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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온 선물
by
언더독
Apr 3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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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95년생이다. 지난 30년을 타 또래들보다 밀도 있게 살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몰락한 가문을 재건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야 했다.
과거 일터에서의 기억을 써보려 한다. 20대 초반의 기억이다. 일찍부터 큰돈을 벌어야 했기에, 위험하고 더럽고 부조리가 가득한 업계의 노동자가 되었다. 알면서도 스스로 들어갔다. 그 길을 걷는 것 이외의 최선의 수가 보이지 않았다.
이 나라 저 나라 끌려다녔다. 주로 동남아와 제3세계를 다녔다. 외국인들과 몇 년을 일했다. 고통스러운 일터에서 동고동락했던 미얀마, 필리핀 사람들이었다. 직급으로는 내가 위였지만, 나이와 짬밥은 그들이 많았다. 나는 그들과 형제처럼 지냈다.
당시 근무 중 사고로 죽은 사람이 몇 있다. 내 기억 속에서만 살아있는.
오늘 글은 그렇게 될 뻔했던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다.
미얀마에서 온 한 젊은 가장이 생각난다. 일을 열심히 하던 사람이었다. 키도 크고 잘 생겼었다. 갓 아빠가 된 젊은 남자였다. 덥고 추운 바깥에서 힘들게 일을 한 뒤, 미얀마식 돼지고기 튀김에 산미구엘을 같이 마시며 가정사를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이 사람은 어리고 일에 서툴던 새파랗던 나를 넓은 관용으로 대해주었다. 하나 둘 직접 알려주고 연습도 시켜주었다. 내 실수로 자신이 다칠 뻔했는데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어느 화창한 여름날, 그는 의식을 잃은 채 의무실로 실려왔다.
작업장 근처에서 낙하하는 쇠지렛대를 머리에 맞고 쓰러졌던 것이었다. 뒤늦게 바닥에 고꾸라져있는 그를 발견해 동료가 허겁지겁 짊어지고 온 것이었다.
이마가 찢어져 머리뼈가 보였다. 피가 낭자했다. 입에는 게거품을 물고, 눈의 검은 자가 보이질 않았다. 문명과는 먼 곳에 떨어진 위치였기에, 구급 용품이 부족했다. 열상 부위가 너무 커, 응급 키트의 봉합용 실이 부족했다. 낚싯대에서 낚싯줄을 뽑아 남은 부위를 집었다.
작업장에서 일을 하다 쇠지렛대를 떨어뜨린 다른 미얀마 동료는 그의 팔을 부여잡고 꺼이꺼이 울고 있었다. 죄책감에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급한 출혈을 막고 며칠을 동료들끼리 돌아가며 돌보았다. 기적적으로 그의
의식은
돌아왔지만
거동을 못
했다.
회사에 사고 보고를 했다. 가능한 최선의 방안을 강구했지만, 사고시점으로부터 첫 전문의 진찰까지는 며칠이 더 소요되었다. 정밀 검사 상 큰 열상과 뇌진탕, 척추 근처의 데미지가 있었다. 다행히 목숨에 지장이 갈만한 수준은 아니었다고 했다.
근로 계약이 끝나기 전이기는 하였으나, 스스로 근무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충분히 납득이 될 만한 상황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회사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의사가 쓴 검진서에 치명적인 데미지는 없다고 쓰여있었기 때문이었을까.
회사는 본국 송환비와 제반 비용을 감당하기 싫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을 잘 구워삶아 다시 근무에 복귀할 수 있도록 적당히 요리해 보라는 것이 회사의 뜻이었다.
초짜 관리자 직급이었던 나는 내 상급자들이 정말로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병실에 자주 찾아가 맛있는 것이라도 주고 이야기라도 들어주는 것 밖에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상급자들에게 그의 상태가 진단서보다는 더 안 좋다고 말 몇 마디라도 더 해보는 것 밖에는 없었다.
나의 상급자들은 내가 그를 싸고돈다며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그에게 스스로의 증상을 더 강하게 피력하라고 계속해서 조언했다. 그는 그렇게 했다. 본국의 노동조합에 도움을 구하라는 조언도 했다. 그는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얼마 후 그는 양곤(미얀마 수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떠나기 전 나를 꼭 안으며 고맙다고 했다. 절뚝이며 택시에 구부정 타던 뒷모습이 기억난다.
얼마 뒤, 그와 같은 미얀마 동네에 살던 다른 사람이 현장에 파견되었다. 그는 내게 론지(미얀마 전통 남성전용 치마)를 주었다. 부상을 입고 돌아갔던 그가 내게 선물로 보낸 것이라며.
그 치마를 입고 미얀마 형제들과 조촐한 띤잔(4월에 열리는 미얀마 전통 물 축제)을 즐겼던 기억이 난다.
들리는 근황으로 그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몇 년 전 미얀마에는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고, 지금도 내수 직업으로는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수도 양곤의 거리에서는 총성이 울리고, 시민들은 체포되거나 사살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외지고 위험한 일터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어떤 이들에게는 꿈만 같은 조건이라는 것을.
내가 겪어왔던 개인적인 삶의 역사가 잔인했던 탓에, 나는 대체로 부지런한 편이다. 기분이 좋았던 적이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게을러져 본 적은 없다. 아무리 기분이 안좋아도, 아무리 화가나도 생산적인 행위를 멈추지는 않는다.
공자가 남겼던 말이 있다. 배움은 선택이 아닌, 도덕적 의무라고.
나는 이 말을 하고 싶다.
근면성실은 선택이 아닌, 도덕적 의무라고.
그래서 계속 글을 쓴다.
Merry-go-round of life
https://youtu.be/2pQKqQ9sG50?si=z8StTeJ-RB0wSe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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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생 에세이 Volume 3.
01
둘 중 하나여야 한다네.
02
15층 아기 또 우는구나.
03
미얀마에서 온 선물
04
그랜드 마스터
05
왜 홍차 박스를 집어 던졌나.
95년생 에세이 Volume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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