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로는 이공삼공, 숫자로는 2030. 영어로는 MZ세대라고도 한다. 각 종 기사나 매체에서는 우리를 '버림받은 세대'라고 부른다. 오늘의 글은 우리 세대는 과연 버림받은 세대인지, 그리고 이 세대의 가장 큰 특징인 '종족 번식 기능 상실'에 대한 고찰을 해본 것이다.
객관적이기 위해 노력한다. 객관적이기 위해, 내 주관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들어가며 설명을 해보려 한다.
한반도의 역사를 간략히 정리했다.
선사 시대 : 한반도에 최초의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한 시점.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 포함.
삼국 시대 : 1세기 - 7세기.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이 한반도를 지배.
통일 신라, 발해 : 7세기말, 신라가 삼국을 통일. 이어 발해가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부를 지배.
고려 시대 : 918년 고려 건국. 1392년 조선 건국 때까지 지속.
조선 시대 : 1392 - 1910년 지속.
일제 강점기 : 1910 - 1945년 지속.
현대 : 1945년 이후 남북 분단.
나는 역사 전문가가 아니다. 그래서 전문가가 생각하는 한반도 최악의 세대를 꼽아봤다. 아래는 역사 1타 강사 '전한길' 선생님의 의견을 정리했다.
3위 : 1580년 대 생.
10대, 20대 : 임진왜란.
30대 : 사르후 전투. 이괄의 난.
40대 : 정묘호란.
50대 : 병자호란.
<한줄평 : 평생 전쟁에 시달린 세대>
2위 : 1660년 대 생.
10대 : 경신대기근.
20대 : 을병대기근.
<한줄평 : 백성 포함, 고위 관료들도 음식이 없어서 죽음. 무작위 식인 사건이 특별히 대수롭지 않던 세대.>
1위 : 1220년 대 생.
10대 - 40대 : 몽골 침입.
<한줄평 : 몽골군은 10살 이상의 남자를 모두 살해. 여자와 아이들 납치. 몽골군 침입 소강상태에는 최 씨 정권이 백성들을 수탈.>
결론은, 지금의 2030이 객관적으로 '버림받은 세대'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 임팩트가 약하다. 우리가 좀 못 먹고 다닐 수는 있지만, 굶어서 죽지는 않는다. 잘 나가는 남들을 부러워하며 살긴 하지만, 외국군이 우리를 총칼로 살해하거나 가족을 납치해 가는 상태가 아니다. 그러니까 세상이 우릴 더러 '버림받은 세대'라고 부른다고 해서 스스로를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인 것은 사실이고, 사실이 아닌 것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2024년 한국의 출산율은 가임 여성 1명 당 0.7명이다. 돈 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대체로 지금의 가임기 여성은 월 500만 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지 못하는 남성과 결혼할 의사가 거의 없다.
약 5년 전의 서울 시 조사 데이터를 활용해 보면, 월 500만 원보다 못한 소득을 올리는 인구가 총인구의 92%였다. 월 350만 원보다 못한 소득을 올리는 인구가 총인구의 74%였다. 월 200-250만 원의 소득을 올리는 인구 비율이 총인구의 20% 정도로 가장 높았다.
남자는 그런 여성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기 전까지는 어깨 처진 남자 노릇을 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래서 결혼과 연애가 없어진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오로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만을 보자면, 대부분의 남성이 월 500만 원의 수입을 가지게 되면 된다. 그것이 실현될 수 없다면, 여성들의 눈높이가 낮아지면 된다. 또는 그 중간 어딘가에서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면, 그 또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이것도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간단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academic 한 성격으로 생각을 해보아도, practical 한 성격으로 생각을 해보아도, 전후자 모두 실현될 수 없다. 먼저, 월 500만 원이라는 숫자는 숫자 자체에 의미를 둘 수 없다. 통화는 물가에 비해지는 상대적인 개념이므로, 현재 시점의 기준에서만 500만 원이라는 숫자가 상대우위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본질적으로는 저러한 상대적 윤택함을 지닐 수 있는 '승리' 개체의 수는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경쟁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리와 도출값을 감내하고자 하는 뜻이 없는 대부분의 가임기 여성들이기에, 대한민국은 그에 맞추어 자체 소멸 중이다.
여러 생각을 해보았지만, 이 문제는 해결할 수가 없다고 보인다. 위의 해석은 오직 금전적 측면에서만 바라본 것이다. 결혼이나 2세 문제는 돈 말고도 따지는 것이 많이 있기 때문에, 더욱이 해결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트로트 가수 '태진아'의 노래 중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노래가 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 눈이라도 마주쳐야지 / 만남의 기쁨도 이별의 아픔도 / 두 사람이 만드는 걸 / 어느 세월에 너와 내가 만나 / 점 하나를 찍을까 / 사랑은 아무나 하나 /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 /
사랑은 아무나 하나 / 흔히 하는 얘기가 아니지 / 만나고 만나고 느끼지 못하면 / 외로운 건 마찬가지야 /
실질적인 엥겔 지수가 워낙 상승한 탓에, 눈이라도 마주쳐서 누굴 만나면 미래를 잃게 되는 현실이 사랑을 아무나 할 수가 없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2세 걱정은 나중 문제이다.
서른이 된 지금의 나는 여자 만나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미래를 보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양립할 수 없겠다는 판단을 했다. 이제껏 짧은 삶의 경험을 미루어보아 나와 같은 삶의 양식을 갖추는 소수의 인물은 두 가지 활로로 나뉜다.
첫째는 직장과 투자를 병행하는 이들, 둘째는 사업에만 집중하는 이들이다.
이렇게 밖에 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한 사람이 가진 유형 또는 무형의 자원은 한계가 있다. 유무형의 자원이라고 함은 시공간의 한계 그리고 돈의 한계를 뜻한다. 이렇게 판단한 것은 개인적인 경험을 비롯해서 이다.
나는 5년 이상 직장과 투자를 병행해 왔고, 1년 이상 이런저런 작은 장사와 투자를 병행했었다. 특히 가장 최근의 1년 간 배운 것이 많았다. 특히, 세금에 대해 그러했다.
가장 큰 포인트는 세금의 압박감이다. 직장생활에서의 세금 압박감은 크지 않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모두 원천징수가 되기 때문이다. 따로 세금을 내어야 할 돈 준비를 생각할 필요도, 그렇게 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사업과 투자는 따로 염려하고 준비해야 한다.
또한 개인이 사업 활동으로 인한 세금, 투자 활동으로 인한 세금 양쪽을 모두 관할하기는 정말 어렵고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 몇 주 전쯤 50대의 독자 한 분이 나의 글에 댓글을 남겨주신 적이 있다. 사업을 할 거면 사업만, 투자만 할 거면 투자만 하는 게 맞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을 처음 읽었을 당시에는 특유의 타고난 성질머리 때문에, 내가 어찌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자산 증식을 가속화시키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자금난을 겪다 보니 차가운 이성이 발현되기 시작했고,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의 말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댓글 말미에 '자신이 50년 살아보니 그렇더라'라는 말을 남겼었다. 그것은 데이터의 성향이다. 그래서 혼자 멍청하게 고집을 부리기보다 한동안은 투자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오히려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길게 보았을 때는 더 빠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사업의 세계에 완전히 관심을 끈 것은 아니지만, 공격할 준비는 해 두되 지금 당장 방아쇠를 당기지는 않기로 했다. 다가오는 5월에 세금 낼 채비를 잘해두고, 지금 돌리고 있는 투자를 무리 없이 진행하기 위함이다.
매해 세금 낼 준비를 하며 졸라매는 청년기의 삶은 연애를 할 밑천이 없다. 포기하는 고통은 정신적 건강을 해칠만큼 상당하지만,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삶을 살지에 대한 선택의 자유는 오롯이 개인에게 있다. 거기에서 발생하는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오롯이 개인에게 있다. 모두가 이게 이렇더라 저게 저렇더라 말할 수 있고, 직시할 수도 있으며 무시할 수도 있지만, 자유를 누리는 것과 책임을 지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를 비켜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