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 '이이제이(以夷伐夷)'는 오랑캐로 오랑캐를 쳐서, 자국의 이익에 기여한다는 의미이다. 똑똑하게 싸운다는 뜻이다. '외교 플레이'를 한다는 뜻이다. 중국 후한의 역사를 기록한 '후한서'에 이 개념이 등장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이독공독'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의미는 다음과 같다.
독으로 독을 다스리다.
지금 시대의 대부분의 약물은 부작용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말이 된다. 독으로 독을 치료한다는 이치가.
약 자체에 독이 있으니 부작용이 있는 것이고.
그 독이 다른 독을 치료하는 것이니 이치가 맞다.
이 이야기를 서두에 둔 것은, '동기부여'에 관해 말하기 위해서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동기부여'라는 것이 쓸모가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결과를 못 내기 때문이다. 결과를 못 내면, 쓸모가 없는 것이다.
과정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에 돈벌이 나가서 그런 말하며 주변에 똥고집 부려봐라.
절단이다.
무엇이든 결과가 사람을 증명한다. 세상 이치는 그 자리, 그대로 있다. 그걸 외면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여기서부터 교정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동기부여로는 어떻게 결과를 내지 못하게 되는가. 이것은 복잡할 것이 없는 문제이다.
무언가에 성과를 내려면, 기본적으로 하나의 동일한 작업에 장기간 노동을 인풋 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장기간은 몇 년을 말한다.(나는 여기서 무급으로 2년 가까이 글 쓰고 있다. 거의 매일을.)
동기부여가 매일마다 되는 것이 아니다. 안되는 날이, 되는 날 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간단하다. 복잡한가?
그래서 결과를 못 낸다. 의미가 없다. 이것에 대하여 논하거나 찾아보려는 시도는 명쾌한 시간낭비이다.
이것도 이해를 못 하거나 수긍을 못하는 머리라면, 할 말이 없다. 정말로 달리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장기간 노동을 인풋 하기 위한 방법을 말해보아야 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방법이 없다.
대신, 고통스럽게 장기간 참고 견디며 혼란스러워하고 가끔은 우울해하기도 하며 때때로 미친듯한 짜증이 몰려오는 것을 무시하려는 '스토아 철학'의 인간이 되는 것이라 표현할 수 있다.
이걸 설명을 잘해보고 싶다.
무급으로 2년 가까이 매일 글을 써왔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글 쓰는 것 이외에 매일을 먹고살기 위한 노동을 한다. 더해, 야간에는 해외 주식을 한다. 주말도 예외는 없다. 주말에는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인 '총회', '컨설팅'을 준비하여 고객들과 미팅을 한다. 그리고 글도 반드시 쓴다.
그 사이사이에는 범세계적인 경제 위기도 찾아온다. 그래서 천만원대 주식 손절을 할 때도 있다. 때때로 문제를 일으키는 가족 구성원들도 있다. 쇼핑몰을 할 때엔, 수백만 원 치의 상품 재고가 중국 고속도로 한가운데에서 발이 묶인 적도 있었다. 가끔 여자를 만나면, 삐꾸인 경우도 있다. 몸이 아플 때도 있다. 구독자가 2000명 가까이 되면서, 스토커가 붙을 때도 있다.(이해가 안된다. 내가 블랙핑크도 아니고.)
내 머리 위에서는 폭탄이 떨어지고, 총알이 빗발치는 소리가 들린다. 언제나.
아무튼간에 매일 계속 글 쓴다는 것이다. 아무튼간에 해야 할 대응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아주 빠른 스피드와 모멘텀으로.
징징거릴 시간도 사치다. 담배 한 대 태우고, 욕 좀 한 다음 바로 붙는다.
지면 지는 것이고, 이기면 이기는 것이다. 변명은 아무도 신경 안쓴다.
나는 시공간과 디지털 세계에서 영춘권을 하고 있는 엽문과 같다.
이게 동기부여로 가능할 일인가.
서두에 독으로 독을 다스린다는 '이독공독' 사자성어를 내걸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일이나 사람 같은 물리적 조건에 의해 받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이 상시 있어야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나는 자유와 독립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이것은 엄청나게 값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얻고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도달하는 데에도 한 세월이 걸린다. 나는 이 싸움을 10년가량 해오고 있다.
아직 내가 시스템의 노예 신분을 완벽히 털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지나치게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것이 전 재산을 주식에 베팅해서 큰돈을 손절하게 되는 경우나.
그것이 사업자를 내고 장사를 할 때, 큰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경우나.
그것이 여자로 인한 문제의 경우나.
그것이 가족으로 인한 문제의 경우나.
그러한 경우보다도, 자유 박탈에 대한 고통이 상시적으로 더 극하게 괴롭게 느껴진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원리는 고통으로 고통을 극복하는 것으로, '독을 독으로 치료하는 것'과 맥이 유사하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 언급했다.
내가 이런 상시적인 고통에 더 예민할 수 있는 것은, 나는 마취제를 찾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여행, 여자, 술, 게임, 도박, 자동차, 명품, 신축 건물 등의, 고통을 잊기 위한 도피처를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고통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려 한다.(나는 저런 것들로는 절대 만족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사람은 무언가 깨닫게 되면,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했을 때, '독으로 독을 치료하는 것'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했을 때, 더 큰 모멘텀과 짐승 같은 에너지로 빠르게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마조히스트가 아니다.
이 중대한 문제를,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르게 돌파해보고 싶은 것이다.
시간이 아쉽고, 모든 가능성이 간절한 것이다.
Soundtrack #2 | I Am Criminal | Anna (2019)
https://www.youtube.com/watch?v=-Mhr2h9ajA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