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의 불평이 왜 문제인가

임금을 모독한 백성의 심정을 역지사지로 이해

by 조병인

[1] 함길도 의천 본궁의 여종이 현역 군인의 난언을 무고한 일로 한바탕 소동이 있은 직후 임금이 ‘난언죄’의 구성요건과 처벌기준을 법으로 정했다. 임금의 위신을 실추시키는 말을 하면 불충죄를 씌워서 죽이는 야만적 풍토를 없애기 위함이었다.


난언이 고발되면 먼저 임금에게 보고한 뒤에 사실 여부를 밝히게 하였다. 난언의 내용이 심각한 수준이면(정리절해·情理切害) 참형에 처하여 가산몰수를 부가하고, 심각한 수준이 아니면(비절해·切害) 장 1백대를 쳐서 3천 리 밖으로 내쫓게 하였다. 다른 사람을 난언죄로 무고하면 반좌법(反坐法)에 따라 난언죄로 처벌하게 하였다(세종 4년 윤 12월 8일, 5년 1월 4일).


부왕 시절 사소한 불평을 난언으로 몰아서 임금의 처남 네 명과 전·현직 고관 십여 명을 죽이고, 임금이 즉위한 뒤에도 강제로 난언죄를 덮어씌워 임금의 장인 형제를 비롯한 고관 다섯 명을 죽인 ‘불충’이라는 괴물이 발붙일 곳을 잃었다. 법적 근거도 없이 법질서를 마구 유린하던 ‘괘씸죄’가 유령의 탈을 벗은 것이니, 동물로 치면 번식을 막기 위한 거세나 불임수술 수준의 파격으로 여길 만하다.


[2] 1년쯤 후에 황해도 강음현에 사는 조원이라는 농부가 난언 혐의로 의금부에 잡혀왔다. 앞서 조원이 토지소송을 제기하였는데 현감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자, 조원이 화가 솟구쳐, “임금이 착하지 못해서 이 같은 자가 현감이 된 것이다.”라고 내뱉었다가 법망에 걸려든 것이다(세종 6년 4월 4일).


조사팀이 꾸려져 의금부 제조들과 삼성(三省: 의정부, 사헌부, 의금부)이 조원에게 임금을 원망한 이유를 물으니, 현감이 손님과 술을 마시면서 자기 송사의 판결을 미뤄서 홧김에 지껄인 것이라고 하였다.


임금에게 그대로 아뢰니, 임금이 맹자의 말을 인용하여, "무지한 백성이 임금더러 착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은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려는 것과 같다."라며, 조원을 속히 풀어주라고 명을 내렸다(세종 6년 4월 17일).


지신사 곽존중과 다섯 승지가 합세하여 조원을 엄히 다스리기를 청해도 윤허하지 않았다. 의금부·사간원·사헌부가 차례로 상소를 올려서, 조언의 난언을 '정리절해'로 몰아세워 법대로 사형에 처하기를 청해도 윤허가 내리지 아니하자, 육조와 의정부가 합세해 같은 요지의 상소를 또 올렸다.


그래도 임금이 꿈쩍도 아니하자, 영의정이자 의금부 제조이던 유정현이 조원을 죽이기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세종 6년 4월 24일). 다음 날은 사간원·사헌부·의정부·육조가 한꺼번에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조원에게 불충죄를 적용해 사형에 처하기를 청했다(세종 6년 4월 25일).


사헌부가 올린 상소에는, ‘조원이 평소 딴마음을 품고 있어서 도리에 반하는 말(부도지언·不道之言)이 이따금씩 튀어나오는 것’이라고 적혀 있었으나, 임금은 도리어 조원을 화나게 만든 현감의 과오를 지적하며 상소를 멈추라고 명을 내렸다.


조원에게 차마 임금을 비방한 죄를 씌울 수가 없다. 조원이 사는 고을의 수령이, 홍수와 가뭄의 연속으로 백성의 형편이 궁핍해진 사정은 생각지 않고, 손님과 술을 마시면서 이유 없이 토지소송을 미뤄서 벌어진 일이니 다시는 조원의 죄를 청하지 마라(세종 6년 4월 25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간원 헌납 차유와 사헌부 지평 이견기가 다시 또 조원을 사형에 처하기를 청하자, 임금이 조원을 그의 고향인 강음현에서 2년 동안 노역을 치르게 하였다. 조원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었지만, 신하들의 공세가 워낙 거세고 집요해,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次惡)을 택한 것이다(세종 6년 5월 6일).


4년쯤 뒤에, 죽은 조영무의 차남 조질이 아비가 죽은 뒤에 가족 간에 재산다툼을 벌이다 팔려고 내놓은 집이 얼른 팔리지 않자, 죽은 태종의 후궁인 명빈에게 '임금도 다 알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여 명빈이 자기 집을 사게 한 사실이 밝혀져, 임금이 조질을 불효죄로 장 1백대에 처하니, 사간원이 조질의 죄를 다시 정하기를 청했다. 조질에게 불충죄를 추가하기를 청한 것인데, 임금이 물리치면서 불충의 의미를 깨우쳐주었다.


불충은 임금에게 화(禍)가 미치게 할 마음을 품고 이를 말로써 드러내는 것(包藏禍心 而形於言語·포장화심 이형어언어)을 일컫는 말이니, 조질이 명빈을 속인 것은 불충과 무관하다(세종 10년 6월 14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언이 고발될 때마다 불충을 들먹이며 임금에게 극형에 처하기를 청하는 구태가 사라지지 않더니, 결국은 무지한 시골 백성 한 명을 희생시켰다.


[3] 황해도 이천에 살던 전남기라는 양민이, 관청에서 환상곡 상환을 독촉하자 화가 치솟아, “지금의 임금이 얼마나 오래가겠느냐. 황해도 백성이 임금이 될 수도 있다.”라고 떠벌였다가 난언죄로 체포되었다. 의금부에서 조사를 마치고, 남기의 난언을 '정리절해'로 간주해 남기를 참형에 처하고 그의 재산을 몰수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전례를 내세워 거부하려 하였다.


남기는 생활이 매우 어려운 상왕에서 환상곡 상환을 독촉하는 관원이 미워서 임금을 원망하는 말을 하였을 따름이지 내게 손해를 입힌 것은 없지 않은가. 예전에도 남기처럼 난언한 자가 있었지만 사실 여부만 확인하고 끝냈으니 남기도 살려주면 어떻겠는가(세종 15년 3월 13일).


예조 판서 신상이 반기를 들었다. 고려 말엽에 난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서 마침내 나라가 무너졌을 뿐더러, 남기의 난언은 죄가 무거워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라며 남기를 법대로 참형에 처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마지못해 윤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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