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사탕 하나 건내 줄 사람 아니었을까.
요즘 몸만들기에 한참 빠진 내가 자주 가는 곳이 있다. 일주일에 하루. 헬스 장이 문을 열지 않는 날에는 칼로리를 태우기 위해 집 앞의 산을 자주 방문한다. 그렇기에 지난주 일요일에도 어김없이 난 산으로 향했다. 그날은 점점 따스해지는 날씨 때문인지 유난히 사람이 많았다. 아이들과 나들이 나온 가족들. 단란한 중년 부부. 혹은, 아직 정정하신 어르신들까지 모두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모두 힘들어하면서도 기분 좋게 등산하던 모습이 보기 좋아 올라가던 중간중간 멈춰 서서 사람들을 구경하곤 하였다.
정신없이 올라가다 보면 산의 중턱에는 오래된 절이 하나 있다. 쉬어가기에 좋은 지점이라 그 절 앞의 벤치에 앉아 잠시 쉬기로 하였다. 자리를 잡고 고개를 들어보니 맞은편 계단에 앉아있던 한 사람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긴 생머리에 제대로 갖춰진 핑크빛 등산복을 입고 있는 여자. 캡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기에 얼굴은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언뜻 보기에도 굉장히 아름다워 보이는 젊은 여성이었다. 물론 그 자체로 내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지만 그녀가 계속 신경이 쓰였던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그녀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계단에 앉아 무릎에 놓인 핸드폰을 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닦아 냈는지 양 볼은 이미 빨개져 있었다. 내가 숨을 고르고 동안 그녀는 우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는지 중간중간 고개를 들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살폈다. 벤치에 앉아 그녀 쪽을 보았지만 내 시선은 눈치채지 못했는지 여자는 다시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훔쳤다. 숨소리가 점점 차분해져 가는 동안에도 그녀는 계속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무슨 일이기에 등산하다가 저렇게 울지?’
그녀는 활기 넘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확실히 눈에 띄었다. 사실 처음엔 궁금증으로 그녀를 지켜보았다.
‘친구랑 싸운 걸까?’
‘키우던 반려 동물이 세상을 떠났을까?’
‘아니면… 회사 생활이 힘든가?’
지켜보며 여러 가지 추측이 떠올랐다.
‘무슨 이유든지, 저렇게 예쁘게 입고와선 왜 저렇게 서럽게 울까…‘
그때, 모자 아래로 그녀의 입이 슬픔으로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아, 저 입모양. 나도 알지.’
예쁜 그녀의 일그러진 입을 보자 내 마음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몇 년 전 해외에서 고군분투하던 적이 있었다. 유학 시절 초반, 가난한 이방인으로서 하루를 한 끼로 버텨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대학 입시를 준비 중이었기에 일회에 무려 30만 원이나 하는 시험을 치러야 했다. 값 비싼 가격에 부담을 가지며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미숙했고 외국의 도시는 너무 낯선 곳이었던 탓일까, 몇 달 동안 열심히 준비한 것의 결과는 결국 장소를 못 찾아 시험을 못 치르게 되었다. 그땐 스마트 폰이 막 등장하기 시작한 때였기에 휴대폰으로 위치를 찾을 수 없었고, 시험장에선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물론 인터넷으로 시험장 주소를 미리 알아보았지만 주소를 찾아가니 그곳은 전혀 다른 건물이었다. 계속 찾아 헤맸고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제대로 알려주는 하나 없었다. 다들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삼십 분 뒤, 난 결국 입장 시간이 지나버려 장소를 찾기를 포기했고 시험 비는 그대로 날려먹은 꼴이 되었다. 몇 달 동안 준비했던 게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나니 이 세상엔 나 혼자 덩그러니 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하다 못해 장소 하나 못 찾은 내가 멍청하게 느껴졌다. 그날 난 태어나 처음으로 길거리에서 서럽게 울었다.
아마 그때 내 입 모양이 저랬으리라. 모자를 푹 눌러쓰고 울고 있는 그녀를 보며 난 예전의 나를 보았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세상의 무게에 짓눌려 우는 것도 숨죽여 울고 있는 그녀가, 유달리 가슴 아팠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가 위로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응원해주고 싶었지만 막상 말을 걸려하니 무엇을 말해야 할지 막연했다.
‘그냥 무작정 가서 이야기 들어줄까.’
‘저기… 괜찮아요? 무슨 일 있나요?’
‘아냐, 이렇게 말 걸면 괜히 경계심만 키울 것 같은데.’
‘그냥 넘어갈까, 우는 모습 보여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딨 어.‘
‘괜히 갔다가 이상한 소리 듣는 건 아닌가…’
아무 생각 없이 지켜보던 난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다. 말을 걸까 말까 망설이 던 중, 계단에 앉아 있던 그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위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 가네.’
나는 맥없이 그녀가 멀어지는 걸 지켜보았다. 타인을 판단할 땐 그렇게 편하던 내가 그를 위로하고자 하니 이렇게나 서툴러지다니. 그날은 부끄러워 벤치에서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어떻게 위로했어야 했는지 에 대한 숙제만 남은 채로.
일요일 등산의 경험은 그 이후 며칠 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일주일이 채 안된 어느 날, 유튜브 동영상에 뉴스 소식 하나를 접하게 되었다. 그 영상의 유튜버는 긴급으로 올라온 한국자살예방협회의 성명에 대해 다루었다. 내용은 이러하다.
“지난 1월 동안 한국의 자살률이 작년 대비 32% 증가. 이를 국가 재난 위기로 인식하고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
영상에선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한국의 현 자살 현황에 대해 더욱 자세히 설명했다. 한국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에 반해 우리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해 얼나마 무관심한지에 대한 호소가 담겨 있었다. 또한 유투버의 개인적 의견으론 자살률이 급격히 증가하는 이유에는 ‘상대적 박탈감’ 이 크게 한몫하는 것 같다고 하였다. 팬데믹 이후 가시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사람들 간의 격차. 그 차이 안에서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자는 ‘낙오자’ 혹은 ‘실패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사람들을 사지로 내몰았던 게 아닐까라고 말하며 그는 조심스레 추측했다. 그리고 그는 이 계기로 주변인들을 조금씩 돌보자며 영상을 마무리했다.
소식을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국이 자살률 1 위라는 내용은 흔하게 듣던 말이었지만 사실 이 문제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와는 관련 없는 이야기’ 딱 이 정도가 한국의 자살률에 대한 생각이었다. 우울증까진 아니더라도 주변에 간혹 자괴감으로 힘들어하고 우울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지난 1 년 동안 내가 얼마나 타인에게 관심을 가졌는지 돌아보니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나 굉장히 무심한 사람이구나.’
영상을 보고 타인에게 무관심했던 내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계단 위의 그녀가 떠올랐다. 숨을 죽이고 우는 것 마저 눈치를 보며 울던 그녀가 눈앞에 보였다. 사실 지극히 하찮은 이유로 울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런 그녀에게 나를 포함해 다가가는 이 하나 없던, 그때의 상황이 기억났다.
‘어쩌면 내가 그들을 사지로 몰았던 것일 수도 있겠구나.’
작은 격려의 한 마디가 없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던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그럼 이제부터라도 다른 선택을 해야 될 텐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지극히 작은 개인으로서 내가 과연 할 수 있는 건 뭘까? 생각 속에 잠겨 본다. 모르는 이에게 인사 한 마디 건네기 쉽지 않은 이 사회에서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스쳐지나가 듯 가볍게 던질 수 있는 위로는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해본다.
‘아, 청포도 사탕.’
어렸을 적 토요일에 학교가 끝나고 나면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주머니들이 교회에 나오라며 사탕을 나누어 주던 기억이 났다. 낯선 이가 주는 것이었지만 작은 사탕이나 젤리였기에 넙죽 받아갔던 기억이 있다. 그중에서 청포토 사탕을 받을 때 가장 기분이 좋곤 했었다.
‘사탕 한 알이면 말 걸기도 쉽고, 받기에도 가볍고.‘
유치하고 뻔한 수단이었지만 난 이 생각이 맘에 들었다. 고작 사탕 하나가 한 사람의 슬픔을 뒤바꾸진 못한다는 건 알고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사탕 하나의 위로쯤 건넬 수 있는 사람. 적어도 그 정도의 사람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곧장 누워있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대충 겉 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곧바로 집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으로 걸어가는 5 분 동안 난 지난주 일요일로 다시 돌아갔다.
화창한 일요일 오전, 난 산의 중턱까지 올랐고 내 앞엔 익숙한 사철이 눈에 들어온다. 한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맞은편에 한 여자가 보인다. 그녀는 울고 있다. 아주 서럽게 울고 있다. 그녀를 보고 마음이 안타까워져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주머니 속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간다.
‘저기… 괜찮아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이거라도 먹고 기운 내요.’
손 위에 올려진 청포도 사탕 하나. 난 마침내 그녀에게 조심스래 손을 뻗는다.
누군가 다가 오자 지금까지 땅에만 시선을 고정하던 얼굴이 고개를 들어 올린다.
그녀가 나를 보며 무슨 말을 하려 한다.
그녀의 울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리려던 때, 난 편의점의 문을 열어 청포도 사탕을 찾았다.
혹시라도 안 좋은 생각이 자꾸 드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자살 예방 전화상담은 국번없이 109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