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국면, 베트남으로

by 주비

호주에서 지낸 지 1년째. 나는 다니던 일식 레스토랑을 그만뒀다. 늘 혼자나 둘이서만 일하다 보니 다른 동료들과 더 활기차게 일을 해보고 싶었다. 세컨비자도 연장했고, 나는 새로운 레스토랑에 면접을 보고 당당히 합격했다. 영어로 인터뷰를 해냈다는게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브리즈번이라는 낯선 둥지가 익숙해졌고, 지지고 볶으며 우당탕탕 했던 호주에서의 경험들이 나에게 주어진 또 다른 1년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게 분명했다.

그러나 마음속에선 끊임없는 회의감이 고개를 들었다. 한국보다 높은 시급으로 돈을 쉽게 모을 수 있다는 호주의 장점은, 살아보니 그다지 좋은 점도 아니었고, 난 워킹홀리데이를 왔지만 정작 '홀리데이'는 즐길 틈도 없고 그럴 깜냥도 안 되는, 참으로 스스로에게 각박한 사람이었다. 1년 기간 동안 저축 목표도 달성하고나니 글쎄.. 뭐랄까. 여기서 1년 더 있는 건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았다. 웨이터로 일한 건 단순히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돈벌이 수단이었을 뿐이었다. 한국에서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한편으론 계획했던 2년을 채우지 못한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 자책은 건넛집 이름 모를 아줌마의 성실한 성악 연습과 비교되어 매일 나를 초라하게 했다. 하지만 고민만 하느니 행동이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과감히 한국행 티켓을 샀고, 1년 만에 다시 인천국제공항 땅을 밟았다. 비록 2년을 채우진 못했지만, 호주에서 보낸 시간은 내 안에 ‘다시 도전할 용기’를 남겨두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다시는 사무직으로 일하고 싶지 않았다. 회사 생활은 나에게 악몽 같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늘 농담처럼 “안 되면 미술학원 강사 하지 뭐”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 말을 현실로 옮기기로 했다. 이전에 강사로 일한 경험이 있었고, 거기서 얻은 즐거움과 보람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 나만의 학원을 만들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호주에 있을 때부터 이력서를 다듬고, 귀국하자마자 집 근처 학원에 발품을 팔았다. 연구작(자신이 가진 최대치의 능력과 기교를 쏟은 한 장의 그림)을 정리해 SNS에 업로드하며 나를 알리려는 노력도 병행했다. 다행히 내 패기를 알아봐 준 원장님이 있었고, 나는 입시반 강사로 새 출발을 했다.

시작은 순조로웠지만, 세 달도 채 되지 않아 ‘계약 종료’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유일한 비정규직이었던 나는 납득할 수 없는 말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 급여 내역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나를 지탱하던 확신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힘이 쭉 빠져 인생의 낙오자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일주일 내내 죽은 듯 잠만 잤다.

우울과 함께 침전하고 있던 나는 돌연 여행을 결심했다. 매일을 우울함에 정신 못 차리는 나를 꺼내고 싶었다. 워킹홀리데이 시절 자주 먹던 쌀국수가 주는 향수 덕분일까, 아니면 대학시절 봉사활동으로 좋은 추억을 쌓았던 그 나라의 아련함 덕분일까? 나의 도피처는 엉겁결에 베트남이 되었다. 그리고 책가방 하나 메고 베트남 하노이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 인생의 강력한 터닝포인트가 그곳에 있지 않을까 조심스런 기대와 함께.



45일간 무비자 체류가 가능한 베트남은 편도행 티켓과 숙소만 예매하면 여행 준비가 끝난다. 나 같은 의욕상실 백수에겐 너무 훌륭한 도피처다. 하노이에 도착해 늦잠 자고, 낮술 먹고, 털레털레 구경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내 머릿속은 여전히 한국에 가면 뭘 해야 할까, 심란했다. 옆나라 라오스나 태국에 가볼까. 인도네시아를 가볼까. 중국을 갈까. 온갖 생각을 했지만,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리턴 티켓을 샀다. 리턴 티켓은 10만 원도 안 되는 초저가였고, 값싼 그 숫자가 '이게 결국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선택이야'고 말하는 것 같았다.

2층 테라스에서 본 하노이 전경.


하노이에서 며칠을 보낸 후 어느 날, 나는 하노이역에 가 무작정 가장 먼저 보이는 플랫폼의 티켓을 샀다. 그렇게 나의 베트남 무전여행이 시작됐다. 역 근처에서 간단히 끼니를 떼우고 역에 도착한 기차에 올라탔다. 티켓에 적힌 좌석을 떠듬떠듬 찾았다. 다행히 금방 내 좌석을 찾을 수 있었다.

내 좌석은 2층 눕는 칸이었고, 같은 방의 다른 칸은 모두 베트남 아저씨들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조심히 2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누워서 가는 좌석. 저 아저씨는 이 흔들기차에서 어찌나 잘 자던지 의문.
기차 안 화장실. 지린내가 대박이다.


간밤의 시끌시끌한 한 가족들의 대화 소리도, 끔찍이도 덜컹대는 기차도 상관없을 만큼 무거운 잠에 빠지려 할 때였다. 역무원이 날 깨우더니 다 도착했다고 알려주었다. 내가 내린 곳은 '동허이'라는, 하노이에서 500km나 떨어진, 현지인들조차 생소해하는 촌동네다.

밖은 여전히 컴컴한 새벽이었고, 내가 예약한 숙소는 걸어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택시 기사들이 딱싀? 딱싀? 흥정을 하며 내 앞을 막아섰지만, 이 시간에 혼자 택시 타는 건 너무 위험하다. 어디서 하룻밤을 보내야 할까 걱정하던 찰나, 다 꺼져가는 네온사인의 'MOTEL' 간판을 발견했다. 어디든 하루만 묵는 거니 감지덕지하며 서둘러 체크인을 했다. 방과 침대는 쓸데없이 넓었다. 이 방의 모든 것들이 새삼 너무 낯설어 그 넓은 침대에 몸을 잔뜩 옹크리고 잠을 청했다. 기차가 끼익 하며 멈추는 소리, 저 멀리서 개가 짖는 소리, 이따금 방문이 닫히는 소리까지 선명히 들릴 정도로 나는 잠에 들지 못했다. 호주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철저한 고독이었다.



다음날, 예약해 둔 녓레해변 근처의 바닷가 숙소로 향했다. 동허이는 하노이와 달랐다. 적막한 도로는 인류가 멸망한 폐허도시에 혼자 떠도는 주인공 같은 착각마저 들게 했다. 하릴없이 산책하고, 풍경 구경하고 밥 먹고.. 시끌벅적한 하노이보다 더 마음은 진정된 듯했다. 이곳에서 이틀을 머물다 호찌민으로 가기 위해 나는 다시 길을 떠났다.

비가 오면 비포장도로가 많은 동허이의 교통은 마비된다.


귀국 D-7. 마지막 여행지 호찌민에 입성했다. 나는 호찌민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좁은 골목길의 호스텔로 향했다. 이동하느라 지친 하루의 보상으로 맥주 하나를 턱 까고 로비에 앉았다. 베트남을 여행하는 동안 쭉 혼자서 고독하게 여행했던 탓에 누군가와 시답잖은 대화라도 나누고 싶었다. 때마침 한 인도 친구가 살갑게 말을 걸었다. 쉴 새 없이 떠들어대던 그의 옆엔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하며 이따금씩 우리 둘의 대화에 끼어들던 미국 친구가 있었다. 나와 그 미국인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노이에서 지낸 호스텔. 신축은 한국만큼 깨끗하다
직접 커피를 타주던 캄보디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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