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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어머니, 며느리의 뿌리까지 사랑하자

by 마음벗

솔직히 말하면, 며느리는 시부모에게 잘할 이유가 없다.


며느리들이 자라나는 동안, 시부모가 어디 한 푼이라도 보태주었는가, 밥 한 끼라도 차려주고 돌봐주며 키워주었는가. 아니다. 그럼에도 며느리는 그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그것이 바로 순고한 배려다.


처음 보는 아저씨, 아주머니에게 마음을 쓰는 것은 오직 사랑하는 남자의 부모라는 이유 때문이며, 그 안에는 순수한 배려와 선의가 담겨 있다.


며느리가 잘해주면 업고 다녀야 한다. 혹은 못해도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며느리가 친정에 잘하면 칭찬을 아끼지 말자. 그것은 도리를 아는 사람이라는 증거기 때문이다.

시댁은 아들로부터 효도를 받으면 된다. 그 단순한 진리를 왜 모르는 것일까.


또한, 며느리의 친정에 잘하는 아들도 칭찬하자. 우리 아들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

처음 보는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 친절을 베풀어 덕을 쌓는 것. 그것을 빼앗겼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결국, 선의는 강요가 아니며, 칭찬과 인정은 사람을 키운다. 며느리와 아들 모두, 그 과정에서 성장하며 관계 속에서 도리를 배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들이 아내의 친정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고 해보자. 며느리의 친정부모와 좋은 추억을 쌓았고, 며느리와 아들의 유대도 한층 돈독해졌을 것이다.


이제 친정 부모도 자연스럽게 우리 아들의 편이 되어줄 것이다.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셈이다. 이런 일은 기뻐하고 좋아해야 할 일이다.


이처럼, 아들이 친정과 시댁 모두에서 관계를 넓히고 긍정적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단순한 여행이나 친절을 넘어 가족 전체의 신뢰와 화합을 쌓는 행동이다.


결국, 아들이든 며느리든, 선한 행동과 배려는 사람을 키우고, 관계를 풍요롭게 한다. 가족 안에서 이러한 성장과 도리를 기뻐하며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부모의 태도이다.


부모는 도리를 말하기 전에 도리로서 행동해야 한다.

말로만 가르치고 설득하려 해서는 상대방이 늦게라도 깨우치기 어렵다.


설사 상대방이 도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다.

왜냐하면, 최소한 도리를 행한 사람 자신은 도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행동으로 보여준 도리가 곧 삶의 기준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준다.

말보다 먼저 행동이 빛나면, 세상은 그 진리를 늦게라도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


일부 시어머니들은 며느리에 대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며느리의 친정을 거론하며 “너희 집에서 그렇게 가르치더냐”라는 망발을 하기도 한다.

조금 순화된 표현으로는 “너희 집에서는 그렇게 하냐”가 있다. 그러나 이 두 경우 모두 며느리의 친정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다.


부디 친정 이야기를 할 때는 칭찬만 하길 바란다. 사람의 근본을 무시하면, 결국 그 사람을 무시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어머니가 며느리와의 신뢰를 쌓는 가장 좋은 방법은 며느리의 친정에 대한 존중이라 생각한다.

며느리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면, 그녀의 근본이 되는 곳, 즉 친정을 진심으로 아껴야 한다.

그곳에서 자라온 경험과 기억이 그녀를 만들었고, 지금의 그녀를 형성한 뿌리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며느리 개인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근본을 존중하는 것이 곧 그녀를 아끼는 진정한 방법이다.

사람을 아끼는 마음은, 그 뿌리까지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부모는 늙어서도 자식이 아이로 보인다고 하던데 그럼 며느리도 그렇지 않을까?

며느리는 내 아들과 동년배일 수도 있고, 나이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즉, 시어머니보다 한참 어리다는 뜻이다.

그 어린 사람을 괴롭히거나 부려먹어 얻는 것이 무엇일까?

그저 두고 봐도 아깝고,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한 존재다.

어린 마음을 억압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존중이자 배려가 될 것이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아들을 키워온 지난 경험을 비추어 보면 가능할 것이라 생각된다. 아들을 귀하디 귀하게 키웠을 것임을 알고 있다.


며느리 또한 그렇다.

귀하게 자란 며느리는 그대로 귀히 여기면 될 것이며,

여건상 귀하게 자라지 못한 며느리는, 내가 귀하게 만들어주면 된다.


인생이란 누군가에게서 무언가를 받는 것보다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었을 때 진정 보람된 것.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삶의 한가운데서, 진짜 어른을 만나보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값진 일이다.

며느리에게 그 어른이 내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인생에서 횡재의 경험일 것이다.


“누군가를 귀하게 여길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어른이 갖는 진정한 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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