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일기 #7
일을 시작하기 위해 업무적으로 준비한 것들 외에도 부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많았다. 크게 두 가지였는데 우선 일을 위해선 차량이 필요했고, 아웃렛이 있는 잉골슈타트라는 도시로 이사를 가야 했다.
한국에서도 특별히 필요가 없어 차를 안 샀는데, 여기까지 와서 굳이 차를 사야 하니 좀 막막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어차피 해야 하면 빨리 시작해야지. 먼저 유튜브로 중고차 점검하는 법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 후에는 중고차를 찾기 시작했다. 학생 신분으로는 할부가 불가능했기에 일시불로 구매를 했는데, 투자이긴 했지만 한 번에 큰돈을 쓰니 혹시나 문제없을지 걱정도 많이 됐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독일은 중고차 시장이 크고 활발해서 우리나라의 중고차 시장보다는 사기가 적다는 사실이었다. 유명한 중개 사이트에서 판매자 평가가 많은 매물을 골라서 보러 다녔고, 맘에 드는 차량을 잘 찾아서 구매하게 되었다.
독일에서 구매하는 차량들의 특이한 점은 수동기어가 많다는 점이었다. 오토차량은 매물도 적고 가격차이도 큰 편이었다. 이제야 체감하는 부분은 독일은 도심지 내부가 아니면 정체가 거의 없고 오르막길도 별로 없어서 수동으로 운전해도 크게 힘들지 않은 환경이란 것이다. 난 다행히도 운전병 출신이었고 파울라너에서 일할 때도 수동기어 차량을 자주 운전했기에 고민 없이 더 저렴한 수동 차량을 구매했다. 그리고 차를 살 때, 조금 더 비싸더라도 덜 고장 날 것 같은 차를 구했고 아직 잔고장 없이 잘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잉골슈타트로 이사를 했다. 잉골슈타트는 뮌헨에서 차 타고 한 시간 정도 거리의 북쪽에 있는 도시이고 1516년, 이곳에서 그 유명한 맥주 순수령(맥주에는 물, 몰트, 홉, 효모만 넣을 수 있다는 규정)이 공표되었다. 공교롭게도 맥주 공부를 하는 나였기에 이곳에 머무는 동안 좋은 기운이나 많이 받아가자라고 생각했었다. 그 외에 아우디 본사가 있어 유명한 도시이기도 하다. 집에서 아웃렛까지는 운전해서 약 10분 거리였기에 필요하면 금방 다녀올 수 있었다.
어떤 일이든 사람이 제일 무섭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고 느꼈던 희한한 점 중 하나는 나는 내가 매장에서 구매를 많이 하면 매장 직원들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일부 매장에선 굉장히 불친절해진다는 점이었다. 종업원이 판매한 부분에 대해 인센티브를 받는 매장의 경우 따로 연락처를 주고받고 좀 더 친절해졌던 반면, 인센티브가 없는 매장의 경우 나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아웃렛에 사람이 많은 날은 종업원들의 날 선 짜증을 들어가면서 구매를 해야 하는 아이러니를 겪기도 했다. 그래도 매장에서 겪었던 짜증 정도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 일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을 꼽으라면 단연코 고객들을 대하는 것이었다. 친절한 고객들도 많았지만 악성 컴플레인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스트레스가 말도 못 했다. 화가 난 고객이 가품이라 신고를 하기도 했고, 배송이 느리다고 커뮤니티에 올려서 조리돌림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가품은 취급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었고 고지한 시간보다 늦은 경우도 아니었다. 따로 대화창을 만들어 비정상적인 대화를 하는 걸 들어줘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 문제없이 해결되었지만 최대한 빨리, 좋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저자세로 임해야 했고 잘못한 게 없어도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중엔 아침에 일어나서 핸드폰 확인하는 게 무서운 수준까지 갔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일 자체를 공부와 병행을 했어야 했기에, 둘 다 집중하기는 쉽지 않았다. 일이 많을 때는 부족한 공부가 걱정이 되고, 그렇다고 너무 일감이 적으면 그것대로 걱정인 진퇴양난의 스트레스 대축제였다. 특히 학교에서는 첫 두 학기에 꼭 마쳐야 하는 과목들이 있는데, 그 시험기간에 일을 하고 있으면 마음이 불안해서 일이 손에 안 잡혔다.
모든 일은 다 그렇겠지만 당시엔 힘들어도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최대한 시간 분배를 하며 공부와 일을 병행했던 잉골슈타트의 생활은 나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비록 초반에 희망 회로를 돌렸을 때에 비교하면 수입은 많지 않았지만 적당한 수준으로도 벌 수 있었다. 일이 끝나는 시점부터 학교에서 해야 할 수업이나 실험들이 많아지며 학교 앞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러면 유학과 이런 사업의 병행을 추천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난 코로나 때문에 받은 수혜(?)가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 수업이 모두 온라인으로 전환이 되었고 수업은 인터넷 강의 방식이어서 원하는 시간에 들을 수 있었다. 공부시간을 내가 조절할 수 있게 되었기에 저녁이나 오전에 비는 시간에 수업을 듣고 공부했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아웃렛이 전면 폐쇄가 된 적도 있었다. 이 때는 일자체를 할 수 없었는데, 금전적으로는 아쉬웠지만 내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다. 만약 코로나 같은 상황이 아니고 내가 일을 하며 학교를 통학했다면, 난 아마도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쳤을 것 같다.
돌이켜보면 옷이나 꾸미는 것에 크게 관심도 없었던 공돌이였던 내가 어쩌다 전혀 관련이 없었던 명품가방과 옷 등을 구매 대행했는지 재밌기도 하다. 스티브 잡스도 Connecting the dots라고 본인과 전혀 관계없던 캘리그래피 공부가 나중에 매킨토시에 응용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관계성 없어 보이는 '점'들이 나중에 돌이켜보면 다 연결될 수 있으니 많은 다채로운 '점'들을 만들라고 하지 않았나. 나도 내분야와 너무 먼 일을 잠깐 하게 되었지만 언젠가 다른 형태로 나에게 좋게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결론만 보자면 나는 이 일을 통해서 유학자금에 보탬이 되긴 했지만 코로나라는 특수상황 때문에 공부와 병행할 수 있었던 것 같고, 앞서 말했듯이 매달 충분한 유학자금이 들어올 수 있는 채널이 무조건 있어야 공부를 안전하게 마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