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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향기 Mar 10. 2024

친정에서 온 택배 한 상자

부모님의 온기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 보니 친정에서 온 택배 한 상자가 도착해 있었다. 지난주 부모님께서 천혜향 한 박스를 보내주셨는데 전화로 맛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일주일도 안 돼서 또 한 박스를 부치셨다. 부모님께 답례도 하지 않고 말로만 때우고 말았는데 부모님은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다.


택배 안은 고향의 온기가 가득했다. 상자를 열어보니 얼갈이배추가 덮여 있었다. 얼갈이배추를 걷어보니 노란 천혜향이 가득 들어있고 천혜향 틈바구니에 금귤 한 봉지가 끼어 있었다. 부모님께서 택배 상자에 하나라도 더 넣으시려고 애쓰신 정성이 느껴졌다.


서귀포 인근 마을에 사시는 이모가 주셨다는 천혜향은 수확하다 흠집이 난 것들이었다. 부모님께서 설탕 없이도 천혜향만 갈아서 주스로 마시면 맛이 끝내준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갈아서 마셔보니 산뜻하면서도 천연의 깊은 귤맛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비록 흠집이 난 천혜향이었지만 귀하게 느껴졌다.


메추리알 만한 금귤 한 알을 배어 물으니 달콤 쌉싸름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작은 알맹이 한 알 맛이 당차기 그지없었다. 어릴 적에 집 뒷마당 금귤 나무에서 한알씩 열매를 쉽게 따먹곤 했는데 이곳에선 흔히 먹어볼 수 없는 귤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금귤 맛에 미각이 살아나며 고향 풍경이 떠올랐다.  


얼갈이배추는 집 마당 앞 텃밭에서 갓 따서 보내셨는지 배추 끝에 흙이 묻어 있었다. 시어머니와 함께 배추를 손질해서 데쳐서 먹어보니 달큼하니 맛있었다. 요즘 어머니가 드실 반찬이 마땅한 게 없는 것 같아서 고민이었는데 어머니께서 배추 무침을 맛있게 드시는 걸 보니 안심이 되었다. 병원을 다니시느라 시어머니와 같이 지내는 나의 상황을 염려하신 부모님 마음이 얼갈이배추에 담겨 있는 듯했다.

  

지난 추석에 고향에 내려간 이후로 고향 제주에 가보지 못했다. 지금쯤 벌써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고 나무는 푸릇푸릇 해지고 유채꽃이 피어나고 있을 텐데! 자연의 생기가 가득한 친정집 풍경이 눈에 선하다. 친정 엄마가 끓여 주셨던 깊은 맛이 나는 배추 된장국과 봄나물 반찬도 간절해지며 부모님을 오래 못 뵌 게 아쉽고 죄송했다. 택배 한 상자에 고향 온기가 느껴지며 부모님이 그리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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