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혐의는 굳이 캐지 마라

탈선한 두 처녀 처리와 여자의 혼인연령 지정

by 조병인

이름이 각각 동자와 금음동이라는 두 처녀가 인척 사내들과 애정 행각을 벌였다가 탄로가 났다. 동자는 사정(정 7품 무관)을 지내고 죽은 양웅의 딸인데, 임득성이라는 사내의 처인 민씨 집에 도망해 들어가 민씨의 아들 임견수와 정을 통하고, 인척인 조상과도 정을 통했다고 하였다.


금음동은 소윤(정 4품 문관)을 지내고 죽은 조민경의 딸인데, 인척 사이인 양자부와 견수의 남동생인 임일과 연달아 정을 통했다고 하였다(세종 9년 9월 16일).


중추부 판사 변계량이 임금에게 여섯 명 모두 법대로 처리하기를 청하니, 이조 판서 허조가, 백성의 마음을 바루고 풍속을 바로잡을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여자들이 정조를 지키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사내들이 억세고 사나운 것도 문제라고 아뢰니, 임금이 여자의 혼인 연령을 지정하는 방안을 토론에 부쳤다(세종 9년 9월 4일).


여자들이 좋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은 혼인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동자와 금음동이 제 때 시집을 갔다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겠는가. 내가 일찍이 서울과 지방의 관원들로 하여금 혼인 시기를 놓친 처녀들을 찾아내서 시집을 보내게 하였는데, 관원들이 마음을 쓰지 않아서 이 같은 일이 벌어졌으니, 혼인 연령을 한정하면 어떻겠는가(세종 9년 9월 4일).


임금이 말을 마치자 변계량이 15세를 제안하였다. 그렇게 하면 부득이한 사정으로 한두 해를 넘기더라도 혼인 시기를 놓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아뢰니, 임금이 대신들에게 심층 토론을 지시하였다.


일주일쯤 뒤에 임금이 사헌부 장령 윤수미를 어전으로 불렀다. 동자와 금음동 사건에 대한 수사의 진척 상황을 물어보더니, 정을 통한 정황이 애매한 혐의는 굳이 끝까지 캐려 하지 말고, 사내 용의자들이 자백한 부분에 대해서만 법을 적용하라고 지침을 주었다.


대개 간통은 은밀히 이루어지게 마련이고, 옛날 사람들이 간통에 대한 형률을 마련하면서 반드시 현장을 들킨 경우만 죄를 논하게 한 데에는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다. 서로 인척 사이인 동자와 조상이 정을 통했다는 의혹은 정황이 애매하니 더 이상 추국하지 말고, 임견수 형제와 양자부가 스스로 범행을 시인한 부분에 대해서만 판결을 내리도록 하라(세종 9년 9월 12일).


수미에게 위와 같이 이르더니, 피의자들을 신문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였다. 동자도 금음동도 간통 현장을 들키지 않았는데 두 사람을 여러 차례 신문한 잘못을 질책하더니, 절대로 조급한 마음에서 무리하게 고문을 가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피의자를 엄히 문초하면 뒷사람에게 경고가 되기는 하겠지만 강제로 형벌을 써서 자백을 받으려고 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갑절이나 많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피의자를 문초할 때 매질을 가할 수 있는 한도를 정하려 하는데, 간사하고 교활한 무리들이 속으로 매질의 횟수를 세면서 끝까지 참아서 범행을 숨길까 봐 걱정이다. 또, 내가 왕위에 오른 뒤에 사리를 아는 사람이 형벌을 두려워해 허위자백을 하였다가 나중에 재수사를 통해 죄를 벗은 적이 있었으니, 그대들은 사건의 진상을 명확하게 규명하되, 판결을 앞당길 생각으로 지나치게 고문을 가하는 일이 없게 하라(세종 9년 9월 12일).


이틀 뒤에 임금이 좌대언 김자에게, 동자·금음동·양자부의 죄를 형률에 의거하여 결단하되, 그들을 죽여야 할지 살려야 할지에 대해 의정부·육조·삼군 판부사·한성부 당상(정 3품 이상)과 함께 의논하여 결과를 아뢰게 하였다. 김자가 의견을 모아보니 의견이 제각각이었다.


형률에 따라 남녀 모두 먼 변방으로 영구히 추방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사족으로서 서로 인척 간인 남자와 간통하여 아이를 밴 증거가 명백하니 중벌로 다스려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사족의 딸로서 나쁜 행동을 하였으니 평생 관노비로 살게 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어서, 그대로 아뢰니, 임금이 사헌부로 하여금 법대로 죄를 정하여 아뢰게 하였다(세종 9년 9월 14일 ).


이틀 뒤에 사헌부에서, 동자와 견수는 장 1백대에, 임일은 장 80대와 노역 3년에, 자부는 장 1백대와 노역 3년에 처하기를 청했다. 아울러서 동자와 금음동은 공히 옷을 벗겨서 장형을 집행하고, 금음동과 자부에게는 법외 형벌을 부가하기를 청하니, 머두 그대로 윤허가 내렸다(세종 9년 9월 16일).


사헌부가 양자부와 금음동의 형이 너무 가볍다고 여기고 상소를 올려서 형을 더 높이기를 청하니, 임금이 두 사람을 변방 관아의 노비로 삼아 사면이 있어도 평생 풀려나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하였다(세종 9년 9월 14일,16일).


그다음 날 예조에서 중국 송나라 때 주자가 유가(儒家)의 예법의장(禮法儀章)을 상술한《문공가례(文公家禮)》의 규정에 따라 여자의 혼인 연령을 14세에서 20세사이로 지정하였다. 까닭 없이 기한을 넘긴 부모는 형률에 의거하여 논죄하고, 부득이하게 기한을 넘겨야 할 경우는 미리 관아에 사정을 알리고 검증을 거치게 하였다(세종 9년 9월 17일).


그 뒤에 임금이 두 처녀의 처지가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6개월 남짓 뒤에, 죽은 이지의 미망인인 김씨의 유배를 풀어주고 유감동의 천역을 면제하여 먼 지방으로 옮기게 하던 바로 그날 양자부와 금음동도 감동과 똑같이 하게 하였다(세종 10년 윤 4월 1일). 대사헌 최부 등이 상소를 올려 철회를 청했지만 무시하고 따르지 않았다(세종 10년 윤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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