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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Jun 21. 2024

여자가 살던 모래성

40.




  선길의 삼우제를 마치고 일주일. 선영은 사직서를 던지고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떠났다. 가족이 함께 하는 여행은 여러 번 있었지만 모녀만의 여행은 처음이었다. 여행 한번 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와 담쌓고 살아낸 삶. 무엇을 위해 전쟁 같은 삶을 선택했을까. 그 끝에 남은 것은 온통 상처투성이인 것을 미리 알았으면 그렇게 살았을까.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 두 여자가 말없이 차 타고 할 일 없이 쏘다녔다.


불편한 연이를 위해 선영은 휠체어를 밀었다. 낑낑대며 휠체어를 폈다 접었다 하는 선영이 불평하지 않았다. 연이는 딸이 애쓰는 모습을 보며 짠한 마음이 들었다.    



  선영이 이혼하고 아이 둘을 살피느라 힘들었던 시간. 사실은 혼자가 아니라 가족이 옆에서 지켜봐 줬고 그 힘에 살아온 것인데, 어느 사이 그것도 모르는 고집불통이 되었다는 것을 선영은 동생을 보내며 깨달았다. 가슴에 아들을 묻은 연이에게 지금 여자이고 엄마인 선영이 해야 하는 것이 위로가 아니라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을 그래도 늦지 않게 깨달아 다행이었다. 선영은 이제야 딸의 자리로 돌아온 홀가분한 기분을 느꼈다.       

   

  연이는 아들 장례동안 남은 세 자식이 합심하여 큰일 치르는 것을 유심히 지켜봤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자식을 지켜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았었다. 지독한 가정폭력에서 탈출하고 싶은 많은 순간을 자식들만을 바라보던 자신이었는데 지금은 지만에게 온 마음이 가 있는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엄마로서 더 다가 품지 못해 먼저 하늘로 보낸 큰 아들과 혼자 사는 가엾은 딸, 착해서 오히려 실패를 거듭하는 작은 아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막내, 잘 산다는 이유로 가족의 대소사를 모두 걱정하고 챙기는 마음도 떠올렸다. 잘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자식들 모두 상처를 가득 안고 피 흘리는 모습이 이제야 연이에게 뚜렷이 보였다.     

  

  연이는 천천히 여자가 살던 모래성을 허물고 엄마로 돌아가는 길로 걷자 마음을 추슬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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