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을 남용한 수령들을 두둔한 대관 경질
한성부 윤(정 2품) 이간과 호조 정랑(정 6품) 박금이 ‘출납장부허위작성죄’로 처벌되었다. 전에 둘이서 경상도 상주의 목사와 판관으로 함께 있으면서 백성에게 꾸어주는 환자곡의 출납장부를 허위로 기재한 것이 호조에 적발되었기 때문이었다(세종 5년 11월 9일).
이간은 지방에 부처되고 박금은 장 90대를 돈으로 바쳤으며, 이후로도 수령 여러 명이 비슷한 혐의로 적발되어 같은 죄목으로 처벌되었다. 그런데 강원도 회양부에 끼니를 굶는 백성이 많아 부사 진준이 임의로 환자곡 1천7백60석을 꾸어주고 미납을 수납으로 기재하였다가 호조에 발각되자 일이 꼬였다(세종 6년 6월 14일).
임금이 사헌부로 하여금 진준을 ‘출납장부허위작성죄’로 다스리게 하니, 사헌부가 상소를 올려서, 진준의 죄명을 처벌 수위가 낮은 나이출납(挪移出納•출납을 정당하게 하지 않음)으로 바꾸게 해 주기를 청했기 때문이다.
흉년이 심해서 수령들이 법을 지키기가 어려울뿐더러, 그동안 비슷한 사례들에 대한 처벌에 일관성이 없었다며 진준을 무겁게 처벌하면 안 되는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중에는 '진준을 ‘출납장부허위작성죄’로 처벌하려면 백성을 구제하려고 애쓴 관리는 모두 직첩과 과전을 거두고 노역에 처해야 할 것'이라는 조롱 섞인 항변도 들어 있었다.
임금이 사헌부의 청을 따를 뜻이 없음을 밝혔다. 사헌부가 처음에는 수긍하는 듯하더니, 얼마 뒤에 다시 또 상소를 올려서, 수령들의 난처한 처지와 더불어서 의창의 환상곡 출납과 관련된 여러 가지 폐단을 줄줄이 폭로하였다. 임금을 설득해보려는 의도였을 것이나 그 내용이 매우 충격적이고 다분히 도발적이었다.
과거 10여 년 동안 여러 도에서 의창의 곡식을 꾸어주는 데에 절도가 없었을뿐더러 거둬들이는 것도 고르지 못해서 미납한 곡물이 백여 석을 넘는 집도 있습니다. 여러 해 연달아 곡식이 제대로 여물지 않아서 한 해의 수확을 모두 합해도 의창에서 빌린 곡식을 갚고 나면 세금과 공물을 바칠 것이 모자랍니다. 각도의 경차관은 규정을 지키려고 담당자를 채찍으로 때려가며 수납을 재촉하여 수령까지 욕을 듣습니다. 또, 벼가 아직 타작마당에 오르기도 전에 사람을 내보내 수확을 감시하면서 수확량 전부를 의창으로 실어가도 미수가 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의창에서 곡식을 꾸어간 사람들을 관아에 가두어 더벅머리에 벌거벗은 종아리로 거리를 배회하는 노인과 아이가 한둘이 아닙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옥에 갇힌 사람들의 고통이 더욱 심해져, 수령들이 차마 환자곡 수납을 재촉하지 못하고 출납장부에 미납을 수납으로 적은 것이고, 만약 감사에게 보고하고 호조의 회보가 오기를 기다리면 구제 시기를 놓칠까 봐 우선 나눠주고 장차 거둬들일 생각을 한 것입니다(세종 6년 6월 14일).
임금이 노기를 드러내더니, "진준이 곡식을 임의로 출고한 사실을 즉시 보고하지 않고 미납을 수납으로 기재한 것은 나라를 기만한 것이니 죄가 무겁다."라고 일갈하였다. 이어서 진준이 중대한 범죄를 범했는데도 사헌부가 진준의 행동을 감싸는 이유를 따지더니, “사헌부에 대관이 여럿인데 상소의 수준이 왜 그리 낮으냐."라고 면박을 주었다.
병조 판서 조말생이, "법을 맡은 사헌부의 수장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라고 비위를 맞추니, 다음날 임금이 의정부와 육조의 대신들을 불렀다. 모두 도착하자 먼저 사헌부의 상소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더니, 환자곡을 멋대로 나눠주고 임금에게 보고하지 않았거나 미납된 환자곡을 수납으로 기재하였다가 이후에 거둬들인 수령들에 대한 처벌 방안을 토론에 부쳤다.
환자곡을 마음대로 나눠준 죄를 물으려는 것이 아니라, 환자곡을 임의로 꾸어주고 임금에게 보고하지 않은 죄와 미납을 수납으로 기재한 죄를 물으려는 것이라며 의견을 물었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사헌부의 상소는 법조문과 임금의 생각을 잘못 이해한 소치라고 아뢰니, 대사헌 유영이 자신의 부족함을 자인하며 대사헌 직책에서 물러날 뜻을 밝혔다(세종 6년 6월 15일).
임금이 대사헌의 처신을 그르게 여겼던지, 하루 뒤에 의정부와 육조에 명을 내려, 벼가 타작마당에 오르기도 전에 관청에서 사람을 내보내 수확을 감시하였다는 말의 진위를 철저히 밝히게 하였다. 아울러서, 사헌부가 임금은 생각지 않고 국가를 속인 수령들을 편드는 이유를 밝혀야겠다며, 대사헌 유영과 대관들을 제재하는 방안에 대해 생각을 물었다(세종 6년 6월 16일).
정부와 육조가 한 목소리로 유영을 의금부에 내려서 상소에 적힌 말들의 진위를 추궁해 죄를 바르게 밝히기를 청했다. 임금이 유영을 의금부에 내리느니 후임 대사헌에게 처리를 맡기거나 형조에 맡길 생각으로 다시 의정부의 의견을 물으니, 정승·찬성· 참찬이 육조와 합세해 유영을 반드시 의금부에 넘기기를 청했다.
임금이 결정을 망설이는데 평소 충직한 간언을 잘하는 이조 참판 허조가 홀로 나서서 지원사격을 해줬다. 유영의 말은 부적절하였어도 대사헌은 책임이 막중한 직책이니 대사헌 이하 대관들에 대한 수사를 의금부 대신 형조에 맡기는 것이 옳겠다고 아뢰니, 곧바로 윤허가 내렸다.
나흘 뒤에 형조가, 대사헌 유형은 회양 부사 진준의 죄를 면해주려고 임금을 속이고, 집의 이자직·장령 이맹상·지평 이심·이견기 등은 '대사헌의 말을 곧이듣고 그릇된 상소를 올린 죄를 아뢰며 각자에게 법대로 형벌을 내리기를 청하니, 임금이 대사헌 이하 대관 전원을 경질하였다(세종 6년 6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