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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Jun 20. 2024

날 버리지 말아요

39.




  지만은 연락 닿지 않는 연이 때문에 안절부절못했다. 분명 내일 보자고 손 흔들고 간 사람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딸과 크게 싸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만은 밤새도록 잠들지 못한 채 뿌연 새벽을 맞았다.     

  연이가 등원할 시간에 오지 않았다. 아무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원장조차도 소식을 받지 못했다고, 이유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여전히 연이의 전화는 먹통이고 지만은 불안함에 허우적거렸다. '어쩌면 이것이 끝일까?'라는 생각에까지 이르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연이 씨 제발 날 버리지 말아요' 주름진 눈가가  촉촉해질 때 지만은 연이 없는 세상이 의미 없음 새삼 느꼈다.


  온종일 지만이 근심 어린 눈으로 휴대폰에 몰입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원장도 연이에게 몇 차례 연락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안내음만  들렸다. 선영에게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걱정스러웠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오후가 되었다.

  큰 동생 상을 당했다는 선영의 문자를 받았다. 사남매라는 것은 알았지만 고인이 된 아들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다른 말이 없던 것으로 봐서는 갑작스러운 죽음이겠거니 생각 하며 슬퍼할 연이가 걱정됐다.


  " 연이 어르신 큰 아드님 상을 당하셨다고 해요."

  " 어이쿠 아직 젊은 사람인데 어쩌다 그랬답니까?"

  " 글세요. 거기까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며칠 걸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다가 병나시겠어요."


  원장의 말은 진심이었다. 하루 사이 지만이 초췌해졌다. 연이가 보면 오히려 맘 아파할 듯하여 진심으로 당부하는 원장. 지만은 자기 걱정과는 다른 전개에 안심하다가 슬퍼할 연이생각에 우울해졌다. '자식이라면 끔찍이도 위하는 사람인데 얼마나 마음이 아플꼬.'


   자식 앞세우는 부모 심정을 지만도 안다.

   오래전 군인이라는 신분은 수시로 전입 전출이 있었다. 한 곳에 정착할만하면 다시 보따리를 싸야 하는 고된 반복에 아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며 늘 미안했다. 전방을 벗어나면 좀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선영과 갑장인 막내 딸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경기외곽으로 옮겨서 비교적 안정된 삶을 누리는 때였다. 골목에서 놀던 딸이 음주 트럭과 충돌해 응급실로 옮겼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아내는 이사하지 않고 전방에 있었으면 살았을 아이를 자기 편하자고 이사해서 죽였다며 사는 내내 힘들어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을 잃은 지만은 그러다가 아내마저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이 컸다. '우리와 인연이 거기까지인데  맘에 두지 말라'라고 위로했으나 정작 지만은 평생 막내딸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연이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새벽에 발인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만이 어두운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버스 한 대가 서있었다. 젊은 남자 여섯이 운구하는 행렬을 따라 나오며 오열하는 연이를 발견했다. 어둠 속 약한 불빛 사이로 보이는 그녀 상한 얼굴이 안쓰러웠다.  선영이 쉰 목소리로 부르는 선길이 고인 이름이겠거니.


새벽비 맞고 연이가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나 걱정하는 마음도 전달하지 못하고 지만은 떠나는 버스 꽁무니에 깊이 절하면서 고인의 걸음이 편안하길, 연이가 잘 버티고 빨리 돌아와 주기를 기도했다.


  장례버스에 오른 선영이 어두운 창밖에 서있는 지만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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