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것들은 상대적이다.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저 사람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고.
나는 알바를 하고, 저 사람은 여행을 다니고.
나는 뚜벅이고, 저 사람은 벤츠를 타고.
나는 월세 살고, 저 사람은 자가 살고.
나는 미혼이고, 저 사람은 기혼이고.
나는 건강하고, 저 사람은 장애가 있고.
나는 한국 사람이고, 저 사람은 북한 사람이고.
나는 밥을 굶지 않고, 저 사람은 밥을 굶기도 하고.
나는 빚이 있는 집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저 사람은 빚이 있는 집에서 태어났고.
상대적이지 않고, 절대적인 것은 없을까 고민해보면.
있다.
내게 강제적으로 주어진 삶의 조건 속에서, 나는 얼마나 최선을 다해보았는가.
이것은 절대적이다. 내가 한 만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내가 안 한 만큼, 후회를 가질 수 있다.
상대적인 것에서는 승리를 할 수가 없다. 한 개인이 제아무리 높이 올라가더라도, 그보다 더 높은 절대자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에서 절대자라고 해볼 만한 것은 미국 대통령이다. 미국 대통령이라고 해서 외압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주무를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승리를 할 수 없는 것에서 승리를 갈구하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이다.
절대적인 것에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승리를 해낼 수 있다. 자신의 뜻과 행동이 정말로 진실되다면.
정말로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았다면, 자신이 죽기 직전에 알게 된다. 그리고 정말로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았다면, 상대적인 평가에서도 꽤 높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시작점이 아무리 미천했더라 할지라도.
내가 그 과정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증명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최선은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최선과는 거리가 멀다.
이 최선이라고 함은 건강을 어느 정도 훼손시키면서도 해야 할 일을 계속해서 처리해 내는 것을 말한다. 버리는 시간이 거의 없는, 매 시초의 생산성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여자, 여가, 여행, 쇼핑, 주말, 숙면 같은 건 없게 된다. (나는 수준 낮은 아무개 자기 계발서 같은 소리를 하지 않는 작가이다. 그런 건 실용성이 빵점이다. 빵점을 믿으면, 빵점으로 간다.)
최선.
최선의 사전적 의미는 '온 정성과 노력'이다.
정성의 사전적 의미는 '온갖 힘을 다하려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이다.
노력의 사전적 의미는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씀'이다.
즉, 최선이라는 것은.
온갖 힘을 다해, 몸과 마음을 다해 애를 쓴다는 것이니.
일시적인 건강 정도는 제법 포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말의 본 의미가 그렇다.
다시 말하지만, 원래 의미가 저렇다. 내가 힘주어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믿는다.
그저 건강하고 평탄하며 오랜 수명을 살아보려는 태도는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내 이럴 줄 알았지.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 버릴 것을.
Time - Pink Floyd
https://www.youtube.com/watch?v=bw6mGEaplx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