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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제주를 떠나다

by 하루향기

3년 전, 나는 이직을 했다. 멀쩡히 근무하던 사람이 갑자기 이직하겠다고 하니, 직장 사람들은 다들 놀라워하고 아쉬워했다. 몇 년 만 꾹 참고 근무하면 승진도 할 수 있는데 굳이 떠나야 하냐고.


그 당시 나는 15년간 다닌 직장에 지쳐가는 상황이었다. 보고서를 쓰느라 줄 야근을 하고, 출장도 부지기수였고, 원하지 않는 회의와 회식에 끌려다니고, 주말이 되면 집에서 쉬는 게 불안해서 사무실에 도장을 찍고 돌아오기도 했다.


어느 날 이런 생활이 덧없게 느껴졌다. 승진을 하려면 더욱더 성과를 내야 하고, 핵심 부서로 들어가서 나를 갈아 넣어야 하기에. 그렇게 해서 얻는 결과는 과연 무엇일까? 과장이 된 선배들을 봐도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합격을 하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지만, 행복은 찰나고, 다시 업무에 휩싸여 고민을 하고, 다음 승진을 위해 치열하게 일하는 모습이었다.


이 궤도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며 사는 게 정답일까? 마음속에서 계속 물음표가 생기던 즈음에, 남편이 갑자기 인천에 있는 본청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평소의 나라면, 주말부부는 할 수 없다며 남편을 뜯어말렸을 텐데, 뜻밖의 말이 불쑥 나왔다. "나도 떠날까?"




그냥 모든 걸 바꿔보고 싶었다. 40년간 한결같은 삶의 터, 15년간 함께 근무하는 사람들. 다음 직장에서는 승진, 책임감, 인정 따위는 벗어던지고 워라밸을 추구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행운의 여신이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아주셨는지, 인사 교류가 착착 진행이 되어서 마침내 이직을 했다. 이직과 함께 이사도 했다. 제주에서 인천으로. 일탈 없이 살아오던 나에게 일대의 사건이었다.



인천으로 이사 온 후 모든 게 새롭고 자유로웠다. 새로 들어간 곳은 다행히 업무가 수월해서 칼퇴근을 하고, 주말에는 온전히 쉴 수 있었다. 이직은 탁월한 선택이었구나 싶었다. 보고서를 쓰며 고뇌하던 예전의 삶이 그리워지기도 할 때쯤, 인사발령이 났다.


그런데... 하필 업무가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감사를 준비해야 했고, 예산이 어마어마했다. 다시 야근을 하고, 업무에 찌든 삶이 시작되었다. 일 속에 파묻혀 가을과 겨울을 나고 봄이 돼서야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이제는 또 다른 색깔의 고민이 마음에서 일렁이기 시작했다. 승진도 하기 힘들 것 같은데 이직자로서 끝까지 다녀야 할까? 과연 이 직장에서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허덕이는 일 속에서 내가 그리던 워라밸은 과연 이룰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해보고 싶다"는 반대의 감정도 올라왔다. 내 쓸모를 이곳에서 증명하고 싶고, 그러면서 인정도 받고 싶었다. 회사에서의 인정이 그리웠던 것 같다. 불현듯 남편의 이러려고 온 게 아니지 않냐는 충고에 번뜩 정신을 차렸지만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마음을 후벼 팠다.




살아가면서 '예전엔 틀리고 지금은 맞아'라고 확신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얼마나 될까?


과거와 또 다른 고민에 젖은 나를 보면서 삶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된다. 선택하고, 가벼워지고, 후회하고, 번민에 휩싸이기도 하며, 뚜벅뚜벅 살아가는 게 삶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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