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종 첩도 제대로 대우하여라
주인의 첩이었다가 버림받은 노비 구원
형조 판서 노한이 길을 가다가 괴이한 장면을 목격하였다. 한 백성이 가죽과 뼈가 서로 붙어 사람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물체를 지게에 지고 가는 것을 본 것이다. 다가가서 연유를 물어봤더니, 집현전 응교(종 4품)인 권채 집의 여종인데, 도망을 쳤다가 권채의 미움을 사서 그 지경이 되었다고 하였다.
노한이 형조 관원을 시켜서 권채 부부가 집의 여종을 잔인하게 학대한 사실을 알아내 임금에게 그대로 아뢰었다. 임금이 듣고 나서, 권채의 성품이 얌전하고 조용한 줄 알았다며 실망을 표하더니, 소심한 권채가 아내에게 휘둘렸을 수 있다며 엄정한 수사를 지시하였다(세종 9년 8월 20일).
형조가 파헤쳐봤더니, 앞서 권채가 집의 여종인 덕금을 첩으로 삼자 권채의 아내가 덕금에게 복수할 기회를 벼르다가 그때 일을 낸 것이었다. 덕금이 자신의 허락을 받지 않고 몰래 할머니 문병을 다녀온 일을 가지고 덕금이 바람을 피운 것처럼 남편을 속여서 부부가 함께 수개월 동안 혹독하게 덕금을 학대한 것이다.
권채가 덕금의 머리털을 자르고 모질게 매질을 한 뒤에 덕금의 발목에 고랑을 채워서 방에 가두니, 권채의 아내 정씨가 덕금에게 밥 대신 오줌과 똥을 먹게 하였다. 덕금이 똥 속에 구더기가 우글대는 것을 보고 먹지 않으니 정씨가 침으로 덕금의 항문을 찔러서 억지로 구더기를 삼키게 하였다. 덕금이 허기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사경을 헤매자 정씨가 사내종을 시켜서 덕금을 지게로 져서 밖에 내다 버리게 하였는데, 형조 판서가 우연히 그 현장을 본 것이었다(세종 9년 8월 24일).
형조가 임금에게 권채의 직첩을 거두고 내외를 잡아다가 함께 죄를 다스리기를 청했다. 그대로 윤허가 내리니, 조정의 대신들이 조직적으로 뭉쳐서 권채를 지키주려 하였다. 중추부 판사 변계량·제학 윤회·총제 신장이 합세하여 임금에게 권채를 선처해주기를 청하니, 임금이 지시를 바꿔서, 권채의 직첩을 거두지 말고 의금부에 내려 국문하게 하였다.
의금부 제조들이 권채 부부를 조사하고 나더니, 내외의 엽기적 만행을 부인 정씨의 단독범행으로 처리하려 하였다. 권채는 부인 정씨의 악행을 몰랐을뿐더러, '종이 주인을 고소한 경우'라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대질시킬 수가 없다며, 임금에게 정씨가 가장의 명을 거역하고 종을 학대한 죄만 다스리기를 청한 것이다.
의금부 제조들이 말한 '종이 주인을 고발한 경우'란 5년 전에 제정된 노비고가장조(奴婢告家長條)를 말한 것이다(세종 4년 2월 3일). 그 법의 골자는 노비가 주인의 비리를 관청에 고발하면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접수를 거부하고 무고죄로 교수형에 처한다는 것이었다. 노비의 배우자가 배우자의 주인을 고발해도 접수를 거부하고 장 1백대를 쳐서 3천 리 밖으로 추방하도록 되어 있었다.
의금부 제조들의 건의를 접한 임금은, 그대로 따를 것처럼, 권채는 일단 석방하고 정씨만 가두고서 덕금을 학대한 이유를 자세히 캐게 하였다. 그런데 수사결과가 나오자 태도를 바꿨다. 나라에서 두 사람의 죄를 먼저 알고 수사에 착수한 것이라 '종이 주인을 고소한 경우'로 볼 수 없다며, 권채 집의 종들을 엄히 추궁하여 권채가 부인의 악행을 알았던 정황이 드러나면 함께 잡아다가 신문하게 하였다(세종 9년 8월 27일).
의금부가 신문에 들어가자 권채도 정씨도 바른대로 말하지 않고 발뺌을 하였다. 권채의 집 노비의 진술이 형조의 보고와 일치하는데도 부부가 혐의를 한사코 부인하며 '형조 판서가 쓸데없이 일을 키웠다.'고 불평하였다. 의금부 제조 신상이 그대로 아뢰니, 임금이 수사팀에 한껏 힘을 실어주었다.
임금의 직책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니, 하찮은 생명이 잠잘 곳을 잃어도 크게 상심할 것이다. 하물며 사람이 잠잘 곳을 잃는 일이야 말해 무엇하겠으며, 차별 없이 만물을 다스려야 할 임금이 양민과 천인을 구별하면 되겠는가. 그 집의 여종 녹비가 바른대로 말하여 모든 일이 명백해졌으니, 권채가 자백을 거부하면 신장(訊杖)을 가해도 좋다(세종 9년 8월 29일).
권채의 집에서 부리는 남녀 종들의 증언으로 권채도 학대에 적극 가담한 사실이 밝혀지자, 의금부에서 임금에게, 권채는 형률에 따라 관직을 박탈한 뒤에 유배형에 처하고, 권채의 아내 정씨는 고령인 점을 감안해 장 80대에 처하여 죗값을 돈으로 갚게 하기를 청했다(세종 9년 9월 3일).
그대로 윤허가 내리니, 이조 판서 허조가 지신사 정흠지를 통해 권채의 죄를 면해주기를 청했다. 이유는 위계질서가 붕괴되어 사회기강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종과 주인의 사이는 그 관계가 같습니다. 권채에게 여비를 학대한 죄를 씌워 직첩을 거두고 지방에 부처하시니 강상이 문란해지는 발단이 될까 두렵습니다(세종 9년 9월 4일).
흠지가 임금에게 허조의 우려를 그대로 아뢰니, 임금이 권채 부부의 죄를 묵과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주며 허조에게 그대로 전하게 하였다.
덕금이 비록 종일 지라도 주인의 첩이 되었으면 마땅히 첩으로 대우해야 하고, 그 아내도 또한 마땅히 가장의 첩으로 대우해야 옳을 것인데, 권채 부부는 도리어 말할 수 없이 잔인하고 포학한 짓을 저질렀으니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세종 9년 9월 4일).
흠지가 있다가 "권채의 죄는 가벼운 것 같다."라고 아뢰니, 임금이 허조의 염려가 마음에 걸렸던지, 권채의 유배형을 면해주고 그의 직책만 거두게 하였다. 그 뒤에 오래지 않아서 권채를 다시 등용하여 나라의 중요한 일을 두루 맡겼으니, 권채 부부가 한 때 덕금을 심히 학대한 잘못을 깊이 뉘우치며 덕금과 그녀의 가족을 사람답게 대했을 것으로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