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투른 동거는 이제 익숙한 소꿉놀이가 되었다.
매일 누군가와 침대에서 같이 눈 뜨고 민혁이 내려주는 커피 (잘 내리지는 못했지만 민혁이 내려주는 것만으로 향긋한) 마시는 아침이 행복했다. 봉쇄가 준 유일한 선물이었고 민혁이 떠난 후, 내게 다가올 끔찍한 시간 오기 전, 폭풍전야 같은 평온한 행복한 일상이었다.
아파트 주민위에서 구호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먹을 것이 이미 바닥나고 간신히 하루 최소 대사량 유지할 정도로 먹던 우리에게 아파트 주민위 구호품은 도움이 되었다. 손질하지 않은 생고기가 통째로 나오거나, 낯선 야채가 나오면 민혁과 머리 맞대고 소곤소곤 의논하며 요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즐거운 소꿉놀이 같다.
이제 먹을 것 없어 안달복달 안 해도 되는 봉쇄 40일째, 정전이 되었다. 더 이상, 어떠한 상황이 벌어져도 놀랍지 않을 상하이 봉쇄 상황에서 정전은 새로운 변수였다. 집안 와이파이도 휴대폰 전원도 냉장고도 모두 의미 없는 장식품이 되었다. 이제 정말 갇혔다는 느낌이다.
봉쇄에 정전에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은 지금 다 일어난다. 와이파이가 없으면 휴대폰이 안 된다. 건물 밖으로 나가면 휴대폰 사용은 가능했지만, 곧 배터리가 떨어질 것이다. 당분간 연락이 안 된다고 회사와 가족과 연락하고 민혁이 같이 아파트 계단을 걸어 14층까지 올라왔다. 둘이 같이 손잡고 올라오는 동안,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다. 정전되어 좋은 것은 무한루프 코로나 핵산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정전은 갇혀 있는 우리에게 새로운 무인도를 만들어준다. 지금까지 내 삶이 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도 더 힘든 상황도 있다는 것을 상하이가 가르쳐준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되는데…
집 안에 마실 물이 없었다. 기댈 곳은 아파트 안 한국인들이었다. 전에 소주와 클린징폼을 교환했던 사람 집에 무조건 찾아갔다. 봉쇄 생활에 나도 뻔뻔함이 늘었나 보다. 생수 6병을 구해 낑낑대며 아파트 안을 걸어오는 나를 기다리던 민혁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누군가 나를 기다려 준다. 엄마는 일해야 했고 하교 후 집에 가면 나를 기다려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집 앞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 그날, 정전으로 모든 빛과 봉쇄로 모든 소리가 멈춘 밤에 우리는 처음으로 서로에게 서로를 열었다.
떠남
소꿉놀이 같았던 우리 생활은 이제 신혼 같았다. 봉쇄되지 않은 하늘에 구름은 자유롭게 떠다녔다. 느긋한 아침, 같이 누워있는 시간은 몰디브 해변에서 누워있는 것 같았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전기가 들어왔다. 냉장기와 정수기 모터가 다시 도는 소리에 우리는 벌떡 일어났다. 휴대폰부터 충전하기 시작했다. 휴대폰은 며칠 동안 받았던 문자와 메일을 쏟아낸 소식 속에서 사시미 칼 들고 후미는 듯한 소식은 엄마가 알려준 아버지 부고다. 내게 아버지가 있다. 아니 있었다. 너무 어렸을 때, 나를 떠나 기억할 수도 없던 사람, 아버지 부고가 봉쇄된 상하이에 갇힌 내게 왔다. 아버지는 엄마와 너무 일찍 헤어졌다. 내가 기억할 수 있을 때, 아버지는 이미 없었다.
“엄마, 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갈까”
“비행기가 일주일에 한편이라며, 표나 구할 수 있겠어. 지금 준비해도 다음 주에나 오면 뭐 하니. 아버지 발인 이미 끝나 모셨어”
우울해하는 내 기분을 느꼈는지 민혁은 조용히 밖으로 나간다. 나가지 말고 나 좀 위로해 달라고 소리치고 싶기도 하지만 민혁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거실에 나가 민혁이 나가 버린 현관문을 바라본다. 베란다 창턱에 앉아 노을에, 핏빛 노을에 물들며 점점 방안을 검게 물들이는 밤하늘을 봤다. 오늘 아침, 민혁과 함께 누워 행복하게 같이 바라본 맑고 파랬던 하늘을 지금은 눈물 젖은 눈으로 바라봤다. 민혁이 현관 비번을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베란다에 앉아있는 내게 민혁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무슨 일 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해야 하나… ’
민혁에게 심적 부담과 나를 위로해야 하는 의무를 주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프다고 슬프다고 말하고 싶었다. 눈물로 범벅된 내 입술에 민혁 입술이 닿는다. 우리는 강한 입맞춤을 하며 서로를 안는다. 불륜이니 윤리는 그런 것은 70㎡ 안에는 없다.
민 조금씩 가라앉던 슬픔은 민혁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 벨소리에 다시 떠올랐다.
“비행 스케줄 나왔나요. “
“응. 그래요.”
민혁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동안 같이 갇혀 있는 그에게 미안했지만 나 혼자 아니라는 이기적 안도감도 느꼈다.
그 벌을 받았을까..
이제 민혁이 떠나야 했다.
내 아버지 죽음의 슬픔은 내 것만이어야 했다. 알든 모르든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 언제든지 다가올 거라고 알고 있던 이별 앞에 당당해야 하는 것 아닌가…
민혁도 공간을 옮겨 다닐 뿐, 봉쇄 속을 헤매고 있다. 어렵게 받은 출입증으로 민혁은 봉쇄된 아파트를 나간다. 봉쇄 40일을 함께 했던 민혁마저 떠나는 지금 나는 우주를 떠다니는 먼지 같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아버지는 내가 선택할 시간 없이 내 곁을 떠났다.
민혁이 떠난 자리는 컸다. 둘이 같이 앉던 식탁이 너무 넓다. 그가 쓰던 방에 들어가니 모든 흔적이 말끔히 사라진 게 약 오른다. 나에 대한 감정은 사랑이었을까? 동정이었을까?
*
그가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났고 코로나 항체, 자가진단 키트 검사는 하루에 2번씩 이어졌다.
코로나 검사를 받기 위해 태어난 피검체 같았다. 아파트 단체방에서 공구가 활발히 이뤄졌다. 한인단체방에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로 하고 공동구매로 물건을 샀었다. 초생강절임도 만든다. 생강을 썰며 민혁이 있으면 벌써 얇게 다 썰어주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그리움이 저며 들었다.
봉쇄상황에서 못할 것이 없었다.
봉쇄가 길어지며 아파트 안에서 창조경제가 생겨난다. 이발사다. 남자들 머리는 덥수룩해진 지 오래다. 내 앞 머리도 잘라야 할 때가 지나 눈을 자꾸 가린다. 만두를 만들어 파는 사람도 나타난다. 만두는 만들려면 손도 많이 가고 재료 준비도 많이 해야 하니 사 먹는 사람들이 많아 잘 팔린다. 와인 같은 알코올도 이제 공동구매가 가능하다. 와인을 사볼까 했지만 6병을 사야 해 포기한다. 그가 없는데 와인 6병이 왜 필요할까… 다들 왜 봉쇄되어 있는지 잊고 아파트 안에서 삶을 즐기고 있었다.
헬싱키에 갔던 민혁이 어렵게 인편을 통해 호밀빵, 치즈, 와인과 페이셜티슈를 보내왔다. 빵을 받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물 젖은 빵이 뭔지 알겠다. 봉쇄 생활을 처음부터 나 혼자 했으면 민혁의 빈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덜 힘들었을까, 더 힘들었을까, 그건 모른다.
사회적 제로코로나动态清零라는 새로운 방역기준이 나왔다.
감염자가 나오면 상하이가 아닌 다른 지역 수용시설로 보내면 상하이에는 감염자가 없으니 제로코로나를 달성할 수 있다는 신박한 정책이 실행되었다. 통계 속 제로를 만들기 위해 뭐든지 제로 코로나를 하기 위해 못 할 게 없었다. 그땐 몰랐다. 그 뭐든에 내가 포함될 줄을… 이때만 해도 내가 수용시설로 끌려갈 줄은 몰랐다. 아침마다 자가 진단키트로 코로나 검사를 해 아파트 단체 앱에 업로드 올려야 했고 저녁이면 관리 사무소 앞에 설치된 검사소에 가서 코로나검사를 받았다. 어떻게 통제를 해도가둬 놓아도 감염자는 계속 나왔다 온다. 감염자가 한 명이라도 나오면 그 동 전체를 봉쇄했다. 14일 동안 그 동에서 추가감염자가 없으면 봉쇄해제, 하지만 14일이 지나기도 전에 다른 동에서 안 나와 봉쇄를 풀어줬다. 또 아파트 동끼리 돌아가며 감염자가 나왔다. 그렇게 아파트 안에서도 돌아가며 확진자가 나왔고 끝도 없는 감염자 발생으로 상하이 봉쇄는 절대 풀리지 않는 봉쇄의 미로에 갇혔다. 어떤 값을 넣어도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수학공식 같았다.
민혁과 함께 같이 걸었던 길을 걸을 때마다, 생각나고 그리웠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홍차오 공항에서 멀지 않다 가깝다.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모습을 가까이 볼 수 있었다. 가끔은 이착륙하는 비행기 속 민혁이 조종을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민혁이 모는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나는 과연 언제 민혁이 조종하는 모는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그날은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