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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더독 Oct 07. 2024

경제에 관한 글이지만, 경제에 관한 글이 아니다.

어제 밤늦게 한강 따라 뛰고 왔다. 여의도 근방에서 본 게 있었다. 사진을 찍었다. 



원래는 커다란 야외 광고판이다. 거기에 건설 노조에서 단 큰 현수막이 있었다. 내용은 '급여 2만 원 삭감에 대한 항의'였다.


저 큰 쇠기둥 밑에는 며칠째 경찰관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119에서 설치한,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사람을 받아내기 위한 에어포켓도 설치되어 있다. 원래는 화재 사고 시 쓸 용도의 장비일 테다. 


그러니까 저 큰 광고판 사이에 시위자가 올라가 농성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주변 길가에는 데모를 응원하는 지인들의 현수막이 달려있다. 


'청하아빠 문승진 파이팅'이라고 적힌 글자가 보인다. 




나는 주로 경제를 논하는 작가이다. 그와 관련된 글을 자주 쓴다. 경제 세미나도 연다. 재무 컨설팅도 한다.


나는 경제 관련 업계 출신도, 경제학과 출신도 아니다. 내가 보는 경제는 저런 모습이다. 거시 경제가 어떻니, 미시 경제가 어떻니, 케인즈 학파가 어떻니, 엥겔스가 어떻니 하는 먹물 경제가 아니다. 


경제라는 것은 저렇게 와닿는 것이다. 


급여 몇 만 원을 지켜내고자 목숨까지 담보로 하게 되는 벼랑 끝 상황은 분명히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저 광고판에 올라간 남자는 가장이다. '청하'라는 아이를 둔, 한 가정의 아버지이다. 


정확한 사실 관계 파악이 안 되기 때문에, 어떤 쪽의 과실 비율이 더 큰지는 알 수가 없다. 때때로 강성 노조의 배째라식 시위도 존재하긴 하니까. 그래서 섣부르게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저기 올라간 남자가 한 여자의 남편이고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한 사람의 경제적 능력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과도 긴밀한 관련이 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합법적인 범주 내에서 갈고닦은 경제 능력에 한해서.)


세이노 회장님이 말했던, 돈을 번다는 것의 핵심적인 원리가 있다. 남의 주머니에서 내 주머니로, 돈이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돈을 벌게 된다는 것이 그 원리다. 자발적으로 움직이려면, 남이 내가 제공해 준 무언가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말은, 비슷한 재화 or 서비스 중에서도 내가 제공한 재화 or 서비스의 품질이 우수했다는 뜻이 된다. 


그만큼 판매자가 최선을 다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건 힘든 것이다. 


다시 말해보자면, 힘들었던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사람이 돈을 받게 된다. 누군가가 돈을 벌려면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제일 힘들게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무슨 관계든 좋다. 친구, 연인, 동료, 부모 자식 관계, 부부 등 모든 관계에서는 돈이 필요하다. 하다못해 나가서 커피라도 한 잔 사 먹으려면 누군가 돈을 소비해야 한다. 이것이 크고 중한 문제가 되면, 집이나 차가 될 수 있고 병원 수술비가 될 수도 있다. 또는 법적 분쟁에 소비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여러가지 인간관계 속에서, 결국에는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 가장 많은 값을 지불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사람이 해당 능력을 적시에 보유하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런 상황이 올 것을 미리 대비하고 누구보다도 성실히 고통을 감내하며 인고의 세월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자세를 '책임감'이라고 일컫는다. 책임감이 훌륭한 사람은 이렇듯 종래에는 공동체의 수호신이 된다. 좋든 싫든 이렇게 될 확률이 높다. 


이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는 공동체일수록, 그 무리는 부강한 유토피아에 가까워진다.





종종 돈에 관심이 크게 없다고 하는 사람들을 본다. 


할 말이 없다. 그렇게 말하면 성자라도 되는 것 같은가. 


여기는 자본주의 국가이다.


돈에 관심이 없으면, 돈도 당신이 어떻게 되든, 당신 가족이나 형제가 어떻게 되든 신경 안 쓴다. 그렇게 말하고 다니면, 신 마저도 당신에게 노할 것이다.


나처럼 경제에 민감한 안테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어느 나이에 얼마만큼의 잔고를 보유하고 있는지, 그 사람의 언행이 어떤지를 순간만 보면 그 캐릭터의 뼈대에 대해서는 금방 얼추 이해한다. (자세한 가정사라던지 뒷사정은 당장에는 알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서 속단은 안한다.)


단순히, 윤택하게 사느냐 쪼들리게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난 글에서 거짓말 하고 싶지 않다.)


돈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 근처에 있으면 물리적으로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다. 그 사람들이 내게 당장은 호의를 베풀고 웃음을 띠고 있더라도 그런 기분이 본능적으로 든다. 그 사람들이 내게 악의가 없더라도 그런 기분이 느껴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동물적인 육감이다. 


덤불 숲에 숨은 검정 재규어의 존재를 느껴버린, 가젤의 움직임을 본 적이 있는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글을 쓰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총회와 컨설팅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투자 관할에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오늘 쓴 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는 타인의 눈에 그리고 잠재적 고객들의 눈에 저러한 위험인자로 인지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 쪽팔리는 일이 없다.


오히려 저 사람은 전쟁이 터져도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기 때문에, 첨예한 의지력과 내구성을 보이는 것이다. 절대로 징징거리거나 변명을 달 생각조차 안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당장 이유모를 병으로 응급실에 실려간다고 해도, 의식이 살아있는 한 글을 멈추거나 해야할 일을 내평겨쳐두지는 않을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한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두려워 할 것을 두려워 할 줄 알고, 바람직한 것에 욕심 낼 줄 안다.


오늘 글을 잘 곱씹어 생각해보길 바란다.


오늘 글은 경제에 관한 글이지만, 경제에 관한 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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