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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멈가 Jul 28. 2023

배아의 발달 과정

이상과 현실


뜬금없는 고백 하나.


나는 소싯적 부모님 속 꽤나 썩였다.

버리지 않고 키워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정도로..​


딱히 '질풍노도'의 시기는 없었지만,

아주 가늘고 길~게 부모님을 힘들게 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용서받을 수 있었던 것은 어렸기 때문이다.

10대에 사춘기가 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사춘기가 2, 30대에 오면 문제가 있다.


뭐든지 다 때가 있는 법이다.

갑자기 이런 소리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배아에도 이 얘기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좋은 배아는 시기적절하게 분화하고 발달한다.


시간에 따른 배아의 분화 과정 (출처: DOI:10.1007/s00521-020-05127-8)

정자와 난자를 수정시킨 후

대략 26시간이 지나면 2세포기,

다시 39시간쯤 흐르면 4세포기,

그리고 5일째가 되면 마침내 이식하기 좋은 포배기로 거듭난다.

이 기준을 벗어나 너무 늦게 발달하거나, 너무 빨리 발달하는 것은 착상 및 임신에 좋지 못한 징후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상황이다.

많은 난임 여성이 인터넷에서 예쁜 배아 사진을 보고는 자신의 배아 역시 그렇게 발달하리라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참 고마울 텐데, 안타깝게도 모든 배아가 그렇지는 못하다.


배아의 파편화 (출처:https://fertilitymatters.ca)

예를 들어,


파편화(fragmetation)는 발달 중인 배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는 분열 과정에서 생기는 자연현상인데, 심하면 배아의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래서 파편화가 심한 배아는 낮은 등급을 부여받는 것이다.​


예쁜 배아를 기대했기 때문인지,

처음 자신의 배아를 보면 많이 걱정스러워한다.


그러나 파편이 생기더라도 발달만 해준다면 다행이다.


난자 퇴화 (출처: doi.org/10.1016/j.fertnstert.2005.12.017)

채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어버리거나(lysis)


수정시킨 후 퇴화해 버리거나 (degeneration)


중간에 발달을 멈춰버리기도 한다 (arrest)


이런 경우에는 살릴 방도가 없다.​


채취를 진행한 한 여성이 묻는다.


"난자가 OO 개나 나왔는데 왜 배아 동결을 O 개 밖에 못하나요?"

위에서 보여준 것처럼,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으며 결승선에 도달한 배아가 별로 없는 것이다.​




간혹 지연 수정(delayed fertilization)되는 경우가 있다.


정자 난자를 수정시키면 보통 다음 날 아침에는 수정 여부가 확인되는데,


수정이 안 되었다가 뒤늦게 수정되는 것을 말한다.

이런 경우는 아무래도 좋은 등급을 부여받기는 어렵다.


처음 말했듯이 다 때가 있는 법이라 시기적절하게 발달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뒤늦게 수정이 된 배아가 꾸역꾸역 발달하더니 결국 6일 차에 '포배기'로 동결되었다.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지지리 공부도 안 하고 부모님 속만 썩이다가 뒤늦게 정신 차리고 열심히 살아가는 나를 닮았다.

그래서 끝내 동결에 성공한 그 배아를 보고 기뻤다.

녀석, 꼭 착상에 성공해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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