시절 공부는 내동댕이치고 음악 하겠다며 악기 하나씩 들고 선길의 방에 둥지를 튼 여섯 놈이 김장독을 1월에 거덜 내도 연이는 싫다 말하지 않았다. '선길이 친구면 다 내 아들이지'라며 버스비도 쥐어 보냈다. 그랬던 친구들이 중년 아저씨가 돼서 왔다. 꺽꺽 오열을 토했다. 사는 것이 바쁘다는 핑계로 선길을 돌아보지 않았다는 공통된 미안함이 그들의 눈물샘집었다. 죽은 아들을 보듬듯 다섯 친구를 쓸어안은 연이가 울다 정신을 놓았다.


" 누나 미안해요 우리가 더 챙겼어야 했는데 못해서 미안해요."  어릴 때부터 살갑게 굴었던 준태가 주먹만 한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선영은 보탤 눈물이 남아있지 않았다.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치레를 겨우 뱉는 그녀가 건조해진 정신줄을 붙잡고 있었다. 이 밤을 보내기 싫은 상주들 안타까운 마음이 빈소 구석구석에 끼어 앉았다.



  새벽부터 내리는 가을비가 안 그래도 서러운 상가에 슬픔을 얹었다. 친구들 눈물 속에 운구되어 영영 이승에서 이별한 선길을 아버지가 계시는 쉼터에 뉘었다. 오랫동안 홀로 떠돌다 죽어서야 가족 곁에 영면한 선길을 보면서 선영은 문득 자신의 무자비한 이기가 또 다른 죽음에 연관될까 까닭 모를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반송장 된 연이가 아직 납골함 유리문을 닫지 않아 만질 수 있는 아들, 따뜻한 유골함을 쓰다듬었다. 늙은 볼을 타고 내리는, 소리조차 없는 핏빛 물이 어서 마르길 모두가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다.


'내 동생아 오늘부터 아버지랑 도란도란 지난 이야기도 나누고, 하늘에서는 너의 원초적 유쾌함을 맘껏 펼치며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라고 방명록 첫 글을 적었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은 영원히 볼 수 없게 꽁꽁 그 안에 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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