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이별

이별하고 건강하여라

by 박순영

헤르만 헷세의 시 <단계>로 기억된다 "마음이여 이별하고 건강하여라..."



이별은 가슴아픈 일이다. 그 누가 시간과 공을들인 친숙한 대상과 헤어져 남은 생을 헛헛하게 살기를 원하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삶이 숱한 만남의 연속이라면 그만큼 이별의 연속이기도 하다.



오랜 친구 하나가 있었다. 이별했으니 과거시제라 적절하리라...

단발머리 여고생 시절 만났으니 수십년 된 관계다. 또래에 비해 일찍 결혼, 일찍 돌싱이 된 나는 아이도 없이 살아왔다.

그런 나에 비해 친구들은 거의가 (모두는 아니다) 안정된 생활을 꾸리고 자식을 두엇씩 두고 살아왔다. 그러면서 어느때부턴가 나라는 존재는 친구들의 배려와 관심이 필요한 존재가 돼버린거 같다. 내가 원하지도 않았건만.



그 친구와도 그리 순탄한 여정만은 아니었다. 내가 결혼 2년만에 돌싱이 되자, 지극히 평범한? 가치관의 소유자였던 친구들은 조금은 색안경을 끼고 나를 바라봤다.그때만 해도 이혼은 연예인이나 하는 리버럴 액션, 그 정도로 여겨질 때기도 했고.

그 친구역시 결혼초엔 아이를 낳고 시댁과의 이런저런 마찰로 인해 나와의 관계에 조금은 소홀했고 나또한 방송일을 시작할 즈음이라 서로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렇게 안정적 거리감이 생기자 때로는 그저 가끔 안부전화 한통이 더 편하기도 할 정도였다. 만나면 오히려 부담스러운 그런...


그런데 나이 들고 아이들과 남편에 더 이상 잔손이 가지 않게 되자 그 친구는 다시 나에게로 시선을 돌린듯 했다. 그래서 명절이며 생일이면 ,피붙이도 챙겨주지않는 내게 음식을 해오고 함께 등산을 하고 집앞 개천을 걸어주고, 여간 고마운게 아니었다. 고마워해야 하는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턴가, 내가 그 친구로부터 '관리'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녀사이에만 '어장관리'가 있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나만의 착각일수 있지만, 아무튼 그런 찜찜한 생각을 하게 됐다.

모든 약속과 만남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친구가 원하는시간,원하는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우리집에 오는것도 어느때부턴가 코로나를 이유로 대중교통 대신 남편 차를 타고 오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면 나는 완전 가시방석에 앉은 사람이 돼버리곤 했다. 남편은 여자 혼자 사는집이라고 올라오지 않고 밖에서 줄담배를 피워가며 기다리고 구는 시간 가는줄 모르고 수다를 떨어대고, 친구가 해온 음식은 내 입에 맞지않고..물론, 지금도 그 마음만은 고맙지만 난 그관계가 피곤해졌다.



그러다 계절도 바뀌고 밖에서 나이브하게 한번 보고싶어 톡에다 그리 썼더니 "좋은날 오면 봐"라는 애매한 답이 돌아왔다. 뭐지? 하고는 한대 맞은 기분이 됐다...그러고 있는데 모월모시가 되자, 대뜸 어디서 몇시에 보자,라는 톡이 왔다. 아, 얘는 자기 스케줄에 의해서만 움직이는구나. 자기 계획에 없는 만남은, '좋은날 오면'으로 거절하는 타입이구나, 했다.




그리고는 그 좋은날이 다가올 즈음, 나는 속이 다 보이는 구실로 그 친구의 제의를 거절했다. 그리고, 그럴필요까진 없음에도 그 친구 톡을 막았다. 톡옆의 "1"이 무심히 떠있는 동안 그 친구가 받았을 배반과 모욕감에 대해선 충분히 미안하다. 하지만, 모든걸 자기식으로, 자기 편할때만 하려하고 그럼으로서 상대를 자기 밑에 두고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그 친구의 방식에 난 동의할수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즉, "이별을 하고 건강해지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이후로 1년간 그 친구와는 아무 교류가 없다.

내가 그닥 잘한 짓도 아니지만, 수십년 우정을 그렇게 관리차원으로 몰아간 상대에게도 일말의 책임은 있다고 본다.

우리가 사랑이라, 우정이라, 선의라 부르는 것들은 진정 그 속에 '선'만을 담고 있는가하는 생각을 자주 해보게 된다.혹시 그들이 날 자기들의 방식으로 양육하고 가스라이팅하려는건 아닐까ㆍㆍㆍ

'


요즘 계속 어지럼증에 시달리다보니 책도 제대로 못보고 좋아하는 불어 공부도 못하고 거의 종일 소파에 쓰러져있는 날들이 이어진다. 해서, 오늘 내 주치의에게 가서 한대에 9000원짜리 정맥주사까지 맞고 왔다. 내일은 좀 나을까...

혹시나 즐거운 이별이 아닌 쓰라린 이별을 해 그리움만 쌓여가는 누군가를 보게 되는건 아닐까...





이전 11화지연된 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