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오늘은 밖으로 나가자."
"그럼 그림은 어디에서 그려요?"
"밖에서 그리지. 이렇게 날이 화창한데"
"밖에서요?"
이렇게 묻고 그 아이 둘의 반응이 싫어요!
였다면 나는 그 아이 둘과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밖으로 미술을 할 수 있었을까?
그저 선생님을 믿고
선생님이 하자는 대로 따라와 주었던
아이 둘
학교 운동장으로 나무를 그리러 가고
근처 바닷가로 나가 발에 물 담그는 미술을
아이 둘이 받아주지 않았다면
나는 이게 미술일까? 를 시도해 볼 수 있었을까.
10년이 지나 우연히 두 아이를 다시 만났다.
나중에 듣게 된 사실이었지만
나는 그 표현을 듣고 마음이 붉어졌다.
'이런 좋은 선생님이 또 있을까'
나는 좋은 선생님이었을까?
그 아이 둘이 좋은 학생이 아니었을까.
맞다.
내가 좋은 선생님이 되었던 건
그 아이 둘이 좋은을 가진 아이였기 때문이다.
운이 좋은 선생님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더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