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자 채취 후 첫 번째 스텝
한 스님에 의하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게 하나 있다.
벗기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바로 난자 얘기이다.
난자 채취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Denudation이라는 작업이다. 난자를 둘러싸고 있는 난구 세포들을 벗겨주는 일이다. 그래야만 성숙도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으며, 미세 수정을 진행할 수 있다.
사진에서는 총 4개의 난자가 있다. 하지만 정확한 성숙도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주변 세포를 제거해 줘야 하는 이유이다.
벗기기 위해서, 화학적 방법과 물리적 방법을 병행한다. 먼저, 히알루론산에 난자를 담가 주변 세포를 풀어준다. 다음으로 미세관의 크기를 점점 줄여나가며 난자를 흡입했다, 뱉었다 하며 남은 세포를 깨끗하게 제거해 준다.
만약 처음부터 작은 크기의 미세관을 사용하면 난자가 터질 수도 있기에 점차 줄여나가는 것이 핵심이다.
채취 직후 a처럼 보이던 난자가 이 과정을 거치면 마침내 c의 모습을 보인다. 이제 난자가 건강한지 그렇지 못한지, 성숙도는 어느 정도인지 판별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늘 어떤 잡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난자를 벗기는 중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벗겨야 비로소 보이는 건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만약 첫눈에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다면 어떨까?
우리의 인간관계는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내게 그런 능력이 있다면, 처음부터 사람을 가려 사귈 것이다.
음.. 이렇게 카테고리를 나누면 좋겠다.
1. 내게 필요한 사람
2. 당장 도움은 안 되지만, 지켜볼 만한 사람
3. 필요 없는 사람
사실 이 카테고리는 난자를 분류할 때 사용한다.
1. 내게 필요한 사람 = 성숙한 난자
2. 지켜볼 만한 사람 = 미성숙 난자
3. 필요 없는 사람 = 비정상 난자
이렇게 처음부터 사람을 가려 사귄다면, 정말 합리적일 것 같다. 아닌 사람과 잘해보려고 괜한 노력할 필요가 없어지니, 스트레스도 안 받고, 사기당할 일도 없어질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니, 한편으로는 또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럼 나는? 나는 필요한 사람인가?'
분명 누군가에겐 불필요한 사람으로 분류될 것인데, 그 또한 스트레스이겠구나 싶다.
흠, 차라리 가려져 있는 게 나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