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일기 #3
우여곡절 끝에 양조학과 입학이 되었지만, 아주 중요한 과정이 하나 더 있었다. 우리 과는 졸업까지 총 15개월간 현장에서 실습을 해야하고, 첫 두학기 1년 동안은 필수로 일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 것을 독일에선 보통 프락티쿰(Praktikum)이라한다. 그리고 3학기부터 이론수업이 시작된다.
문제는 각자 알아서 일을 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각자 알아서 양조장을 찾아서, 알아서 지원하고, 알아서 합격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학교는 관여하지 않는다. 2학기 기한 내에 1년만큼 일한 증명서를 제출해야 공부를 지속할 수 있고, 못하면 퇴학 수순을 밟아야 한다. 역시 각자도생의 나라.
그래도 이 부분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학공부 중에 병렬적으로 양조장에 일자리를 지원했었다. 아무래도 회사에 직접 컨택해서 잡을 구하는 것이니 만큼 쉽게 구해지진 않았다. 나도 여러 군데 지원을 하고 거의 다 떨어졌지만 마지막에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바로 내가 한국에서 즐겨 마셨던 밀맥주 브랜드 중 하나였던 파울라너(Paulaner)였다! 수많은 독일양조장중 내가 이름을 잘 아는, 게다가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독일의 맥주회사라니 충격이었다. 서류 합격 후엔 브라우마이스터(브루마스터)가 직접 전화를 해서 전화면접을 봤다. 당황해서 주절주절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한 것 같지만 다행히 큰 문제없이 오케이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우선 파울라너는 뮌헨에 있기 때문에, 베를린에 살던 나는 급하게 이사를 와야 했고 이사관련 문제들도 있었지만 다행히 회사에서도 2주정도나 기다려줬다. 그리고 마침내 독일 양조장의 양조사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파울라너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는 병맥주, 캔맥주, 케그 등을 생산하는 큰 공장이 있고, 뮌헨과 바이에른의 다른 도시에 파울라너가 관리하는 브로이하우스가 여러개 있다. 브로이하우스란 자체맥주생산 설비가 갖춰져있는 큰 레스토랑이라 생각하면 된다. (영어로는 브루펍으로 한국에서 2000년대 초반에 유행을 하기도 했다.)
나는 주로 파울라너 직영 브로이하우스 두군데에서 1년간 일을 하게 되었다. 이곳들에선 소규모 장비가 설치되어있었고 자체적으로 생산된 맥주를 판매했다. 사실 말이 소규모 장비이지 2000L 급의 장비이니 일반적인 개인 양조장 기준으로는 작은 편이 아니었다. 여기서 만드는 레시피는 공장에서 만드는 레시피와는 다르고 이 장소에서만 판매하기 때문에 직접 가야만 마셔볼 수 있다. (이 두 브로이하우스도 레시피가 다르다.) 두 양조장에서는 바이에른 전통의 방법을 이용해 각자의 레시피로 맥주를 양조했고 필터링이 되지 않은 신선한 맥주들을 판매했다.
일을 막 시작하고 정신이 없을 때, 양조장에서 직접 만든, 그리고 내가 앞으로 만들 맥주를 맛보니 이제 진짜 양조장에서 일을 한다는 실감이 났고 이곳에서 양조사가 된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