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두들기는 바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얇은 커튼이 흔들렸다. 창문이 단단하게 닫혀있었는데도 그 안에 달린 커튼이 날릴 정도였다. 제주도에서 태풍을 맞아본 적은 없는데, 하는 생각이 잠결에 스쳤다. 제주도에는 뭐랑 뭐랑 뭐가 많다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람’이었다는 것도 떠올랐다. 이번 태풍은 유달리 경로 예측이 어려워서 어떤 채널에서는 제주도를 강타한다고 했고, 또 어떤 뉴스에서는 제주도 한참 밑에 바다를 지나간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태풍이 제주도를 할퀴고 지나갔던 역대 태풍들만큼 강력하진 않을 거라는 말이었다.
시계를 보니 다섯 시. 한 번 깨고 나니 쉽게 잠이 들지 않아 아침식사 시간까지 조용히 책을 읽었다. 어제까지의 그 숨 막히고 메마른 마음으로 간신히 버텨온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오늘 나는 괜찮았다. 내 안은 자기혐오와 타인에 대한 미움으로 분열하고 있었는데, 이 험한 날씨가 내 안의 수많은 감정을 하나로 뭉쳐준 모양이다. 외부의 적이 내부를 공고히 한 상태였다.
숙소의 지붕과 돌담이 걱정될 정도로 바람이 불었다. 아침 식사 시간 내내 그랬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 녹차밭이랑 미로공원에 갈 예정이었다는 분을 다 같이 뜯어말렸다. 그분이 마음을 돌리는 동안 나도 뭘 하지, 고민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제주도’ 하나만 보고 달려온지라, 나는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는 상태였다. 그냥 비바람이 내려치는 돌담길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안의 한국인 정서가 나를 늘어져있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뭐라도 봐야지'하는 마음이 절반, '숙소 언니가 청소하고 정리하고 쉴 시간을 드려야 한다'는 마음이 반이었다.
서귀포에 있는 갤러리에 갔다 오기로 했다. 20분에 한 대 오는 버스를 타고 1시간을 달렸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두어 버스 창문에 김이 가득 찼는데, 그 바깥으로 비가 미친듯이 쏟아지는 것이 보였다. 태풍 전야에 뚜벅이로 제주도에 오다니, 아찔했다는 생각이 그제야 스쳤다. 버스는 반쯤 산길인 1차선 도로를 내달렸다. 그 비바람 속에서도 이 정도 속도로 달릴 수 있다는게 놀라웠다. 운전기사분은 내가 더 이상해 보였을까. 그 날씨에 누가 봐도 관광객이면서, 버스를 꾸역꾸역 잡아타고 거기까지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버스가 서귀포로 들어서면서 꾸깃꾸깃 넣어온 천 원짜리 우비를 꺼내 입었다.
버스 뒷문이 열리자마자 빗방울이 들어쳤다. 온통 회색빛인 삼거리, 사람이라곤 나 하나밖에 없었다. 물난리가 나 있었다. 우산을 켜자마자 뒤집어졌다. 침착한 척 반대쪽으로 돌아 바람이 우산을 똑바로 뒤집게 만들고는 방향을 가늠했다. 이 비바람을 뚫고 보이지 않는 갤러리를 찾아 걸어가야 했다. 지도 어플로 방향을 확인하는 몇십 초간 이미 우비 안으로 비가 들어찼다. 폭풍우 속에 퀴디치 경기를 뛰던 해리포터처럼 안경이 젖어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지도상으로는 고작 1킬로 조금 넘는 거리였는데, 어찌나 무서웠던지 아직도 그 공포가 생생하다. 나뭇잎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오다 내 발목에 찰싹 감겼다. 그 축축하고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느낌이라니. 으아악, 비명을 지르면서 다리를 동동동 털어냈다. 길을 건널 타이밍을 봤다. 이 날씨에 기죽은 사람은 나밖에 없는지, 차가 빛의 속도로 지나가는 삼거리를 건너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겨우 건널목을 건너고 보니, 눈앞에 5도쯤 경사진 길이 펼쳐졌다. 나무가 우거진 가운데로 약간 오르막인 길. 갤러리로 가는 길은 그 길 하나였다. 나무들이 만취한 것처럼 모든 가지를 흔들어제끼고 있었다. 인간이었으면 저런 바운스로 몸을 흔들다가는 허리가 꺾여 죽을 것 같았다. 평소에 15분이면 갔을 길을 30분도 넘게 걸었다. 태풍이 불 때는 당연히 우비만 써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우산을 안 쓸 수가 없었다. 바람 부는 방향으로 어떻게든 우산을 받쳐들고서 저속으로 나아갔다. 사방팔방으로 나뭇잎이 날렸고, 얇은 나뭇가지가 뚝뚝 끊어졌고, 맨살을 드러낸 팔뚝과 종아리를 날카롭게 할퀴었다.
갤러리에 겨우 도착했을 때는 머리카락의 뿌리까지 다 젖은 뒤였다. 이렇게 들어가면 작품에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닌가 싶었는데, 티켓부스에서 어서 들어오라며 나를 환영해주셨다. 하지만 모든 관광객이 다 나와 비슷한 상태였다. 차를 타고 왔어도 차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오는 찰나에 젖은 모양이었다. 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짠해 보였는지, 갤러리 내부에는 에어컨이 아주 차갑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 날씨에 건조하기까지 한 실내에서 오들오들 떨며 갤러리를 천천히 돌았다.
작품은 너무나도 훌륭했다. 작가님께선 홀로 카메라를 들고 제주도의 오름을 누비신 것 같았다. 하늘과 땅, 나무와 풀만 있는 풍경은 쓸쓸해보였지만 동시에 내가 겪은 적도 없는 무언가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다. 자연 안에서 풍요로웠을 삶. 폐교된 분교 건물을 활용한 갤러리에서는 어딘가 그 사진들처럼 고독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났다. 오래전에는 여기 쪼마난 아이들이 앉아서 떠들고 있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엽서를 몇 뭉치 샀다.
갤러리와 연결된 곳에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비가 멎을 때까지만 기다리자는 분들이 몇 계셨다. 나도 커피를 한 잔 내리고, 영어로 된 소설책을 꺼내 상 위에 올려뒀다. 이 비에 읽지도 않을 책을 어떻게든 껴안고 사수해 왔다는 게 웃겼다. 따뜻한 차를 홀짝홀짝 마시며 비가 내리는 걸 구경했다. 바깥에 있으면 그렇게 애처로운데, 안에서 바라보자면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이다.
문득 몇 주 동안 나를 지독하게 짓누르던 그 회사에 대한 생각이 전혀 나지 않음을 알아챘다. 심지어 다시 떠올렸는데도 슬프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속이 울렁거리지도 않았다. 얼떨떨했다. 고작 비바람에 좀 시달린 걸로 그 모든 고통을 날려버렸단 말이야? 30분 걸었다고 몇 주 간의 고통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됐다고? 정신적인 고통은 육체적인 고통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가? 그토록 집요하게 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더니, 어떻게든 마음을 비워보려 온 여행의 쓸모가 하나도 없어진 기분이었다. 현대의 인간은 날것의 자연 앞에 조금이라도 노출되면 이렇게 얄팍해지는구나. 내가 하찮고, 또 귀여웠다.(저는 가끔 저를 귀여워합니다.)
고백하자면, 떠올리기에도 민망해서 이 얘기를 하는 게 처음이다. 그래도 그럴 수 있지. 거짓말 좀, 아니, 많이 보태자면 나는 태풍 속에 아무도 없는데서 체온이 떨어진 상태로 30분을 걸어왔다. 생존에 필요한 물품은 하나도 없이 지갑이랑 손수건, 휴대폰이랑 두꺼운 영어 소설책 하나만 가지고. 이렇게 말하자니 너무너무 없어 보이지만(하지만 이와 별개로 태풍 속에 무모하게 나가시면 절대 안 됩니다. 정말 큰일 날 수도 있습니다. 모두 안전한 여행을 하시길 바라요.), 이미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있던 나에게 그 작은 모험이 정말 크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도시에서 온 하찮고 연약한 젊은이여. 앞으로도 폭풍의 언덕 위에 서있는 것 같거든 산을 타고, 헤엄을 치고, 쉼 없이 뛰어서 번뇌를 날려 보내면 되겠다.
다음 편이 마지막 편입니다. 그날 제주도의 밤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런 만남이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