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혜를 맘껏 발휘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직업 특성상 출근 시간이 빠릅니다. 특히 입사 후 2년 동안은 6시 30분까지 출근해야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첫 차를 타야 했습니다. 이른 시간이라 한산할 줄 알았던 제 생각은 오산이었습니다. 한 정거장, 한 정거장 지날 때마다 버스의 빈 좌석은 빠르게 줄더니 이내 만원이 됩니다. 단정한 정장 차림의 아저씨부터 잔뜩 짐을 든 할머니까지 그 구성이 다양합니다. 저들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이 시간에 출근을 하나 늘 궁금했습니다.
맨 뒷자리에 앉아 그 광경을 보고 있으면, 개미나 꿀벌이 떠오릅니다. 하등 동물일수록 유전자에 프로그램된 대로, 즉 본능대로 살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본능적으로 집을 짓고, 먹이를 물어오는 등 반복적인 일을 합니다. 진화의 산물인 사람은 다르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무표정한 얼굴로 매일 같은 곳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보면 개미와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실은 우리도 프로그램된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지능이겠지요. 개미와 벌은 반복적인 일상을 보내면서도 회의를 느끼지 않는 듯합니다. 반면 우리는 모두 '이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상과 다른 현실에 내적 갈등을 겪습니다. 권태기니, 무기력증이니 하는 문제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현생 인류의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슬기슬기 사람)'입니다. 슬기를 의미하는 사피엔스가 두 번이나 들어가 있죠. 이는 고도의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혜를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대부분 직장인의 일상은 모두 비슷합니다. 알람에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비몽사몽 출근하고, 그날그날 할 일을 꾸역꾸역 해냅니다. 그렇게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동영상 몇 편을 보다 잠에 듭니다. 일상에서 지혜로운 행위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무기력증 같은 마음의 병은 욕구불만 같습니다. 높은 지능을 가졌지만, 그 지혜를 마땅히 분출하지 못해 일상에 회의를 느끼며 병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지혜의 욕구'를 해소하는 방법은 그저 읽고 쓰는 것입니다. 읽고 쓰며 진화해 온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어째서인지 현대에 와서 그 행위를 멈추었습니다. 따라서 현대인이 가진 마음의 병은 당연한 결과로 보입니다.
평범한 우리가 세상을 바꾸긴 어려워도, 삶을 바꾸는 것은 생각보다 쉽습니다. 많은 이들이 읽고 쓰기를 시작한 후, 일상이 더욱 평온해졌다고 말합니다. 더이상 주체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니지 않고, 주도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지혜의 욕구를 해소함으로써, 비로소 개미와는 다른 슬기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