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으로 볼 수 있는 '성공자'는 몇 가지 타입이 있다.
1. 최하층에서 시작하여 상위 1% 이내로 올라가는 삶.
2. 중층에서 시작하여 상위 1% 이내로 올라가는 삶.
3. 상위 10% 이내에서 시작하여 상위 1% 이내로 올라가는 삶.
4. 상위 1% 이내에서 시작하여 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으로 가는 삶.
나는 1번의 과정 중에 있다. 어떻게 최하층 이라 할 수 있느냐라고 반문할 필요는 없다. 옛날의 '동사무소'라고 부르던 곳에서 주는 긴급 구호 물품을 먹었으니까.
그리고 최소 100억대 자산가를 목표하니까.
부산의 촌동네에서 나고 자라, 몇 년간 지구 열 몇 바퀴를 강제로 돌고.
서울에 정착한 지가 2년이 다 되어간다.
오늘 글은 이례적으로 조금은 슬픈 글이다.
스스로의 힘, 실력, 수준을 올려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변 인물들도 바뀌어왔다. 지금은 작은 부자부터 큰 부자까지 얼굴 맞대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다. 물론, 그들에게 있어서 나는 어프랜티스다. 나는 그들에게서 배운다. 절실하게, 적극적으로 묻고 배운다. 그런 간절한 노력의 연속된 서사가 내 인생의 전부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내가 아주 가끔, 슬픈 감정이 드는 것은 괴리 때문이다. 정확히는, 태생의 괴리 때문이다.
상위 10% 이내 또는 상위 1% 이내의 집에서 태어난 이들과, 최하층에서 태어난 이들이 맞닿을 때가 있다. 이는 부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나처럼 특이한 소수의 최하층 출신들이 이 현상을 가능케 한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인성보다는 지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지능에 간절한 치중을 하면, 인성은 자동으로 완성된다. 지능에 간절한 치중을 하는 것은, 나는 승리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 누구보다도 그러한 동기가 대단하다.
내 가슴속에는 죽음마저도 꺼뜨릴 수 없는 불씨가 있다.
상류층 사람들도 저마다 특성이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든 면에서 뛰어난 식구들을 보았고, 돈 많고 죄 많은 식구들도 보았다. 나는 두 부류 모두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배웠고, 배우지 말아야겠다 싶은 것들은 반면교사 삼아왔다.
반면교사를 삼는다는 것은, 그들 앞에서 내가 마음속으로 숨긴다는 의미이다. 그들 앞에서 티 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나는 그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승리한 패밀리는, 그 성격이 어떠하든 그러할만한 사유가 있다. 희생이 있고, 지식과 지능이 있으며, 고통을 감내하고 위험을 무릅쓰는 면이 있다.
어쨋든 공짜로 한 게 아니라는 거다.
다만, 아주 가끔 그렇게 마음속에 잔상이 된 순간의 장면들이 개인적으로 슬프게 다가올 때가 있는 것이다.
나는 최하층의 삶이 어떤지 잘 알고 있다. 상류층 주니어들은 그런 것을 알 필요도, 경우도 없기에 이에 대해서 무지하다. 그래서 이들이 악한 마음이 있든 없든, 최하층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내 시각에서 저들의 별생각 없는 언행을 보고서는 마음 한편이 아플 때가 있다.
가령.
50대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현장 작업복을 입은 아저씨 무리가, 퇴근 시간이 되어 삼겹살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테이블을 보며, 쉰 냄새가 난다며 짜증과 화를 크게 내는 사람이 있었다. 냄새가 나는건 싸가지가 없는 거라며.
좀 싫을 수는 있는 것이나, 그렇게까지 역정을 할 것이 있나 싶었던.
그런 속마음인 것이다.
또는 가령.
50대 60대 정도의 남성이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저 나이까지 뭘 했길래 버스나 타고 다니냐며 조롱 소리를 하던 사람도 있었다.
나는 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또는 가령.
자신이 투자를 해서 얼마를 벌었는지, 어떤 라이프 스타일을 살고 있는지, SNS와 카톡에 실시간으로 도배를 하며 좀 과하다 싶을 정도의 우월 도취에 빠진 사람도 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이 노력하여 익절을 한 것은 인정해주어야 한다. 다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던 속마음이었던 것이다.
SNS나 카톡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니까.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사람이라도, 볼 수 있는 것이니까.
내가 어렸을 때처럼, 먹을 것과 차비가 없어서 비쩍 마른 중고등학생이 그런 걸 볼 수도 있는 일이니까.
모든 상류층 자제들이 저렇다는 게 아니다. 또, 저런 상류층 주니어들이라고 배울 게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저런 언행을 하긴 하지만, 크게 악의가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저 무지할 뿐이다.
그래서 더 슬픈 것이다. 나로서는.
그 괴리라는 것은, 내가 성공한다고 내가 승리한다고 없어질 수 있는 속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의 문제이며, 나는 반드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삶을 정직하게 살아내고 있는 남자이지만.
그냥 그런 게 있다는 것이며, 계속 있을 수 밖에는 없다는 점을 글에 한번쯤은 담아보고 싶었다.
혹시나 나와 비슷한 유년기를 거치고 있는 어린 친구들이 있다면,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성공을 열망하고 있다면, 지면을 빌려 전하고 싶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 말들하지만, 사실 그렇게 보이는 게 정말 진실일 때도 많이 있다. 세상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불공평하다. 내가 서울 와서 명맥 부자들 보니, 더 그렇게 느껴진다.
나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라, 본 것 그대로를 글로 쓸 수밖에 없다.
최하층임에도 기어올라오고 싶다면, 알고 있어야 한다.
스스로의 태생과 상황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끝없는 비하와 우울에 빠진다면, 그냥 끝이다. 가망이 없다.
아직 내가 완전체가 된 것은 아니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에만 해도 나는 목숨을 몇 번 잃을 뻔했다. 나와 같은 현장에 있던 목표가 비슷했던 이들 중에는 작업 중 사지가 잘리거나 사망하거나 실종 처리된 사람도 있다.(우리 같은 최하층 출신 중에 성공 열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차적으로 위험한 산업 현장으로 흘러 들어간다. 월급을 많이 주니까. 시드 빨리 모아야 하니까.)
그 정도는 감안하는 삶을 기꺼이.
아니, 기꺼이 까지는 아니더라도 반강제로라도 떠밀려서 살아내야만.
그래야만, 우리에게는 작은 불씨라도 손 품에 쥐어지게 된다.
자수성가한 성공자들 중에는 나와 비슷한 시점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정말 극한을 달리고 있을 때, 저들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여러분들을 구제해 줄 수도 있다.
이 말 이외에는 더 말을 못해줘서 미안하지만, 실제로 그런 걸 어쩌겠나.
멜랑꼴리한거보니 내가 살만한가보다.
푸시업, 풀업이나 하러 가야겠다.
Good Will Hunting ending credit
https://www.youtube.com/watch?v=ERPM_If7bf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