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01 댓글 14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그랜드 마스터

by 언더독 May 02. 2024
아래로

체스 경기를 본 적이 있다. 그랜드 마스터끼리의 수싸움을 구경해 봤다. 


나는 체스 규칙만 안다. 전략을 배워본 적이 없다. 아는 게 많지 않지만,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양쪽 모두 최선의 수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끊임없이. 


누가 더 그것을 끈기 있게 하는지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싸움이다.


인생도 같을 수밖에 없다.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 최선의 선택을 행하는 데에 집중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승리할 확률이 높다. 이러한 성향이 짙은 사람을 보고, 자기 규율이 있다고 표현한다. 


자기 규율. 짧게 설명하자면 기분이 좋건 나쁘건, 컨디션이 좋건 나쁘건 해야 할 일들을 해가는 것을 말한다. 세이노의 가르침을 쓰신 세이노 회장님은 이를 적토마에 비유했다. 적토마에게는 홍당무가 필요 없다는 그 말. 


오늘 밤 나의 기분은 좋지 않다. 그럴만한 일이 있었고, 나는 그런 기분이 든다.


그러나 또 글을 쓴다. 이것이 내가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수이다. 나는 작가이고, 작가는 글을 쓴다. 끊임없이 생산물을 펼쳐 보이는 것 자체만으로 독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이 작가는 성실한 작가라는 인상으로 글의 창의성과는 무관하게, 마음의 울림을 조금이라도 줄 수 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글을 쓴 지 2년이 좀 안되어 간다. 지금은 구독자가 1000명에 가깝다. 100명 남짓한 시절부터 내 글을 계속해서 보아준 분이 계신다. 'CEO 이진' 님이다. 처음 설익은 실력으로 글을 쓸 때부터 나에게 관심을 주셨다. 첫 자가출판을 시도하고, 인플루언서들과의 미팅을 하고 다닐 때도 내 글을 보셨다. 주식투자에 관련된 글을 쓸 때도 보셨다. 온라인 쇼핑몰을 전투적으로 운영할 때도 내 글을 보셨다. 그리고 지금도 보고 계신다. 


아마도 내 글의 독자 중,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이 분일 것이다. A to Z를 함께했다. 실제로 뵌 적은 없지만, 나는 이 분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 감사하다. 정말로 그러하다.


이처럼 분명히 자기 규율은 다른 사람의 진심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계획이 뒤틀리고 악재가 연달아 발생할 때, 최선의 수를 두는 행동이 나를 구제해 줄 확률은 사실 그리 많지는 않다. 그러나 10번 중 1번이라도 나를 구제해 줄 수 있는 확률을 지니고 있다면, 행함에 의미가 있다.


나는 과거에 항해사였다. 컨테이너선박을 운항하는.


브런치 글 이미지 2


야간에 중국 국적의 화물선이 내 선박을 향해 추돌하는 각도로 돌진해 올 때가 있었다. 선박끼리의 추돌사고는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참사이다. 추돌하면 천문학적인 손실에 이어 형사 책임까지 안게 된다. 인명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도 대단히 높다.


미리부터 추돌 위험에 대해 감지했다. 무전을 해도 답신이 없었다. 등화 신호에도 답신이 없었다. 음향 신호에도 반응이 없었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통신을 사용해 봤다. 미리부터 각을 틀어 추돌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주변에는 작은 어선들도 많아 복잡했다.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


나는 확신했다. 저 선박의 항해사는 술에 떡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경제 항로를 임의로 이탈하는 것은 회사에게 욕을 먹을 일이지만, 추돌 사고를 낼 수는 없었다. 나는 조타수에게 급변침을 지시했고, 길이 300m에 달하는 선박이 육중하게 기우뚱거렸다. 제자리 급선회를 했다. 거대한 프로펠러 샤프트가 떨리며 선체의 진동이 발목에 느껴졌다. 


그렇게 추돌을 피할 수 있었고, 우리는 예정 시각에 맞추어 항구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최선의 수를 연속해서 두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글로 쓴다. 정말 구제받아야 할 순간에는 하늘이 돕는 것 같기는 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설령 하늘이 무심하여 내게 파멸을 선사한다고 할지라도. 


내가 마지막까지 최선의 수를 끊임없이 두었다는 기록을 남기게 되면, 나의 아들이나 손 아랫사람들에게 그러한 강인한 영혼을 심어주게 된다.


그러한 영혼을 이어받은 이들 또한 무수한 세상의 공격을 받을 것이나, 그 중 아다리가 맞아 영웅이 되는 인물이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더더욱 최선의 수를 끊임없이 둘 수밖에 없다. 나는 그것이 명예라고 생각하며, 진정 선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나는 글을 계속 쓸 수밖에 없다. 당장에 글이 돈이 되지 않고, 당장에 진척이 보이지 않더라도 이것이 지금의 내게 주어진 최선의 수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어떤가. 최선의 수를 끊임없이 두고 있는가.


어차피 고통은 피할 수 없다. 기왕이면 본때를 보여주는게 합리적이다.어차피 고통은 피할 수 없다. 기왕이면 본때를 보여주는게 합리적이다.


Jimi Hendrix - Voodoo Child

https://www.youtube.com/watch?v=l8rrobYMEEQ




언더독 작가의
작품이 좋았다면 작가를 응원해 주세요.
이전 03화 미얀마에서 온 선물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