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와 눈사람 배아 그리고 보조부화술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수어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대사다. 몇 해 전 읽은 책이라서 구체적인 내용은 가물가물하다. 그 와중에 유독 이 대사는 기억에 남았다. 이유는 모른다.
그런데 오랜만에 책을 펼쳐 이 부분을 다시 읽으니, 전과는 달리 해석된다. 난자가 투명대를 뚫고 나오는 모습, 바로 부화(hatching) 장면이 떠오르는 것이다.
배아가 포배기에 도달하면, 곧 투명대를 뚫고 나오는 ‘부화’ 과정을 거친다. 사람들은 이것을 눈사람 배아라고 하더라. 처음 들었을 때 참 귀여운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이 시기를 지나 배아가 투명대를 완전히 뚫고 나오면, 이른바 감자 배아가 나타난다. 이 역시 귀여운 이름이다. 정말 감자 같이 생기긴 했다. 이런 부화 과정을 잘 마쳐야지만 자궁에 착상할 수 있다.
그런데 간혹, 투명대가 두껍거나 형태가 비정상적일 때 등 스스로 투명대를 뚫고 나오지 못할 수 있다. 이때 인위적으로 투명대에 구멍을 만들어 주어 부화를 돕는 것이 바로 보조부화술. 효과를 떠나 발상 자체가 기발하고 이롭다.
매일 이러한 장면을 관찰하는 나로서는 데미안의 이 명대사가 이렇게 들린다.
배아는 투명대를 뚫고 나온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