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병인 Jul 04. 2023

제14장 비로소 적진을 벗어난 느낌

1. 마음도 생각도 해방

           

『연금술사』를 저술한 브라질의 파올로 코엘료가 오래전에 방한하여 기자와 인터뷰를 한 기사를 어느 신문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그때 코엘료가 “사람이 뜻을 세우면 전 우주가 합심해서 도와준다.”고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그런 상황이 나에게 생겼다. 

      

2022년 11월 언제쯤으로 기억된다. 배터리 학습을 위해 유튜브의 주식채널을 섭렵하다 우연히 ㈜금양의 박순혁 홍보이사(IR 담당)가 출연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배터리 아저씨’로 불리며 인기 절정의 연예인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해서 마치 둔갑술을 쓰는 홍길동을 보는 것 같았다.

         

그 당시 박이사는 이차전지 산업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전망하며 여덟 개의 국내기업에 장기투자를 하라고 권했는데, 근거와 논리가 탄탄해 보여서 그가 나오는 영상들을 일삼아 찾아서 시청하였다. 

<그림 15> 국내 배터리3사 수주 전망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여의도의 증권가에서 애널리스트로 30년 가까이 활약하다 금양으로 옮겼다는 박이사는 이차전지 분야의 손흥민 같았다. 세계의 어느 나라도 국내의 양극재 기술을 추월할 수 없는 이유를 손선수가 번개처럼 골을 넣듯이 시원하고 명쾌하게 머리에 넣어 주었다.

      

전기차의 심장은 밧데리(이차전지)인데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국내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세 회사가 선도합니다. 배터리 기술의 핵심인 수율(收率·yield)을 잡기가 쉽지 않아서 다른 나라가 기술을 배운다 해도 추월이 불가능한 사업입니다.

         

그러니 눈 딱 감고 제가 추천하는 여덟 기업에 분산투자를 하면 3∼4년 뒤에 반드시 주가가 10배 이상 오르는 기업이 나올 겁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유럽연합의 핵심원자재법(RMA)이 시행되면 미국과 유럽의 배터리 시장을 국내 기업들이 석권할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박이사가 장기투자를 적극 권하는 여덟 기업 가운데 여섯 종목이 내가 이차전지 ETF에서 뽑아낸 열두 기업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다. <표 10>에서 보듯이, POSCO홀딩스와 나노신소재를 제외하고,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에코프로비엠·LG화학·포스코케미칼·에코프로 등 여섯 기업이 완벽하게 일치해 비율을 계산해보니 75퍼센트였다.

<표 10> 2차 전지 분야 유망기업 선정 및 추천 내역 비교

박이사는 여덟 개의 이차전지 기업을 추천하면서 POSCO홀딩스와 에코프로BM을 ‘진입장벽이 높고 기술적 해자가 깊어서 글로벌 경쟁력이 압도적 1위인 위대한 기업’으로 치켜세웠다. 그래서 앞에 사용한 평가도구를 두 기업에 적용해봤더니 차례로 최우수(A+++)와 우수(A++) 등급으로 판별되었다. 



2. 후보기업 목록 보완  

    

‘홀딩스’라는 말이 생소해서 회사의 정체를 추적해봤더니 POSCO홀딩스는 장차 이차전지의 원료광물인 리튬 공급을 책임질 기업이었다. 리튬·니켈·양극재·음극재·리사이클링 등 전기차배터리에 쓰이는 소재와, 수소사업과 같은 친환경미래소재분야(포스코케미칼, 포스코아르헨티나 등)로 사업을 확장하는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아르헨티나 움브레 무에르토(Hombre Muerto) 소금 호수(염호)에 리튬 공장을 착공한 뒤로 리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기업이었다. POSCO홀딩스가 확보한 염호의 리튬 매장량을 고려하면 해당 리튬 공장에서 수십조 원에 달하는 수익을 거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POSCO홀딩스는 국내 이차전지 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염호를 보유한 기업이었다. 리튬 매장량도 풍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0년 12월 글로벌 염수리튬 전문 컨설팅 업체인 미국의 몽고메리(Montgomery & Associates)사는 해당 염호의 리튬(탄산리튬) 매장량이 1350만 톤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단다.

<그림 16> POSCO홀딩스 지배구조

이와 같은 추정치는 POSCO홀딩스(당시 포스코)가 해당 염호를 인수하기 전에 추산한 매장량보다 6배 가량 많은 것이라고 한다. 매장된 리튬의 경제성과 공정의 수율을 적용할 경우, 전기차 약 6천8백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분량이란다. 

    

매장량을 고려하면 POSCO홀딩스는 염호광산 운영에 따른 누적 영업이익이 수십조 원에 달할 전망이란다. 여기에 더해 리튬 가격이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서 시간이 흐를수곡 수익이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된된다. 

    

그 외에도 자동차·조선·가전 등 산업에 원자재를 공급하는 철강사업(포스코)과 무역·건설·에너지를 포함한 친환경인프라사업(포스코인터내셔널, 포스코건설, 포스코에너지 등)이 오랜 역사와 글로벌 네드워크를 기반으로 POSCO홀딩스를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었다. 

     

다음으로 나노신소재는 2000년 창사 이래 20여 년간 풍부하게 축적한 세계 수준의 나노기술(Nano Technology)을 바탕으로 디스플레이, 태양광, 반도체, 특수필름 등 국가기반산업의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회사였다. 근래 들어서는 이차전지 제품들을 출시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고 국내외의 유력 기업들에 세계 최고 수준의 고성능 소재들을 공급하고 있었다.  

   

또, 원재료인 금속 또는 비금속 Metal을 구입하여 초미립 나노 분말로 합성하고 이를 다시 고체인 Target 형태나 Paste/Sol/Slurry 형태의 액상제품을 생산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쌓은 기술력으로 디스플레이 패널, 태양전지, 반도체 CMP공정 등에 사용되는 소재를 생산하면서, 세계 최초의 특허기술로 이차전지 전극에 적용되는 CNT 도전재를 독점생산하였다.  

   

이상과 같은 정보들은 POSCO홀딩스와 나노신소재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들로 보고, 두 기업을 포트폴리오에 추가하였다. 그리고 나서 박순혁 이사가 소속된 ㈜ 금양도 넣었다. 알고 봤더니 금양 또한 이차전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임이 확인되었기 때문이었다. 

           

조사해봤더니 금양은 1955년 국내 최초로 발포제를 생산한 이래 무려 70년 동안 같은 길을 걸어온 저력을 보여준 기업이고, 유광지 회장의 역량과 뚝심을 칭송하는 사람이 많았다. 게다가 홈페이지 단장도 군더더기 없이 단순명쾌하여 경영자와 임직원이 깔끔한 회사라는 인상을 주었다.


홈페이지를 꼼꼼히 둘러봤더니, 신발·매트부터 벽지·바닥재 등 건축자재와 자동차 내장재 등에 쓰이는 발포제를 주로 생산하는 회사였다. 또, 세계 최고의 발포제 기술을 바탕으로 하이드라진·산화티타늄·난연제와 트레이딩 사업을 확대하면서, 이차전지와 수소연료전지 소재 사업을 착실히 키우고 있었다.   

   

오래 고민하지 않고 박이사가 추천한 여덟 종목에 금양을 추가한 아홉 종목으로 최종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였더니, 주식을 사기도 전에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수익을 거두려면 매수와 매도를 잘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었지만 별로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설령 매수한 주식의 가격이 많이 떨어진다 해도 마음이 크게 동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반도체, 헬스케어, 고배당 분야도 ETF에 편입된 종목들을 확인하여 유망주 후보군을 꾸려둔 상황이라, 앞으로 추운 겨울이 닥칠 것에 대비해 창고에 식량을 가득 채워둔 것처럼 마음이 든든하였다.           



3. 일사천리 호사다마 


2023년이 시작되자마자 한 달씩 시차를 두고 이차전지를 다룬 신간 세 권이 연달아 출간되어 배터리 산업에 대한 지식과 이해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제일 먼저 1월에 배터리 산업 전문가이자 세계 최고의 금융서비스 기업인 S&P글로벌의 수석 애널리스트인 루카스 베드나르스키가 2021년에 영어로 펴낸 『LITHIUM: The Global Race for Battery Dominance and the New Energy Revolution』이라는 책을 위즈덤하우스가『배터리 전쟁』으로 국역하여 내놨다.


한 달 뒤인 2월에는 금양의 박순혁 이사가『K-배터리 레볼루션』이라는 저서를 펴내서 K-배터리의 기술 초격차 전략, 배터리 산업에 대한 5가지 거짓과 진실, 투자자들을 부자로 만들어줄 K 배터리 기업 등을 소상히 소개하여 이차전지 종목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주었다. 


곧바로 구입해서 읽어보니까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돋보이고 내용도 참신해 보여서, 한 권을 더 사서 아들에게 읽어보라고 주었다. 3월 17일 저녁 교보빌딩 23층(대산홀)에서 진행된 저자특강에 초대되어 기분좋게 참석해 박이사를 직접 보기도 하였다. 


다시 한 달 뒤인 3월에는 2차 전지 분야 국내 최고의 석학 4인방(정경윤·이상민·이영기·전훈기)이 길벗을 통해『이차전지 승자의 조건』이라는 저서를 펴내서, 즉시 구입하여 배터리가 주도하는 400조 거대 시장의 패권 경쟁을 흥미롭게 읽었다.   


비슷한 무렵인 3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 동안 서울 삼성동의 코엑스홀에서 아시아 최대의 「인터배터리(INTERBATTERY) 전시회」가 열려서,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이노베이션·에크프로BM 등의 부스를 방문해 이차전지(원통형, 각형, 파우치형)·양극제·음극재·전구체·분리막·동박 등의 실물을 직접 확인하였다.       

4월에는 박이사가 어스캠퍼스를 통해 온라인으로 제공한 ‘2차 전지 투자바이블’ 학습영상(VOD) 16개를 모두 시청하고 학습교재를 구입하여 이차전지에 관한 지식의 폭을 넓혔다. 특히 강의에 더하여 제공된 <2차전지 투자바이블 노트>를 통해 이차전지 분야에 대한 투자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악재가 닥쳤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하더니, 내가 그 회사 주식을 극소량 보유하고 있는 에코프로의 대주주인 이동채 전 회장이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이 된 것이다(2023.5.11.).  

     

이 전 회장은 2020년 1월부터 2021년 9월까지 양극재 생산 계열사인 에코프로BM의 중장기 공급계약 정보를 공시하기 전에 차명계좌를 이용해 주식을 샀다가 되팔아 11억원의 차액을 챙긴 혐의로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35억 원에 처해졌었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을 진행한 서울고법 형사5부(서승렬 부장판사)가 이 전 회장의 지위와 범죄의 중대성, 책임에 비해 1심의 처벌이 가볍고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법정구속하고, 벌금 22억원, 추징금 11억872만원을 명령했다. 

     

생각해보니까,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폭락 사태로 수많은 투자자가 막대한 피해를 입어 연일 수사상황이 보도되고, 야당의 김남국 의원이 가상화폐에 투자해 거액을 번 의혹이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TV뉴스를 달구는 분위기가 판사의 심경에 영향을 미쳤을 것 같았다.

      

예상한 대로 에코프로의 주가가 떨어졌다. 판결이 나온 직후 7퍼센트 가까이 떨어지더니 3거래일 연속 하락하였다. 하지만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회사의 펀더멘탈이 변한 것이 아니고, 필요하면 ‘옥중경영’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8개월만 지나면 가석방이 가능하고 운이 좋으면 특별사면도 받을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런데 닷새 뒤에 악재가 또 터졌다. 박순혁 이사가 금양을 떠났다는 소식이 날아든 것이다. 퇴사한 이유는 유튜브 영상에서 아직 정식으로 공시하지 않은 금양의 자사주 매각계획을 공개하여 한국거래소가 금양에 대해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예고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야 여하튼지 간에, 박이사의 퇴사 소식을 듣자마자 박이사에게 퇴직 이상의 별 일이 생기지 않기를 기도하였다. 꽤나 긴 시간 동안, 그가 출연하는 유튜브 영상들, 『K 배터리 레볼루션』, 그리고 어스아카데미를 통해 VOD로 제공된 「이차전지 투자바이블」16강좌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운 처지라, 박이사가 하루빨리 새로운 둥지를 찾아서 초보 투자자들을 계속 이끌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4. IRA와 CRMA 소식     


2022년 8월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을 제정해 시행에 들어가면서 정부와 국내 이차전지 업계의 긴장 수위가 높아졌다. 미국 내 리쇼어링이나 FTA를 체결한 동맹국 역내로의 공급망 이전을 권장하여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이 타격을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차전지 업체들은 오히려 혜택을 입게 될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하였으나 복병이 숨어 있었다. 미국이 우려외국기업(Foreign Entity of Concern, FEOC)으로 지정한 기업으로부터 조달한 광물이나 부품이 일부라도 있으면 세액공제(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어, 중국산 광물을 많이 수입해서 쓰는 국내 배터리업체들은 염려가 컸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증권가와 이차전지 업계에서는 비관론과보다 낙관론이 우세해보였다. 유안타증권의 이안나 연구원은 2022년 12월 15일 대한상공회의소 대회의실에서 개최된「배터리 얼라이언스」산업경쟁력 분과회의에서 ‘미국의 IRA가 우리 기업들에게 제공하는 성장의 기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첫째. IRA는 전기차 보조금 지급, 세액공제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통해 미국 전기차시장이 가진 잠재력을 현실화시켜 국산 배터리 수요도 급증하게 될 것임.

- 현재 미국의 전기차 침투율은 4%에 불과하며, 3대 시장 중 가장 낮은 상황(2021년 기준 전기차 침투율 : EU 14%, 중국 11%)     

- 현재 전기차 침투율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성장잠재력이 높다는 뜻으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수요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021년 3%에서 2025년 44%로 크게 증대될 것으로 예상됨.

- IRA 등 탈중국 공급망정책으로 인해 증가된 미국내 전기차 수요의 상당 부분이 국내 배터리 기업을 통해 충당될 것이며, 국내기업들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2021년 26.5%에서 2025년 69% 수준으로 높아질 것임.     

 * 미국내 생산 Capa : 2021년 39GWh→ 2025년 442GWh로 11배 이상 증가     

둘째. 첨단제조 생산세액 공제 제도를 활용해 배터리 3사는 2025년까지 19조원의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기대됨.

- 세액 공제의 구체적 지급 요건 등이 확정되지 않았으나, 2025년까지 배터리 3사가 미국에 공장을 짓기 위해 총 40조원을 투자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초기 투자비의 절반가량을 공제받게 될 전망임.

셋째. IRA를 계기로 국내기업이 장기계약을 통해 핵심광물들을 미리 확보하고 배터리 공급망 수직계열화에 성공할 경우, 신생업체 등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 선점과 더불어서, 기존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 강화할 수 있을 것임

- 광물계약은 보통 중·장기계약 형태로 체결되므로, 시장에 이미 진출해 있는 기존 배터리/소재 업체들이 안정적 물량 확보에 우선권을 가지게 되기 때문임.

- 기존기업들은 장기계약/합작투자/인수합병 등을 통해 배터리 공급망 수직계열화를 추진하면서 경쟁업체들보다 안정적으로 핵심광물, 소재를 확보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임.     


그런데 그해 11월 하순경 국내 이차전지 업계가 또 술렁거렸다. 유럽연합(EU)이 해외 자원 및 부품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소위 유럽판 '인플레 감축법(IRA)'에 해당하는 '핵심 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 CRMA)'을 제정할 것이라는 보도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IRA는 ‘미국에서 생산된 제품’만 보조금을 주겠다는 것인 반면, 유럽의  CRMA는 ‘유럽에서 생산된 원자재가 사용된 제품’만 보조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즉, 유럽의 CRMA는 유럽 내의 원자재 공급망을 강화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미국의 IRA는 중국제품이 미국에서 힘을 못 쓰게 하기 위한 것이고, 유럽 CRMA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공급 불안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즉, IRA의 목적은 미국의 경제를 지키는 데 있고, CRMA의 목적은 유럽의 안보를 지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CRMA 역시 IRA처럼 리튬, 희토류 같은 핵심 원자재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켜, 핵심 원자재의 중국 의존도가 높은 국내의 이차전지 산업이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었다. 그런데 IRA도 CRMA도 K-배터리에 호재라는 분석이 있더니, 과연 희소식으로 결말이 났다.  

    

먼저 2023년 3월 17일 CRMA 초안이 발표되었는데 국내 배터리업계가 잠잠하였다. 배터리 핵심원자재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진즉부터 공급망 다변화와 해외 생산기지 구축에 주력해왔기 때문이다.  

   

원자재 조달도 낙관적이다. 배터리 업계가 이미 2017년부터 중국산 원자재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해법을 다각도로 모색하여 마땅한 방안들을 찾았기 때문이다. POSCO홀딩스의 폴란드 폐배터리 재활용공장이 대표적 본보기다.

<표 15>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RA) 세부조항

유럽연합의 CRMA 초안이 발표되고 2주일 뒤인 2023년 3월 31일 미국 재무부가 ‘IRA 세부조항’을 발표되었는데 역시 배터리업계가 차분하였다. 전기차 보조금(세액공제) 산정기준을, 배터리 부품 북미 제조‧조립 비율, 핵심광물 미국 및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 추출‧가공 비율을, 개별 부품이나 광물이 아닌 전체 부품과 광물의 가치로 정했기 때문이었다.  


        

5. 중국의 우회전략

     

미국의 IRA와 유럽연합의 CRMA가 발표된 뒤로 중국 베터리업체들의 국내 투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미국과 유럽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지자 한국을 경유하여 미국과 유럽에 진출하는 우회전략을 택하는 것으로 보여 해가 될 것이 없다는 시각이 우세한 분위기다. 

     

미국과 EU의 관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는 있을 것이나, 글로벌 원료공급망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지대한데다, 교역과 고용의 증대, 기술유출 방지 같은 순기능이 수반될 것을 감안하면 손익 측면에서 나쁠 것이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배터리업계의 중론은 미국의 의도대로 되어가는 것이어서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쪽에 무게를 두는 것 같으나, 미국이 한·중합작 중단을 요구하거나 합작을 방해할 가능성을 염려하는 시각도 있는 것 같다.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IRA 세부지침’에 따르면, 미국에서 전기차 보조금(세액공제)을 받으려면, 배터리 핵심광물의 40% 이상을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생산된 것으로 써야한다. 게다가 중국은 해외우려단체(FEOC)에 포함되어, 중국산 배터리 부품과 핵심광물에 대한 수요가 크게 줄어들 것이 거의 확실하다.      


중국으로부터 조달한 배터리 부품은 2024년부터, 핵심광물은 2025년부터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중국의 배터리업체들이 국내의 배터리 소재기업들과 합작을 추진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으로 보이며, 합작의 규모가 매우 큰 경우만도 한둘이 아니다.  

       

2022년 11월 세계 최대 전구체 기업인 중국 CNGR이 1조원을 투자해 경북 포항에 전구체 및 황산니켈 생산기지를 짓기로 하였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국내기업으로 포항에서 양극재를 양산하는 에코프로BM, 포스코퓨처M 등과 협업체계를 구축한다고 하였다.  

    

전구체는 배터리 생산단가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양극 활물질(양극재)의 중간재다. 전구체에 리튬과 접착제 등을 섞으면 양극재가 된다. 그런데 국내 기업들의 양극재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양극재 생산비의 절반을 점하는 전구체의 국내 생산 비중은 13% 안팎에 불과하다. 모자라는 87%는 중국산을 수입해서 쓴다.      

따라서 한·중합작으로 설립된 기업이 국내에서 전구체를 생산하게 되면 당연히 양극재 생산비가 낮아지는 이점이 따를 뿐만 아니라, 전구체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이 줄어드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양극재 원료인 전구체 생산에 필요한 리튬·인산철(LFP), 니켈·코발트·망간(NCM),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등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양극재 물질의 혼합, 첨가제 성분, 소성 방식 등이 상대방 기업의 관계자들에게 알려지는 경우가 실제로 종종 생긴다고 한다.

        

그런 장점들이 있기 때문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국내의 이차전지 소재 기업이 중국의 이차전지 기업과 손을 잡고 국내에 이차전지 소재회사를 설립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가 확연하게 감지된다. 

        

2023년 2월에는 중국의 이차전지 소재 업체로 충북 충주에 양극재 공장을 보유한 롱바이가 2025년까지 1조원을 들여 충주의 양극재 공장(1개)을 4개로 늘리는 계획을 공개하였다. 당초에는 6천억 원을 투입하여 연산 7만 톤의 생산능력을 갖추기로 계획을 세웠다가 4천억 원을 늘려서 생산능력을 11만톤에 맞추기로 계획을 수정한 것이라고 한다.


한 달쯤 뒤인 3월에는 SK온과 에코프로머티리얼즈가 중국 거린메이(GEM)와 손잡고 2024년까지 총 1조2천100억원을 들여서 전라북도 군산의 새만금 국가산업단지에 전구체 공장을 짓기로 하였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다시 두 달쯤 뒤인 5월에는 포스코퓨처M이 중국의 화유코발트와 합작사(Joint Ventur, JV)를 설립하게 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합작사를 통해 오는 2027년까지 1조2천억 원을 들여 경북 포항 블루밸리산업단지에 전구체와 고순도 니켈 원료 생산라인을 구축할 것이라고 하였다. 

    

화유코발트는 LG화학과도 함께 경북 구미에 양극재 합작공장을 짓는 중이다. 또, 2023년 4월에는 전북 군산 새만금국가산업단지에 1조2천억 원을 투입하여 2028년 말까지 전구체 공장을 짓기로 하였다. 그밖에도 POSCO홀딩스와 폐배터리 재활용사업을 위한 합작사(포스코HY클린메탈)를 설립해 전남 광양에 전용 시설을 갖추는 중이다. 

    

국내기업과 중국기업의 제휴가 장차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는지는 누구도 단언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 이차전지 업계의 기류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전망이 우세해 보이므로, 이차전지 기업에 투자하고 있거나 장차 투자하려는 이들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전 14화 제13장 보물창고에서 황금마차 발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