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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Oct 24. 2024

돌고래가 돌아왔다

생후 육 개월 무렵 아이가 돌고래 소리를 내는 첫 번째 이유는 자아가 발달하면서 감정 표현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본인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성대운동을 하며 점차 익룡 소리도 내고 사자소리를 낼 수도 있다.


꼭두새벽부터 시작하는 복돌이 돌고래송은 잠시도 쉬지 않고 온 집안을 휘저었다. 청아한 소음에 맞장구 하는 할미도 덩달아 기분 좋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찾아가는 중요한 여정에서 복돌이가 잠시 멈췄다.



삼촌이 출장 직후 독감에 걸렸다.

그리고 할미가 독감에 걸렸다.

아니길 바랐지만 결국 복돌이가 독감에 걸렸다.


언제나 쌀알 같은 이빨 두 개를 드러내고 돌고래 소리를 내던 아이가  고열과 함께 찡찡이가 됐다. 한 순간도 할미 품을 떠나지 않고 쌕쌕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아기, 할미 마음이 타들어갔다. 그 몫까지 다 내가 아프길 원했는데. 아무래도 안 아프고 잘 키웠다고 자랑질 한 할미 입방정이 화근이 된 것 같아서 마음이 쓰렸다.  


밤 9시에 시작된 고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수시로 체온을 측정하고 상비약으로 준비해 둔 쿨팩과 해열제를 적용했다.  38.5도를 가이드로 정하고 긴장된 밤을 보냈다. 오르락내리락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고열과의 싸움으로 아이도 나도 지쳐갔다. 딸과 사위에게 알려야 하나 지켜봐야 하나 고민도 컸다. 딸은 금요일 중요한 일이 있어서 평소보다 늦게 도착할 예정이었다. 알린다고 달라질 것이 없는 상황이라서 나 혼자 감당하는 것을 선택했다.


38.8도가 체크되며 긴장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늘 웃던 아이가 보채며 손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응급실행을 결정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래도 육 개월이 넘은 시점이라서 해열제 두 가지를 교차로 사용 할 수 있음이 다행이었다. 그후로는 38도 근처에서 체온이 유지됐다. 간간히 깊은 잠도 들어서 다행이고 무엇보다 기침증상이 없었다.

긴 밤을 꼬박 새우는 동안 아이는 내 품에 있었다.


고민하다 이비인후과를 가기로 했다. 아마 기침이나 콧물등 다른 증상이 있었다면 소아과로 갔을 테지만 영유아 고열의 많은 부분이 중이염에서 기인하기에 이비인후과를 선택했다.

아침 시간 서둘러 병원에 갔어도 이미 삼십 명이 대기 중. 병원에서 확인한 체온은 37,2였고 기다리는 삼십 분 정도를 아이가 잘 견뎠다. 청진에서도 목, 귀를 확인해도 큰 이상은 없다고 했다. 한숨 돌리며 약을 지어 귀가했다. 하룻밤 투약 때문에 아이가 약 먹기를 힘들어했지만 투약에는 나름 노하우가 있어 효과적으로 투약할 수 있었다.


밤늦게 딸 내외가 도착해서 잠든 아이를 만났다. 깊이 잠들었던 아이가 제 어미 소리에 눈을 크게 떴다. 팔을 벌리고 어미 품속으로 날아들었다.

할미가 최고라고 생각했던 어쩌면 그래서 걱정했던 부분이 한방에 해결됐다. 천륜이란 것이 그런 것이구나. 엄마도 힘들었을 텐데 편히 쉬라며 딸내외가 복돌이를 데려가 한동안 노는 소리를 들으며 나도 피곤한 몸을 뉘었다.


주말 동안 제 어미와 지낸 복돌이는 많이 호전됐지만 월요일 아침 우리는 소아과를 재차 방문했다. 소아과 전문의로부터 이상 없다는 말을 듣고야 할미 마음이 안정됐다.

복돌이의 첫 번 감기는 오히려 내게 위로가 되었다. 할미를 따르는 한편 제 부모와의 유대가 느슨해질까 혼자서 염려하던 부분이 사라져서 홀가분했다. 엄마의 수고에 고마워하는, 엄마 몸 상할까 걱정하는 딸의 말도 나에게 큰 힘이 됐다.


아기가 앓고 나면 재주가 는다던데 복돌이는 부쩍 다리 힘이 세졌다. 칠 개월에 이렇게 잘 걸어도 되는지 걱정될 정도로.

그리고 온 집안에 복돌이 소리가 가득하다. 


돌고래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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