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삶의 시작
이삿짐을 쌌다. 내 생에 두 번째 이사였다. 첫 번째 이사는 동네를 옮기는 수준이라 남편 친구 용달차로 이사를 했었다. 이번에는 바다를 건너는 이사라 남편 친구 용달차로는 불가능했다.
처음으로 포장이사를 했다. 아침 일찍 이삿짐 직원분들이 속속 도착해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전문가의 날쌘 솜씨로 살림살이가 하나, 둘 박스에 채워졌다. 있어봐도 걸리적거릴 것 같아서 볼일을 보러 나갔다.
두어 시간 흐른 후 집에 도착해 보니 세간살이가 커다란 트럭에 모두 들어가 있었다. 드디어 떠나는구나,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이사오던 날처럼 깨끗하게 비워진 집구석을 바라보니 왠지 마음이 시큰했다. 큰 아이가 여덟 살 때 처음으로 장만한 집이었다. 4년간 아이들과 아웅다웅 살았던 추억들이 새록새록했다. 테라스에서는 한라산이, 안방에서는 귤밭이 보이는 집이었다. 익숙했던 그 풍경을 이제는 볼 수 없다니...
남편과 제주항으로 가서 차를 선적하고 나니 더욱 떠나는 게 실감이 났다. 하필, 다음 날 폭설 예보가 떠서 항공 일정이 하루 앞당겨졌다. 시댁에서 하룻밤 자고 가기로 했는데 저녁 비행기로 급히 가게 되었다. 이사 준비는 오래 걸렸는데 떠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마음 굳혔으니 어서 떠나가라는 듯이.
어머니의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뒤로하고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우리 집 고양이와 처음으로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 아이들은 긴장한 고양이를 돌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오로지 우리 가족만 살게 되는 게 실감이 났다. 비행기 창가로 야경을 보며, 슬퍼하고 계실 어머니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김포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한 시간쯤 달리자 인천에 도착했다. 이미 늦은 밤이었지만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아이들은 앞으로 살게 될 쭉쭉 솟은 아파트를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불빛들이 우리를 반겨주듯 반짝였다.
낯선 집에 들어가 보니, 온기가 느껴지고 이불이 깔려 있었다. 같은 동 48층에 살고 있는 남편의 직장 동료분이 미리 보일러를 틀어주시고, 이불을 빌려준 것이었다. 이삿짐은 다음 날 오기로 되어 있어서 하마터면 엄동설한에 오들오들 떨며 잘 뻔했는데, 너무 감사했다.
많고 많은 아파트, 그 중 고르고 고른 아파트, 같은 동 같은 라인에 아는 분이 계시다니, 정말 행운이었다. 남편의 직장 동료분은 살갑고 따뜻한 성격을 지닌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였다. 언니의 막내아들은 우리 아들과 동갑이라 더욱 기뻤다. 로또가 따로 없었다. 낯선 곳에서 온기를 품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 남편은 발령받은 첫날부터 사무실에 나갔고, 오후에 이삿짐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이삿짐 직원분들이 가구를 어디에 배치할지 물으시는데, 집을 계약하기 전 한번 봤던 집이라 답이 척척 나오지 않았다.여기저기서 "사모님~"을 호출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아홉 살 딸아이가 물건 주인을 척척 알려주며 혼이 반쯤 나간 나의 빈틈을 채워주웠다.
입주 신고를 하러 관리실을 찾아가는데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생전 처음 느껴보는 추위가 몸속을 파고들었다. 바지를 하나 더 껴 입고 나왔다. 영하 10도였다. 제주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매서운 추위를 이사 온 첫날부터 보란 듯이 보여주는 듯했다.
이사는 생각보다 힘들었고 날씨는 매정하도록 추웠다. 우리 가족 곁에는 언제나 도움을 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는 게 실감이 났다. 늦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남편을 보자 설움이 복받쳤다. 아무리 사무실이 바쁠지언정 이삿날 꼭 일을 시켜야 하냐고. 첫날부터 독박살림으로 시작되니 앞으로의 삶이 고단하게 이어질 것만 같았다. 남편이 맥주를 사오지 않았다면, 잘 해보자며 따뜻한 위로를 건네지 않았다면 울었을지도 몰랐다. 거실에 자리를 못 잡은 짐이 쌓인 채로, 그렇게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