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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인 Jul 04. 2023

제13장 보물창고에서 황금마차 발견

1. 구성종목과 인기 비교 

     

이야기를 펼치기 전에,  ETF(Exchange Traded Fund)란 특정지수를 모방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여 산출된 가격을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상장시킴으로써 투자자들이 주식처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게 설계된 지수상품을 일컫는 용어다.

      

국어로는 상장지수펀드라고 번역되어 쓰이고 있으며, 거래비용이 저렴하면서 소액으로 여러 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회자된다. 모든 ETF상품은 특정 산업부문(혹은 금융부문)에서 선두를 달리는 10-50개의 우량기업을 엄선하여 각기 다른 비중으로 편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ETF에 편입된 기업이라면 자산운용사에 소속된 노련한 펀드매니저들이 옛날에 대궐에서 세자빈을 고르듯이 꼼꼼하게 검증을 하였을 것임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낙심 상태에서 ETF를 떠올린 것은 캄캄한 밤중에 외롭게 어둠속을 헤매고 다니다가 운 좋게 민가를 만난 경우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정부와 주요 재벌기업들이 미래의 먹거리로 점찍은 세 분야(반도체, 이차전지, 헬스케어)를 놓고 저울질을 거듭하다가 ‘이차전지’를 낙점하고, 당시 판매되고 있던 이차전지 ETF 다섯 종류의 기본정보와 각 상품에 편입된 기업들을 파악하였다. 

   

반도체·이차전지·헬스케어 분야 중에서 최종적으로 이차전지를 선택한 이유는, 아들이 대학에서 자동차공학을 전공하여 필요할 때 지식과 안목을 빌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아들은 충전인프라 구축이 쉽지 않아서 전기차 시대가 생각보다 천천히 올 것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표 12>는 3개 자산운용사(미래에셋, 삼성, KB)가 출시한 다섯 종류의 2차 전지 ETF에 10위 이내 비중으로 편입된 기업들과 각 기업의 구성비(%)를 취합한 것이다. 그런데 다섯 상품에 편입된 기업들의 면모를 보면, 대략 10개 안팎의 기업이 2개 이상의 상품에 중복해서 편입되어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표 12> 이차전지 ETF(5개)의 구성

표와 같은 분포상황은 200개 안팎에 이르는 국내의 이차전지 업체 가운데 상위 5퍼센트에 속하는 기업들만 ETF에 중복으로 편입되어 있음을 뜻하는 것이어서, 모든 기업을 투자종목 후보군에 포함시켜 즉시 자격검증 절차에 들어갔다. 

     

그런데 다섯 개의 ETF에 10위 이내의 비중으로 들어간 기업들의 편입빈도를 비교해보니, 오늘날 주가 상승률이 최고로 높은 에코프로의 편입빈도가 다른 기업들보다 현저히 낮았음이 뚜렷하게 확인되었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이노베이션·에코프로비엠·포스코케미칼·엘앤에프·SK아이이테크놀로지·SKC·일진머티리얼즈 등 아홉 기업은 다섯 상품에 중복해서 편입된 반면, 에코프로는 미래에셋 자산운용의「TIGER 2차전지테마」와 삼성자산운용의 「KODEX2차전지산업」 단 두 상품에만 들어가 있었다.     


편입된 비중도 매우 낮아서「TIGER 2차전지테마」에서는 고작 3.49퍼센트(10위), 「KBSTAR 2차전지액티브」에서는 겨우 6.08퍼센트(7위)를 차지하였다. 후보기업들에 대한 검증절차가 진행되던 무렵인 2022년 6월 30일의 에코프로 주가는 종가 기준 69,547원이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2023년 5월 4일의 에코프로 주가는 683,000원이고 앞으로도 상승 여력이 남았다니, 지금으로부터 10개월 전까지도 에코프로의 가치를 아무도 몰랐다는 박순혁 전 이사의 주장이 허풍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해 11월 중순에 유튜브에서 박이사가 에코프로의 잠재력을 극찬하는 영상을 그냥 지나쳤다면, 에코프로의 진가를 모르고 계속 말석에 앉혀두었다가 뒤에 배가 몹시 아파서 참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 빚을 내서라도 왕창 사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쉽지만, 포기 직전에 기적처럼 지름길을 찾은 기쁨을 위로로 삼고 있다.

<그림 9> 에코프로그룹 이차전지 사업-밸류체인 수직계열화

2. 인기종목 자격검증 

     

 <표 13>은 다섯 개의 이차전지 ETF에 편입된 열두 기업의 잠재력을 검증한 결과를 취합한 것이다. 검증을 위해 제12장의 <표 11>에 인용된 여덟 전문가의 서른여덟가지 권고 중에서 평가지표를 골랐다. 말이 명료하여 회사의 홈페이지, 금융감독원 전자공지시스템(DART), 경제신문 등을 통해 확인이 가능할 듯싶은 아홉 항목을 추려서 평가지표로 삼았다. 

     

표에서 보듯이, 평가점수를 하(A)·중(A+)·중상(A++)·최상(A+++)으로 나누어 다섯 종류의 이차전지 ETF에 편입된 열두 기업에 대해 항목별로 점수를 매긴 다음 등급을 판정하였다. 그 결과, 최우수 기업 4개, 우수기업 4개, 유망기업 4개로 구분이 지어졌다.  

    

사용된 평가도구는 공인된 것이 아니고 그것을 적용하여 매긴 점수들도 지극히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것이었지만, <표 13>과 같이 검증을 마치니 오랫동안 짓눌려있던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린 기분이었다. 

     

열두 기업 가운데 지주사와 계열사 사이인 에크프로와 에코프로BM은 악재로 볼 만한 정보가 있었다. 임직원 몇 명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내부정보를 이용해 에코프로BM 주식을 은밀히 취득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사실이 확인된 것인데 신경 쓰지 않았다. 

        

에코프로BM이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해당 내부자거래 혐의는 조사 대상인 임직원 개개인이 개인적으로 주식 거래를 한 게 문제되는 것이고 회사의 재산상 손실을 가져오거나 초래하는 행위가 아니라고 공지했기 때문이었다.   

   

회사 측이 제기된 의혹과 관련해 진행되는 제반 과정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수사에도 적극 협조할 것임을 밝힌 점도 고려하였다. 또, 여러 경로로 알아보니 최고경영자인 이동채 회장에 대한 업계의 평판이 나쁘지 않아서 장래를 낙관하였다.      


위와 같이 평가를 마치자마자 전에 대충 사서 비자발적 장기투자를 하고 있던 애물 주식들을 일거에 팔아치우고 최우수로 분류된 네 기업의 주식을 각각 10∼30주씩 샀다. 이후로 주가가 조정을 받으면 추가로 매수하여 장기간 보유할 생각이었다. 

<표 13> <표 > ETF 편입종목 평가 결과

이렇게 해서 이차전지 분야 종목들에 대한 투자를 시작하자마자 배터리와 배터리 산업에 대한 공부에 몰두하였다. ‘매수한 주식을 계속 모니터하라.’는 조언을 ‘지식과 정보를 부단히 쌓으라.’는 뜻으로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3. 이차전지산업 학습    

 

동네 구립도서관을 수시로 찾아가 경제신문에 실린 관련기사들을 꼼꼼하게 읽었다. 또,『리튬이차전지』(2010),『처음 읽는 2차전지 이야기』(2021), 『배터리의 미래』(2021),『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전쟁: 기술과 정책』(2022) 등을 대출하거나 온라인으로 구입해서 순차로 읽었다.

      

네 권의 책을 읽고 났더니 이차전지에 관한 기초지식이 어느 정도 갖춰진 것 같았다. 우선, 배터리 기술의 핵심은 ‘에너지 밀도(energy density)’이고, 이것이 배터리 경쟁력의 거의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이해하였다.

<그림 10> 배터리 모양
<그림 11> <그림 > 리튬이온 배터리 내부

또, ‘배터리 기술의 발전=에너지밀도 향상’이고, 우리나라의 배터리 기술이 글로벌 1등이라는 말은 곧 국산 배터리들의 에너지밀도가 세계 어느 나라의 배터리보다 높다는 뜻이라는 것도 이해하였다. 

    

에너지밀도는 단위 무게(혹은 단위 부피)당 저장된 에너지의 양을 말한다. 즉 배터리 1㎏ 혹은 1㎥에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을 일컫는 말이다. 전기차용 배터리에서는 부피보다 무게가 더 중요해서 일반적으로 단위 무게당 저장 가능한 에너지의 양을 에너지밀도라고 한다.  

   

배터리 셀은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 등 네 가지(이차전지 4대 요소)로 형성된다. 양극(플러스)와 음극(마이너스)라는 두 전극이 양쪽에 간격을 두고 들어가고, 그 사이에 분리막과 전해질이 들어간다. 이런 것을 여러 개 묶어서 모듈을 만들고 모듈을 여러 개 묶어서 팩을 만든다.  

         

<그림 12 > 전기차 배터리 제조

따라서 최종적으로 전기차에 장착되는 배터리 팩은 무게가 수백 킬로그램에 서 1톤  이상까지 나가서 운반이 쉽지 않아 배터리 생산 공장은 대개 전기차 생산 공장으로부터 멀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양극재이고, 정확한 이름은 양극활 물질이다. 양극재는 리튬이온을 간직하고 있다가 배터리가 충전될 때 그것들을 음극으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리튬이온을 가급적 많이 저장할 수 있는 양극재가 좋은 제품이다.  

               

리튬이온을 많이 저장할 수 있는 좋은 양극재를 쓰면 동일한 무게와 부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어, 에너지밀도가 높아진다. 그래서 양극활 물질(양극재)를 ‘배터리의 심장’이고 값도 고가라는 것인데, 세계 최고인 울트라 하이니켈(니켈 함량 90% 이상) 양극재 기술을 국내의 다섯 기업이 선도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또, 양극재 사업은 진입장벽이 높고 기술적 해자가 깊기 때문에 후발주자들이 따라잡으려면 최소한 10년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해서 ‘기술의 초격차’ 지위를 유지한다니, 그 중심에서 투자와 연구를 주도하는 이들의 역량과 노고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양극재는 니켈·코발트·망간을 섞어서 제조되는 전구체(precursor)라는 물질에 리튬을 더해서 제조된다. 우리나라 배터리 기업(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삼성SDI)의 주력제품인 NCM·NCA·NCMA 양극재에는 수산화리튬이 쓰이고, 중국산 LFP배터리의 양극재에는 탄산나트륨이 쓰인다고 한다.           

<그림 13 > 리튬이온 배터리 제조

그런데 양극재의 재로인 전구체 생산에 쓰이는 니켈·코발트·망간·알미늄 등과 음극재 생산에 쓰이는 흑연 같은 광물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서, 정부와 배터리 업계가 합심하여 원자재 공급망의 다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특히 양극재에서 에너지 저장원 역할을 담당해 ‘백색 석유’로 불리는 리튬은 남미의 칠레·아르헨티나·호주 등지에 집중적으로 매장된 희귀 금속이라, 리튬 공급망을 빠르고 확실하게 구축하는 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전망이다. 이러한 전망 속에는 ‘전 세계가 리튬전쟁 중’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이차전지에 관한 책들을 섭렵하는 사이사이 인터넷을 검색해 다양한 자료들을 찾아서 읽었다. 통산산업자원부·한국무역협회·한국지질자원연구원·증권회사 등이 낸 주요 보고서들을 차례로 읽으며 이차전지 산업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쌓았다.     

<그림 14> 리튭 자원(광물 & 염수) 매장지 분포

그러한 자료들 가운데 20년의 지원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산업통상자원부의 자료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훌륭한 보고서를 작성한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기도 하고 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 목록을 적겠다.


◇ 산업통상자원부(산업자원부, 지식경제부)

-「이차전지 경쟁력 강화방안(통합 로드맵)」, 2010.7.12.

-「2030 이차전지 산업(K-Battery) 발전전략」, 2021.7.8.

-「배터리산업 혁신전략」, 2022.11.1.                 * 15장에 요점 소개

-「10대 전략 핵심광물 확보전략」, 2023.2.27.         * 16장에 요점 소개 

-「이차전지 산업경쟁력 강화 국가전략」, 2023.4.20.   * 15장에 요점 소개


○전창현, 「2차전지: 거인의 어깨」, 2021.5.24., IBK투자증권.

○임지훈, 「배터리 핵심 원자재 공급망 분석: 리튬」, TRADE FOCUS      2022년 21호, 2022년 9월,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김유정, 「한국과 중국의 이차전지 공급망: 진단 및 정책 제언」, 2022.11,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김현수 외, 「The Last Puzzle: 공급망 재편 속 수직 계열화의 힘」, 

  Equity Research, 2022.11.8., 하나증권.

○이안나, 「전지에 전지를 무는 이야기: 당신이 궁금해 하는 모든 것」, 

  2022.11.15., 유안타증권.

○황성현, 「나트륨이온배터리 게임체인저가 될 것인가」, 2023.2.24., 유진투

  자증권.        


그 외에 이차전지 연구에 평생을 바친 대학, 국책연구기관, 그리고 기업연구소에서 이차전지 연구를 주도하는 이들의 문답식 인터뷰도 영상을 통해 많이 보았다. 그때마다 세계 최고를 향한 불굴의 집념과 열정으로 금쪽같은 성과를 무수히 축적한 업적에 존경심을 느끼면서, 나라에 인재도 많고 애국자도 많다는 생각을 하였다.           


4. 고진감래 확증편향

     

이차전지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더해갈수록 항시 불안하고 초조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머릿속에 가득했던 반신반의가 굳은 신념으로 대체되는 기분이었다. 당시는 가짓수를 세보지 않았으나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 책을 나서 대략 다섯 가지 정도 믿음을 가졌던 것 같다.

     

첫째. 오래지 않아서 화석연료 엔진을 사용하는 자동차들이 모두 전기자동차로 교체될 것이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탄소중립 정책이 국가들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전기자동차의 수가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배터리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자동차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배터리가 없으면 움직일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전기자동차의 배터리는 사람의 심장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셀·소재·부품·장비 업체들로 형성되는 배터리 시장은 양극활 물질(양극재)을 생산하는 업체(소재기업)가 주도하게 될 것이다. 배터리 생산비의 절반 정도가 양극재 구입비용이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넷째. 앞으로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대한민국의 기업들이 지배하게 될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양극재 제조기술을 보유한 회사들이 모두 국내기업일 뿐만 아니라, 기술의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투자종목으로 LG에너지솔루션·LG화학·에크프로·에코프로BM의 주식을 고른 것은 백 번 천 번 잘한 일이고, 원금을 잃을 확률보다 고수익을 거두게 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결과에 대한 염려가 사라지니 오랫동안 발목을 잡고 있던「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이 만만하게 생각되었다. 만약 한정된 자금으로 땅을 사서 돈을 벌고 싶다면 자금 전액을 강남 3구에 투자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자금을 나눠서 강북구·은평구·영등포구 등에 골고루 투자하는 것이 좋을까? 만약 전자는 분산투자가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면 공감을 느낄 수 있을까? 

     

수많은 돌다리를 두들겨 봤어도 판단이 서질 않아, 전문가가 안전성을 점검한 돌다리를 골라서 지금 건너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불시에 지진이나 대홍수 같은 재앙이 닥쳐서 다리가 무너질 것이 걱정되면 다리를 이용할 생각을 접어야 하지 않겠는가? 분산투자로 위험을 나누라고 하지만, 위험을 쪼개면 수익이 보장되는가? 

    

수익 대신 손실이 날까봐 걱정되면 주식투자를 접고 은행예금을 하는 것이 옳은 선택 아닌가? 주식투자를 그만두지 않는 한 ‘하늘을 겨냥하는 자는 나무를 맞추려는 자보다 더 높이 쏜다.’는 통찰을 믿기로 하였다. 세상이 알아주는 위인들도 「긍정적 사고가 긍정적 결과를 만든다.」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위와 같은 생각과 논리로 분산투자를 외면하였다는 자책감을 물리쳤더니, 그때까지 없었던 세 가지 상념과 한 가지 의문이 거의 동시에 머릿속을 채웠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들을 인식한 이후로 나의 투자행태가 180도 바뀌었고, 마음도 한결 더 편안해졌다.    

  

첫째로, 보유한 주식의 가격이 요동치면 내 마음도 따라서 요동치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을 것 같았다. 최소한 10년 이상 계속 성장할 것이 확실시되는 기업들과 동행이 되었다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둘째로, 평소의 좌우명인 ‘하수는 복잡하고 고수는 단순하다.’라는 명언을 모처럼 실천한 것 같았다. 복잡한 경제이론, 금리, 환율, 경제성장률, 인플레이션, 실업률, 기업의 경영지표 등을 몰라도 유망주들을 골라서 장기투자로 재미를 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주식을 배우기 위해 독서와 수강으로 보낸 3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름길을 진즉 알았다면 그 많은 시간을 보다 더 유익하게 썼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생을 할 만큼 해서 조상이 돌봐준 것이라고 믿으면서도 누적된 배신감과 허탈감이 오래도록 느껴졌다.

     

넷째로, 아무리 풀어보려 하여도 도무지 답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가 있었다. 누가 봐도 아주 가깝고 안전한 지름길이 있는데 왜 주식선생들은 현기증이 느껴지는 험로만 가르치는 것일까? 설마 생각해본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그럴까? 아니면 다들 뻔히 알면서 일부러 숨기는 것일까? 

    

만약 알면서도 숨기는 것이라면 이유가 무엇일까? 만인에게 공개된 것이니 영업비밀 침해가 될 리도 없을 터인데, 대체 왜 알려주지 않는 것일까. 혹시 남이 차려놓은 밥상을 기웃거리는 생쥐의 행동 같아서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얌체 같은 생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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