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가 돌아왔다

by rosa

나는 노을육아중인 초보할미이다.

‘내 새끼보다 손주가 더 예쁘다’는 말을 비로소 이해하고 격하게 공감하는 손주바보 할미로서 두 번째 유쾌한 계절을 지내고 있다.

내 소중한 새끼, ‘아이는 배우는 존재가 아니라 가르치는 존재’라고 한 파블로 피카소의 말을 인용하지 않아도 이 작은 아이를 통해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아이는 나에게 세상을 다시 느낄 수 있는 밝은 눈을 선물했다. 할미 이전 세상에서는 볼 수 없던 판타지가 현실이 되는 경험. 그래서 나는 육아(育兒)를 육아(育我)라 쓰기로 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나도 분명 다시 자랄 것이라 믿기 때문에.

전문직을 내려놓고 손주육아를 선택할 때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걱정을 보탰다. ‘애본 공 새본 공’이라는 속담을 가장 많이 들었다. 그렇게 노을육아가 만만하지 않다는 경고를 가볍게 무시하며 씩씩한 척 선택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나만 느끼는 두려움도 숨어있었다.

“나 육아가 체질 인가봐” 쑥쑥 커가는 손주를 능숙하게 안아 올리며 매일 행복호르몬에 취하던 어느 날 이었다. 벙긋벙긋 붕어 닮은 미소 지으며 나른하게 옹알이 하던 복돌이가 육 개월 무렵 느닷없이 돌고래 소리를 냈다. 기분 좋다는 표현인가 싶었는데 불편한 상황에서도 같은 소리를 냈다. 두 아이를 키웠지만 손주는 처음인지라 모든 것이 낯 설고 무서웠다.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초보할미에게 새로운 걱정이 시작됐다. 이어지는 폭풍검색!

이것은 자아가 싹트면서 아기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며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 정상적인 연습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슬며시 걱정을 내려놓았다. 성대를 흔들며 내는 때로는 익룡 같고, 어쩌면 사자 같기도 한 울음이 온 집안을 들썩이게 했다. 꼭두새벽부터 이어지는 ‘돌고래 송’, 그 청아한 소음에 맞장구치는 할미 마음도 덩달아 꿈틀거렸다. 아이는 그렇게 스스로를 찾아가는 중요한 여정을 걷고 있었다.


그런 돌고래가 잠시 멈춰 섰다.

출장에서 돌아온 삼촌이 독감에 걸렸고, 이어 나에게 옮겼다. 아니길 바랐지만 결국 복돌이도 앓아 누웠다. 쌀알 같은 이빨 두 개를 드러내며 생글대던 아이가 고열에 시달리며 찡찡이가 되었다. 한순간도 할미 품을 떠나지 않고 쌕쌕 거친 숨을 몰아쉬는 모습에 할미 마음이 타들어갔다. 바로 며칠 전, “우리아이는 병원 한번 간적 없이 잘 컸어요.” 자랑 삼아 내뱉은 입방정이 화근이 된 것 같아서 마음이 쓰렸다.

“차라리 내가 아프면 좋으련만.”

늦은 밤에 시작된 고열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쿨 팩과 해열제를 번갈아 쓰며 38.5도를 기준으로 삼고 긴 밤을 하얗게 버텼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체온을 확인하며 아이도 나도 지쳐갔다. 딸과 사위에게 알려야 할지 고민했으나 알린다고 달라질 것이 없는 상황에서 결국 나 혼자 감당하는 쪽을 선택했다. 까만 새벽녘 체온계에 찍힌 38.8도는 긴장의 정점을 찍었다.

“이제라도 응급실을 가야 하나?”

다행히 생후 육 개월이 지나서 해열제 교차 투여가 가능했고, 체온은 38도 근처에서 간신히 멈추어서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긴 밤을 꼬박 새우는 동안 아이는 껌 딱지처럼 내 품에 안겨있었다.

아침이 밝자 이비인후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영유아의 고열은 중이염일 때가 많다는 생각에서 서둘러 간 건데 이미 대기실에는 환자들로 가득 차있었다. 병원에서 측정한 체온은 37.2도, 청진에서도 검사에서도 큰 이상 없다는 말을 듣고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투약을 거부하는 아이와 씨름하며 또다시 치열한 하루를 보냈다.


늦은 밤, 예정대로 딸 내외가 도착했다.

깊이 잠들었던 아이가 제 엄마 목소리에 눈을 번쩍 뜨더니 팔을 벌려 어미 품속으로 날아들었다. 아! 아무리 할미 품이 최고라 우겨도, 천륜이란 결국 그런 것이었다.

엄마 혼자서 힘들었을 텐데 “이제 좀 쉬세요.”라며 아이를 데려가는 딸의 말에 주책없이 눈물이 핑 돌았다.

주말 내내 엄마 아빠 품에서 지낸 아기가 월요일 아침, 소아과 전문의 진료에서 ‘이상 없음’판정을 받았다. 그렇게 복돌이의 첫 감기는 끝났다.

돌이켜보니 아기의 독감을 통해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은 것 같다.

혹시 할미 손에 커서 제 부모와의 유대가 느슨해질까 염려했는데, 그 걱정도 한순간에 사라졌다. 딸이 진심으로 걱정하며 “엄마 몸 상할까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 말은 나를 위한 아름다운 응원이 되었다.

아이가 아프고 나면 재주가 늘어난다하더니, 복돌이는 부쩍 다리 힘이 세져서 금방이라도 첫 걸음을 뗄 기세다. 그리고 다시, 온 집안에 청아한 돌고래 소리 가득 하다.


돌고래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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