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

by 안나


서영은 설거지를 하다 말고 물 묻은 손으로 내 팔을 잡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서영은 조심스럽게 내 팔을 풀어냈다.


“먼저 주무세요.”


격리와 이동으로 지치고 지친 내게 서영과 보낸 몇 시간이 마치 집에서 보낸 것처럼 평온하게 느껴졌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웃는 서영에게 마음이 끌렸다. 샤워하고 나오니 서영이가 작은 방문을 열려 있었. 내가 방에 들어가자 서영도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시작했다. 누워 천장을 봤다. 네모난 하얀 하늘 같았다. 중국의 아파트 벽은 벽지 대신 하얀 페이트 칠을 한다. 이 작은 방이 한 달도 넘게 내 거처가 될지 그날 밤, 우리 둘 다 몰랐다. 서영이 위챗 메시지를 보냈다. 같은 공간에 있는데 문자를 보냈다.


“아침 드실 거면 빵 구워놓을까요?”


피식 웃음이 났다. 귀엽다.


“괜찮아요. 내일 다른 기장 숙소로 옮길 거예요.”


답장 메시지를 보낸 뒤 나도 모르게 마취주사라도 맞은 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격리시설에서 느낄 수 없던 편안함이었다. 새벽 여섯 시쯤, 조심조심 움직이는 기척에 눈을 떴다. 서영이 욕실과 주방을 오가며 조용히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서영은 커피를 좋아한다고 했다. 커피콩을 그라인더에 가는 소리가 들리며 드립향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느껴졌다. 출근한다는데 얼굴이라도 보려고 거실로 나갔다. 내 커피도 내려놨다.


“제 커피는 식어도 마실 만해요.”


서영이 맑은 미소로 지으며 말했다. 따듯한 커피를 한 모금 마셔 봤다. 빈 식도와 위를 타고 흘렀다.


“저희 집은 문 닫으면 자동으로 잠겨요. 집 비번은 404075예요.”


어디서 많이 들었던 번호다. 베이징 산악회 무전기 주파수였다. 서영마음은 아직도 베이징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금요일이라 그런지, 편하게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나갔다. 아직 하루도 안 된 공간에 모호한 관계의 내가 집주인처럼 남겨졌다. 커피를 마저 마시고 샤워도 마쳤다. ‘이제 떠나야지’ 현관문이 열리며 서영이 돌아왔다. ‘뭔가 두고 갔냐’ 집주인 서영은 현관문 앞에 손님처럼 서 있고 내가 집주인처럼 거실에서 마주하고 있었다. 이상한 장면이었다. 서영 얼굴색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이에요.”

“1층 현관문이 잠겼어요.”


우리가 자는 사이,아파트가 전수검사지역으로 지정되었다고 말했다. 주민 모두가 검사받고, 확진자가 없으면 봉쇄를 해제하겠다는 예상치 못한 감금이었다.


“이틀 뒤에는 아파트 봉쇄가 풀릴 거예요.”

서영이는 미안한 듯 내게 말했다.

“괜찮아요.”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왜 서영이 내게 미안해야 하지?’


서영은 직원들과 통화와 문자를 부지런히 주고받았다.

회사에서 쓰던 자노트북과 몇 가지 개인 물건을 필요하다고 했다. 기사 통해 그것들은 집 앞으로 보내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급한 일 몇 가지를 처리하고 나서야, 서영은 숨을 돌리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기장님은 어떻게 해요. 회사에서 호출하면 비행 나가야죠.”

“그러게요.”


대화는 어색했다.

그 순간, 현관문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방역요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1층으로 내려와 코로나 검사를 받으세요.”


내가 살아있는 이유는 코로나 검사를 받기 위해서인가?


이미 수십 번 겪었지만, 코로나 검체 채취 검사는 여전히 불쾌했다. 서영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나는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일까?’ 1층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시선이 내게 쏠렸다. 외국인 , 키 큰 남자..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틀 머물다 나갈 이방인이었고, 갇힌 것은 예정에 없던 일이니까.주민들은 잔치라도 벌인 듯 떠들썩했다. 오늘 저녁으로 뭘 해 먹을 건지, 아이들은 학교를 안 가서 좋아한다는 이야기까지 즐겁게 주고받았다. 아무리 1m 간격 유지하라고 소용없었다. 검사하다 코로나 걸릴 판이었다. 그들에게는 정상인 상황이 우리에게는 비정상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서영은 피곤한지 앉았다.


“뭐 시켜 먹을까요?”


나도 모르게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틀은 있어야 하니 장도 보겠다고 했다. 서영 집은 홍췐루 코리안 타운에서 멀어 배달이 안 된다고 했다. 나중에 한인마트에서 배달 가능한 지역과 안 되는 지역의 봉쇄생활이 얼마나 큰 차이가 나게 될지 몰랐다. 김밥과 떡볶이를 시켰다. 허마河马 앱에서 야채, 요구르트, 계란 같은 식료품을 주문했다. 막상 시키려니 금방 생각나는 게 없어 냉동만두, 삼계탕을 골랐다. 이게 내게 한 마지막 장보기였다. 아파트가 봉쇄돼 택배는 아파트 정문 앞에 두고 가야 했다. 각 동 1층을 지키는 보안이 대신 받아 배달했다. ‘이게 무슨 비효율인지….’ 잠시 후 서영이 김밥과 떡볶이를 들고왔다. 김밥 두 줄,빨간 국물 떡볶이와 어묵 2개. 우리가 함께 한 마지막 외식이었다. 회사기사에게 짐을 아파트 정문에 두고 간다는 연락이 왔다.


아파트 보안에게 받아온 짐은 28인치 여행용 캐리어만큼 컸다. 서영은 정신없이 짐을 풀어 노트북부터 꺼내 바로 업무에 들어갔다.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는 서영 얼굴에는 변호사의 표정이 뚜렷이 보였다 바쁜 서영과 갈 데 없이 이 집에 머물러 있는 내 신세가 묘하게 교차되었다. 서영은 분주했고 나는 공허했다.


나는 슬그머니 작은 방으로 들어왔다.

하루만에, 여기는 내 방이 되었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아내에게 카카오톡이 와 있었다. 부기장이던 시절, 교사였던 아내와 결혼했다. 기장들은 보통 같은 항공사 승무원들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 늘 바뀌는 일정과 환경 속에서, 배우자만큼 안정적인 직업이길 바랬다. 나는 남들보다 키가 컸고, 비행기 기장에 대령의 아들(그때만 해도 아버지가 곧 장군이 될 거라고 다들 믿었다.)이었다. 나를 좋아하는 승무원들은 많았다. 어머니는 늘 원했다. 돈 많고 집안 좋은 여자만. 대학생 때, 순수하게 사랑했던 첫사랑은 가난했고,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로 어머니에게 철저히 거부당했다. 그 이후로, 나는 어떤 여자를 데리고 가도, 마음에 들어할 리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에게 더 이상 나에 대한 기대감을 주기 싫었다. 어머니가 ‘고르고 또 고른’ 여자가 지금의 아내였다. 아내의 아버지는 대기업, 오빠는 의사. 선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자, 어머니는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잠실에 곧 재건축될 아파트를 가족명의대로 네채나 갖고 계시대”


아내는 나를 좋아했다. 언젠가 해야 할 결혼, 나를 좋아하는 결혼했다.어쩌면,사랑보다 편안함이 낫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게, 한국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남자처럼 그렇게 평범한 삶에 봉쇄되었다.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금 격리시설은 나왔지만, 아파트가 봉쇄돼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같은 회사 기장집에 머무르고 있어’

곧바로 아내에게 답장이 왔다.

‘남에게 신세를 지면 어떻게 해’


그 말에 짜증이 치밀었다.

‘다른 선택이 없었다고!

당신은 이런 상황이 되어 본 적이 없잖아’

소리 치고 싶었지만, 온라인 대화는 오프라인의 감정이 바로 상대방에게 반영되지 않는 장점이 있었다.

오늘 코로나 검체 검사했고 이틀 뒤면 봉쇄가 해제될 거라고 안심시키고 대화를 종료했다.

아내와 문자를 주고받는 사이, 거실은 조용했다.

급한 일은 끝났나 보다.

살그머니 문을 열고 나가니 서영이 식탁에 엎드린 채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지금 이 상황이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 다가왔다.

이 모든 일이24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일어났다.

중국에서 보낸 9년보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다.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서영이 조금 더 잘 수 있도록


“저녁 드실래요.”


서영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잠시, 내가 어디에 있는 거지 혼란스러웠다.


“자면 깨우지 그랬어요.”


서영은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서영이저녁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중국에 혼자 살게 되면서, 나는 요리를 시작했다. 배달 음식의 짜고 자극적인 맛이 싫어, 직접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냉장고 재료를 파악하다 ‘이틀 뒤면 떠날 텐데 왜 걱정하고 있지’ 하는 생각에 말없이 냉장고 문을 닫았다. 저녁 식사 후, 서영이가 설겆이를 했다. 정리가 끝나자 어색한 시간이 다가왔다. 둘 사이에 어떤 대화도 없이 자연스럽게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이틀째 밤, 어제는 과음했지만 오늘은 술도 없이 편안했고, 작은 방도 익숙해졌다. 금세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서영과 나는 동시에 요란한 휴대폰 알람에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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