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에서는 내 눈치를 봤지만 나는 형준의 흔적이 있는 베이징을 떠나 상하이로 가는 것이 싫지 않았다.
“서영 씨, 상하이로 온다면서요.”
상하이에 대해서 여행자 수준의 정보만 있던 내게 먼저 상하이로 간 산우회 회원들은 큰 도움이 되었다. 상하이로 와 처음으로 열린 환영모임에서 민혁을 만났다. 베이징에 있을 때, 몇 번 산행에 나오기는 했지만 민혁은 말이 없었다. 내가 로스쿨 다니면서 한마디도 안 하고 조용히 고개 숙이며 다녔던 것처럼 그도 말이 없었다. 남들보다 큰 키는 눈에 띄었다. 다시 만난 민혁과는 별말 없이 눈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상하이는 베이징에 비해 교민들이 사는 지역도 흩어져 있다. 베이징과 다른 상하이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으로 강력한 코로나 방역정책으로 온통 통제천국일 베이징과 달리 상하이는 자유로울지 알았다. 베이징을 떠나 상하이로 온 내 선택에 만족해하고 있을 때, 상하이에서 코로나 감염자가 늘고 있다는 소문이 검은 안개처럼 상하이를 덮고 있다. 스멀스멀 코로나 감염자는 걷잡을 수 없이 늘고 있다.
민혁에게 자기가 사는 아파트가 봉쇄되어 당장 갈 곳이 없으니 잠시만 있을 수 있겠냐는 전화였다. 같이 베이징에서 산에 다녔던 민혁이 곤란하다는 데, 오라고 했다. 우리가 한 달 넘게 아파트에 갇힐 거라는 것을 몰랐다.
민혁을 만나 통행증을 받고 나니 긴장이 풀리고 배가 고팠다. 편의점에 가서 맥주와 먹을 것을 사 오는 순간 살짝 행복하다. 누군가 같이 물건을 사러 가는 순간이 좋다. 민혁과 맥주를 마시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와 음대 나온 어머니 이야기에 주눅이 들었다. 정리하며 설거지를 하는 나를 민혁이 등 뒤에서 안았다. 우리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 나도 모르게 나를 안은 민혁의 팔을 풀었다.
여기저기 봉쇄 저글링하는 상황인데 여기에서라도 편하게 있으라고 집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출근하려는데 1층 현관문이 밖에서 쇠사슬로 잠겨있다. 우리 아파트가 봉쇄되었다는 통지문이 붙어있다. 전수 검사해서 확진자가 없으면 2일 뒤에 봉쇄를 풀어준다고 했다. 코로나 정책에 관한 창의력은 정말 기발했다. 얼떨결에 민혁이도 같이 갇힌 것이다.
단체방에서는 상하이가 봉쇄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아다녔다.
“무슨 소리야, 어떻게 상하이를 봉쇄해”
상하이를 봉쇄하면 중국을 봉쇄하는 것과 같다.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온라인에서 떠돌고 있었다. 제로코로나 정책이 3년째 되어가니 별 이상한 소리와 억측이 난무한다. 형준과 헤어지고 상하이로 온 내가 받을 피해와 고통이 더 있을까.. 크라켄(덴마크 전설에 나오는 괴물)처럼 봉쇄가 다가오는 상하이에 혼자 있는 게 두렵다. 민혁이 같이 있는 게 좋다.
이런 내 마음을 상하이가 알았을까.. 몰라줘도 되었는데..
이틀 뒤 풀리기로 했던 아파트 봉쇄는 풀리지 않았고 2022년 4월 1일, 상하이 시 전체가 봉쇄되었다. 지금까지 전혀 서로 다른 인생을 산 민혁과 나는 졸지에 70㎡ 아파트에 갇혔다.
남편 하고도 같이 산 적이 없는 내게 민혁과의 동거는 낯선 도전이었다. 그날그날 사서 정리하거나 며칠 내 소비할 수 있는 만큼 생활하던 내게 상하이 봉쇄는 혹독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음식을 양보한다. 상하이 항구에는 물품을 실은 컨테이너선들이 몰려서 입항을 기다리고 있고, 상하이 시 경계에 식료품을 실은 화물트럭이 들어올 수 없어 야채와 고기들이 썩고 있었다.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상하이에 사는 우리가 먹을 것과 생활 물자를 못 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코미디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게 더 웃겼다.
민혁과 나는 집안일을 분담했다.하루 24시간 중 23시간은 집안에 있는다. 지루함에 우리는 몰래 밖으로 나가 뛰기로 했다. 아파트 한 바퀴도 못 뛰어보고 발목을 삐었다. 발목이 휘청하는 순간 통증이 심하다. 초저녁 어스프레 했던 어둠은 점점 먹물처럼 번지고 있는 밤, 발목을 민 통증에 고개를 숙여지고 눈물이 나온다.
어렸을 때부터 발목을 습관적으로 삐었다.. 걷다가 내가 넘어지면 엄마는 놀랬다. 엄마에게 난 아프다고 하지 않았다. 삶 자체가 아픈 엄마에게 내가 아프다는 말하면 더 아플까 봐 말하지 않았다. 괜찮다고 말하며 제대로 치료받지 않은 내 발목은 점점 불안정해졌다. 엄마와 혼자 살면서 나는 울지도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픈데 슬픈데 말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지만 속으로 아프고 슬펐다. 저 멀리 뛰어오는 민혁이 보였다. 큰 키로 성큼성큼 뛰어와 넘어진 나를 일으켜 주는 순간, 한 번도 본 적 없고 만난 적 없는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 보호와 애정을 받아본 적 없는 내게, 나를 일으켜 주는 사람이 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라는 그 말에 처음으로 아프다고 말해봤다. 전에 나를 안았던 민혁 팔을 풀었지만 이번에는 내가 그 팔을 잡았다. 작은 방으로 가겠다는 민혁에게 가지 말라고 하며 한 침대에서 처음으로 같이 잤다. 손만 잡고 잤지만 이미 나는 그날 마음속으로 민혁에게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