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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비 Oct 26. 2024

점프가 형편없는 개구리는 어떻게 살아남을까?

 여느 때와 다름없는 퇴근길. 유튜브 알고리즘은 '개떡같이 점프하는 개구리' 영상을 추천해 줬다.

개구리들이 점프를 잘하는 것은 그들의 생태계에서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 개떡같이 점프하는 개구리는 점프만 했다 하면 머리 박치기를 하거나, 바람 빠진 고무공처럼 착지도 못하고 볼품없이 바닥에 퉁퉁 튕겨나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개구리가 포식자가 득실득실한 정글에서 살아남은 이유는 어 독보다 몇 배는 강력한 독을 품고 있기 때문이란다. 수천 킬로 떨어진 아마존에서 너무나 어설픈 점프 실력에도 살아남는 요 호박두꺼비에게서 나는 묘한 경외심과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 있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미술 관련 상은 항상 받았기에 어느새 수상은 당연한 일이었고, 미술 시간마다 아이들이 내 자리에 몰려와 감탄하는 게 익숙했다. 자연스럽게 미술대학으로 진학했고, 졸업했고 취업했다. 그러나 나는 10년 동안 단 한 장의 그림도 그릴 수 없었다. 내가 잘해서 좋아하던 것이 사실은 그리 대애단한 재능이 아니었다는 걸 서서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경쟁하다 끝내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대학에 척 붙던 친구, 탱자탱자 놀다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교수님을 즐겁게 하던 동기, 나보다 능숙하게 디자인을 잘하던 후배, 나보다 먼저 졸업해 좋은 기업에 들어가 착실히 경력을 쌓던 동기. 점프를 잘하는 게 당연한 개구리들 사이에서 난 어느새 나 혼자만 엉망인 호박개구리라 느꼈나 보다. 그래서 하얀 도화지 앞에선 숭덩숭덩 발이 빠지는 늪처럼 실수할까 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렇게 나의 애매한 재능에 대해 끝없이 의심하며 까마득한 내리막길을 걸어내려갈 때였다. 러시아 기차여행을 떠났다. 기차여행은 생각보다 무료했고, 그 시간을 보낼 무언가 필요했다. 혹시 몰라 챙겨 온 작은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꺼냈다. 그렇게 내 친구 크로키를 시작으로 앞사람, 뒷사람, 옆 칸 사람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중엔 동양인 여자애가 인물화를 공짜로 그려준단 소문이 기차 전체에 퍼지게 되었고, 차장님이 와 자기를 그려달란 부탁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기차 안에서 스케치북을 들고 바쁘게 뛰어다녔다(?) 기차를 탄 사람들의 인물화를 그려주는 대가로 여러 가지 먹을 것들도 얻고, 러시아 여행에 대한 꿀팁도 얻었다.


여러가지 먹을 것과 색연필을 깎아주던 투박하지만 친절한 손
여러 장의 크로키

 그렇게 난 이 기차여행에서 더 이상 '나는 왜 점프를 못하는 호박개구리일까'하는 생각을 접게 됐다. 완벽하지 않던 어지러운 선들이 가득한 투박한 크로키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다는 것은 이것밖에 못할까 채찍질만 하던 나에게 큰 경험이었다.



 스스로 호박개구리라 느끼던 나는 미술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됐다. 그러나 지금은 점프를 못하는 것보다 내가 가진 에 집중한다. 그러려고 노력한다. 미술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한 아이가 "선생님, 저는 재능이 없나 봐요. 이 정도로 배웠으면 더 잘해야 하는데..."라며 잔뜩 풀이 죽은 채 말했다. 그 학생에게서 한창 열을 올리며 1등을 못하는 것에 속상해 몰래 화실 화장실에서 훌쩍거리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여전히 아이들 앞에서 그림을 그려야 할 때마다 두렵다. 그럴 때일수록 더욱 과감하게 붓칠을 하곤 한다.


 화가 반 고흐가 그의 동생인 테오에게 보낸 편지엔 이런 말이 있다.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 다지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한다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끝없는 자기 의심 속에서 계속해서 한 가지에 몰입한다는 건 사실 저엉말 힘든 일이다. 그러나 점프를 못하는 호박개구리가 아마존에서 몇천 년의 진화를 거치며 살아남았단 과학적 사실이, 무언가를 잘, 계속 해내기에 부족한 인간이라며 비하하던 나에겐 더 이상 과학적 사실이 아닌 따뜻한 위로로 들렸다.


씻지 못해 얼굴은 번들거지만 누구보다 진지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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