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달을 품고 힘든 출산 끝에 낳은 나의 소중한 아들.
첫 뒤집기, 첫걸음마, 첫 울음소리까지 하나하나 다 기억난다.
그 작은 생명이 내 품에서 자라며 세상의 빛을 알아갈 때, 나는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배웠다.
아플까 봐, 넘어질까 봐, 혹시 마음이 다칠까 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던 시절.
잠 못 이루던 새벽을 지나 지금은 청소년, 초등학생, 유치원생이 되어 각자의 세상 속에서 자라나고 있다.
시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너도 아들 키우니까 이제 내 마음을 알겠지?”
그때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오래 곱씹었다.
아들을 키우니, 어머니 마음을 안다는 말의 뜻은 결국 본인에게 잘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네가 시어머니에게 잘하면, 너희 아들도 너에게 잘할 거야.”
그 말 뒤에 숨은 의미를 깨닫는 순간, 나는 조용히 소름이 돋았다.
정말 그게 옳은 걸까?
다 큰 아들이 엄마에게만 잘하고, 아내와 자식보다 엄마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야 하는 걸까?
그건 어머니의 사랑이 아니라, 소유욕 아닐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내 아들이 언젠가 아내를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릴 때,
그의 세상이 ‘나’로 채워지길 바라지 않는다.
그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웃고, 그 집의 가장으로 자신의 자리를 온전히 지켜가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나는 내 아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어머니가 되리라.”
아들이 결혼한 순간, 그는 누군가의 남편이 된다.
내가 낳았다는 이유로 붙잡을 수 없는 사람.
아들이 가족을 꾸리면 그 가족이 아들에게 1순위가 되어야 한다.
그때 놓아줄 줄 알아야 ‘성숙한 어머니’가 된다.
나는 멍청하지 않다.
내 외로움을 달래려 자식의 일상을 끌어오지 않겠다.
심심하다고 불러 앉혀 두고, 나의 적적함을 채우기 위해 그들의 시간을 뺏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내 하루의 공허함은 내가 채워야 할 일이다.
그것이 나의 몫이고, 어른의 품격이다.
아들의 가족이 평안해야 아들도 행복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며느리를 아끼고, 존중하며, 그녀의 행복을 내 아들의 행복처럼 여길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그의 아내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결국 어머니의 사랑이란, 붙잡는 것이 아니라 보내주는 것이다.
“아들은 남의 남자가 되기 위해 내게 온 존재다.”
나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그를 세상으로 보낼 준비를 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곳에서 사랑받고, 존중받으며, 행복하기를 빌어주는 것.
그것이 내가 아들을 낳은 이유이자, 이 세상에서 어머니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가장 위대한 사랑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해서 너의 자리로 잘 가라, 나의 아들.
너의 세상에서, 너의 사랑과 함께 진짜 어른이 되어라.
나는 네 뒤에서 조용히 등불이 되어줄게.”
“사랑은 붙잡는 힘이 아니라, 보내줄 줄 아는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