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는 일본음식을 정말 사랑한다. 길거리에 저렴한 초밥 테이크아웃 전문점부터 고급 일식 레스토랑까지 일식을 즐길 수 있는 범위가 굉장히 넓다. 나는 그중 지어진 지 50년은 된, 역사가 꽤 있는 일식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오피스 중심가에서 유일한 일식 레스토랑으로 50년동안 터줏대감이었으니 단골이 무지하게 많은 건 당연하다. 70년대 쯤부터 써온 금방 분해될 것 같은 식기세척기와 수기로 장부를 쓰는 주인의 대단한 고집과 정성이 담긴 곳이다.
각기 다른 스타일을 가진 단골들을 위해 세심하게 기억할 것들도 많았다. 단골손님 단 한 명만을 위한 메뉴도 있고, 할인율도 달랐으며, 식사 스타일과 습관에 따라 '눈치껏' 해야 할 일들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센스 있게 일하면 팁 문화가 아닌 호주더라도 하루에 50불 넘는 팁(한화로 자그마치 45000원)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팁을 받을 만큼 일을 잘했던 건 아니다. 민망한 실수도 정말 많이 했고 손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실수를 많이 하는 게 나쁜 건 아니다. 기억에 남는 일화를 하나 말하자면, 단골 노부부 손님에게 국을 서빙하다가 식탁에 쏟았던 적이 있다. 다행히 손님 옷에 묻거나 다친 건 아니었고, 나는 죄송하다며 얼른 행주로 테이블을 치웠다. 하필이면 단골손님한테 실수를 했다는 사실에 일하는 내내 맘에 걸렸다. 그런데 마감할 즈음 사장님이 갑자기 20불을 주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 노부부 손님이 내가 놀랐을까 봐 달래주고 싶어 팁을 전해달라 하셨던 거다. 돈을 떠나서 그 마음이 정말 고마운 순간이었다.
노부부 단골 외에도 다정했던 손님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산타 같은 발그레한 볼과 인자한 웃음을 닮은 노신사 '존'도 그중 하나다. 존은 매주 월요일 점심마다 손녀와 함께 같은 자리에 앉았다. 주문은 늘 똑같았다. 벤토와 키자쿠라 사케. 손녀는 못 말린다는 듯 샐쭉한 표정을 짓곤 했다. 매번 같은 풍경이었지만, 그래서 좋았다.
처음엔 존이 말을 건네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그가 내 하루에 한번이라도 활짝 웃을 순간을 만들어주는 고마운 사람이란 걸 알았다. 늘 먼저 내 이름을 불러주고, 기분을 묻고, 장난을 치고, 웃을 때마다 ‘뷰리풀’이라 말하던 존. 그 덕분에 내 하루는 조금 더 가벼워졌다.
이렇듯 내가 일했던 식당은 손님들과의 접촉이 꽤 컸다. 이곳은 코로나 이후 급증한 모바일 주문도, 배달 서비스도 없을 뿐더러, 매주 혹은 매달마다 오는 수 십 년 된 단골도 수두룩했다. 그렇다 보니 의사소통이 수월할수록 단골들이 주는 팁의 액수도 올라갔다. 홀 직원은 나 혼자거나 둘 뿐이었기 때문에 팁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일한 지 꽤 됐을 땐, 나만 가지라며 나에게 따로 팁을 주는 손님들도 더러 있었다.
A4용지에 글씨만 적힌 메뉴판을 고수하는 것도 사장님의 굉장한 고집이다. 메뉴판은 불친절했지만, 내겐 최고의 교재였다. 알레르기, 글루텐 프리, 비건 메뉴까지 전부 영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했으니까. 덕분에 영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 나는 스크립트를 만들어서 끊임없이 자연스럽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공부했다. 툭 치면 나올 정도로 식당 관련 표현을 체득했고, 처음엔 부자연스럽던 표현들도 여기저기서 주워들으며(?) 계속 스크립트를 업데이트해 갔다. (이 정도면 팁 많이 받을만하지 않나요..?)
특히 실수했을 때 그냥 헤헤 웃으면서 바보같이 무마하고 싶지 않았다. 실수를 하더라도 영어로 명확하게 사과하고 상황 설명을 하고 싶었다. 고작 레스토랑 직원이었을 뿐이지만, 돈 버는 수단 이상의 것을 얻어 가고 싶었기 때문에 열심히 했다.
서비스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융통성’이다. 영어 실력과는 별개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손님에게 마냥 예스맨이 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기분을 상하게 할 만큼 차갑게 대할 수도 없다.
특히 ‘왕 대접’을 바라는 손님은 정성을 다해도 만족하지 못한다. 이런 경우일수록 선을 분명히 그어야 한다. 나는 사장님께 상황을 그대로 전달했다. “제가 안 된다고 설명드렸는데 계속 요구하세요”라는 식으로. 그래야 사장님이 내 능력을 오해하지 않고, 오히려 내 입장을 이해해 줄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런 손님에게는 적당히 사무적으로 대하는 게 내 정신건강에도 좋았다.
여기서 팁 하나. 캐주얼잡이라도 경력이 쌓이면 시급을 올릴 수 있다. 보통 2~4개월에 한 번씩 요구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 내가 일했던 레스토랑에서는 6개월 동안 두 번 올랐다. 다행히 사장님이 좋은 분이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올려주셨지만, 그렇지 않다면 직접 요청하는 것도 당당히 해볼 만하다. (물론 큰 실수 없이 성실하게 일하는 건 기본이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이 강하다. 외국에 나와 보니 더 확실히 느낀다. 그런데 일식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보니, 손님들이 나를 일본인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악의 없는 인사일지라도, 솔직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게다가 사장님도 일본인이 아닌데!) ‘동양인이면 일본인일 것’이라는 단순한 가정은 당황스러웠다.
서비스에 만족한 손님들은 간혹 내 이름을 물어보기도 하는데,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한국'에서 왔어~ 를 콕 집어 알려준다. 그러면 대개 반가워하며 한국 여행 경험이나 한국인 친구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서비스에 만족했을 때는 내 국적을 꼭 티 내는 거다. 반대로 실수했을 때는? 굳이 바로잡지 않았다. 그냥 일본인으로 생각하던지~
하루는 한 손님이 물었다. “너는 한국인인데 왜 일식 레스토랑에서 일해?”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돈 버는 데는 국경이 없으니까.” 결국 중요한 건 어느 나라 사람이냐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일하느냐다.
매일매일 다른 메뉴로 도시락을 싸줬던 남사장님 게리. 딸같다며 잔소리를 하면서도 누구보다 정이 많았던 여사장님 스테이시. 매일 같이 티격태격하며 함께 일한 쉐프 리처드. 내가 실수해도 늘 든든하게 같이 함께한 무니 언니. 우리 식구들, 다들 그곳에서도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