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작가로 성공하는 정석적인 방법은 작가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것으로 성공한 후, 책을 써서 작가로 성공하는 것이다. 결과값이 그렇다. 나는 아직은 성공한 남자가 아니다. 그러나 글은 계속 쓰고 있다. 브런치를 둘러보니, 나는 글을 자주, 많이 쓰는 편이다.
나는 당연히 성공할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삶의 양식을 반칙 없이 정직하게 감내하고 있다. 시간의 문제인 것이다. 나는 빠른 속도를 좋아하기 때문에,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작가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공적인 작가가 되기 위한 정석적인 루트는 이미 밟고 있지만, 이에 만족하지 못해 정석적이지 못한 방법 또한 쓰는 것이다. 이는 아직 성공한 것이 아닌 채로 글을 계속 쓰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오늘 글의 주제는 '무식한 전략이 가진 힘'이다.
나는 고등학생 때, 4대 강 자전거 길을 따라 종주를 해본 적이 있다.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는 화학 선생님과 친구들 몇이 모여 낙동강 종주를 갔었다. 낙동강 하구둑에서 시작하여 수원지인 안동댐까지 가는 루트로, 거리는 400km가 좀 넘는 거리였다. 선생님은 우리의 페이스메이커였다. 목표는 완주가 아닌, 72시간 내로 주파하는 것이었다.
나는 걸뱅이였기 때문에, 내 걸레짝 운동화보다도 싼 자전거를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그 깡통 자전거를 가지고 야자 전 시간을 이용해 약 3개월가량 훈련했다. 팀이 매일 25km 정도씩, 전력으로 달리며 허벅지 근지구력을 키운 것 같다.
선생님은 울트라 마라톤이나 트라이애슬론도 소화하는 남자다운 분이셨다. 훈련을 마치고 여름 방학이 되었고, 우리는 종주를 시작했다. 72시간 안에 주파하기 위한 전략 같은 건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든 도저히 안될 때까지 최대한 질주하는 것이 전략이라면 전략이었다.
우리는 3일 안에 400km 이상을 주파했다. 첫날 180km, 둘째 날 150km, 셋째 날 100km를 달리고 안동댐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름이라 땡볕일 때도 있었고, 폭우가 쏟아질 때도 있었다. 중간중간 산을 타기도 했다. 전해질 알약과 포도당 알약을 먹어가며, 죽어라 밟았다.
서른이 된 지금 되돌아보면, 무슨 생각으로 저 짓거리를 했는가 싶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것을 배운 귀중한 경험이었다. 저 경험으로 배운 것은 '무식한 것이 생각보다 상당히 뛰어난 퍼포먼스'를 낸다는 점이었다.
그 선생님이 하셨던 한마디가 지금도 기억에 난다. 폭우에 산길을 타면 심장이 쫄깃한 장면들을 마주치게 된다. 물에 젖은 흙진탕에 바퀴가 헛돌고, 커브길에서 뒷바퀴가 측면으로 미끄러지기도 한다. 급하게 기어를 바꾸다 보면 체인이 풀려나가 순간적으로 추진력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를 방치하고 달려 나갔고, 우리는 야밤 산골짜기에서 실종되기 싫었기 때문에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따라갔다.
그래도 학생들이 실종되면 안 되기 때문에, 너무 쳐진다 싶으면 잠깐 담배를 태우며 기다려 주실 때가 있었다. 그때 뒤쳐진 친구들을 기다리면서, 내가 선생님께 자빠져서 큰일 날뻔했다는 말을 했었던 것 같다. 이에 선생님의 한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살고 싶으면 살아서 오겠지.
이때부터 나는 'Max Horse Power'에 대한 감각을 지니기 시작했던 것 같다. 무언가에 대한 퍼포먼스를 높이기 위해서는, 마력을 최대한 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이나 전략을 알고 가는 것은 방향 설정을 올바르게 하는 것일 뿐이지, 실제 많은 결과치를 만들어 내는 것은 마력, 그러니까 압도적인 힘 그 자체인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이것을 사업이나 투자, 자산 증식의 개념에 도입해왔다. 실제로 이익이 된다. 그래서 스스로를 극한까지 무식하게 몰아붙이는 습관은 퍼포먼스를 내기에 적합한 전략이다. 그렇게 간단하다. 정말 살고 싶으면 결국에는 살아서 가게 되어있다.
나는 스스로에게 편집적으로 박하며 엄격한 편이다. 내 몸뚱이가 생산적인 활동을 안 하고 있는 꼴을 못 봐주는 뇌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경제적 통계 하위 4%에서 상위 어딘가 까지 올라온 것 같기는 하다. 내 1차 목표는 상위 0.84% 이내이다. 2차 목표는 0.1% 정도 되는 것 같다.
매일 일을 하고(그래서 요일 감각이 없다.),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고, 틈만 나면 글을 쓰는 습관은 그래서 그렇다. 최대 마력을 내려고 하는 것이다. 쓰는 글의 양에 비해, 구독자 수는 많지 않지만 그런 걸 신경 쓰는 경지를 넘어섰다. 생각해 보면 애초에 내가 글을 써서 이익을 주려는 대상들은 소수의 그룹이다. 구독자가 적을 수밖에 없다. 자수성가를 간절하게 원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자수성가를 원하는 이들은 이같은 'Max Horse Power' 개념을 가지고 살면 이익이 된다. 이것에 강박이 되면 될수록, 어딘가로 이동하는 이동시간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진다. 실제 출력물의 수량에 집착하게 된다. 예컨대, 글을 얼마나 많이 썼는지, 매출과 저축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투자 금액을 얼마나 더하고 있는지, 생활비나 세금으로 새어나가는 돈을 얼마나 많이 잡아내고 있는지 따위 등의 일들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바쁜 감정을 느끼며 뿌듯해하는 실속 없는 행동은 안 하게 된다. 그것은 출력물의 수량과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얼마나 잽을 많이 넣고 있는지, 그 전체 수량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심화될수록, Action에 할애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늘게 된다. 이외에 할애하는 시간은 압도적으로 줄게 된다. 그래서 독서를 하는 시간조차 줄게 된다. 독서는 Action이 아니기 때문이다. (독서는 좋은 것이지만, 현실을 변화시키는 퍼포먼스와 직접적인 연관은 전혀 없다. 그저 소프트웨어를 다잡는 도구일 뿐이다. 뭘 읽는다고 결과물이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 권리가 있다.
대중들이 재미없어하는 이런 글을 계속 써서 구독자가 빠질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강한 영혼들과 함께하고 싶다.
이제 설 연휴에도 돈 벌 궁리를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