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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향기 Nov 18. 2023

별거 아닌 나, 누군가에게는 별

나른한 오후였다. 감실감실하게 감겨오는 눈을 억지로 부여 뜨고 일을 하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ㅇㅇ변호사 기억하냐며 방금 업무로 통화했는데 내 안부를 먼저 물어왔다고 했다. 정ㅇㅇ 변호사? 누구였지? 오래된 기억 속에 사람 좋은 그의 얼굴이 두둥실 떠올랐다. 로스쿨에 근무할 때 그는 1기 원생이었고 남편과도 일로 아는 사이였다.


나는 그에게 단지 행정 직원이었을 뿐일 텐데 내 안부를 먼저 물어와 준 게 뜻밖이었다. 왠지 고마운 기분이 들어서 남편에게 대답했다.


"정ㅇㅇ변호사님 기억하지. 로스쿨 1기생이었는데 성실하고 다정다감한 분이었지.

별거 아닌 나를 기억해 줘서 너무 고맙네..!!"


남편은 내 대답과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바로 쏘아붙였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네가 왜 별게 아니야~? 너는 나한테 별인데!"


갑자기 뚱딴지같이 웬 별? 이 무슨 이수일과 심순애 영화에 나올법한 대사인가. 대낮에 사무실 밖에서 전화로 나누는 대화라기엔 낯간지러웠지만 듣는 순간 묘하게도 기분이 나아졌다. 가끔 이렇게 로맨틱한 말로 천 냥 빚을 갚는 남편이다. 누구보다도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아는 사람인지라 나도 모르는 내 행동과 말에 의미를 부여해 준다.


예전에 사주를 보러 갔을 때 남편은 상록수이고 나는 낙엽수라고 했다. 감정의 변화가 큰 나와 달리 남편은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란 의미라고 했다.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일까 싶었는데 남편과 오래 살아보니 이해가 된다. 하늘로 승천할 듯 날아오르는 싶다가도 어느새 푹 꺼지는 나와 달리 남편은 늘 적당한 온도로 감정을 유지한다. 가끔은 사는 게 공허해지는 나와 달리 남편은 심심하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놀 거리를 잘 찾아다니고 주위에 사람이 많은 편이다.


부부의 연이란 신기하다. 세상에 많고 많은 남녀 중에 짝이 된 것도 소중한 인연이다. 서로 부족한 면을 채워주는 게 부부의 삶인 것 같다. 살다 보면 아웅다웅 다투기도 하고 남의 편처럼 얄미운 남편이기도 하지만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고 밑바닥에서 일으켜주는 사람도 남편이다. 요즘 별거 아닌 사람처럼 느껴지던 나를 순간 별로 만들어준 게 고마워서 남편 예찬론으로 고단했던 한 주를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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