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하루키와 나는 이퀄하다?>

개인이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방식에 흥미...

by 박순영

언젠가 하루키 에세이를 읽다보니 자기는 겁이 많아서 데드라인이 정해진 청탁은 웬만해선 안받고 할수없이 받는 경우엔 미리 써두는 습관이 있다고 했다. 예로, 매주 에세이를 기고하기로 돼있으면 최소 일주일치를 미리 써둔다는 얘기다. 그걸 보고 천하의 하루키도 마감일은 무섭구나, 하며 웃은적이 있다.



겁없는 이가 있다면 그는 아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일것이다. 더군다나 나처럼 온통 유리멘탈에 겁으로 똘똘뭉쳐있는 인간의 시각으로는 더더욱 그렇다.



난 호환마마, 불법 비디오보다도 무서운게 바로 뻥튀기다. 어릴적 그것때문에 놀림도 많이 당하고 손가락질도 당하고 소문도 나고 그랬다.

내가 살던 곳엔 조막만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그 골목 입구에 오래된 은행나무 한그루가 있어 가끔은 거기서 무녀가 굿을 하고 그러기도 했다. 그 정도야 구경거리도 되고 좋았는데 어느날, 그 앞에 덩치 큰 대포같은 기계 하나가 떡하니 와있는게 아닌가.



물론 어린 난 그게 뭔지 몰랐고 다행히 며칠은 별탈없이 그앞을 통과했다. 그러다보니 슬슬 호기심이 발동해 어느날은 아예 작정을 하고 뻥튀기장수를 기다렸고 드디어 그가 리어카에 기계를 싣고 오는게 보였다. 내 오늘은 기필코 저놈의 정체를 밝혀내리라, 마음먹고 아예 친구들을 불러내 그앞에 나란히 쪼그리고 앉았다. 드디어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얼마 있다 그 아저씨가 뭐라고 소리치는게 들리자 친구들은 저마다 두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 이유를 알수 없던 나의 그 다음은 상상에 맡긴다.



난 경천동지라는게 이럴때 쓰이는말이라는걸 뒤늦게 알았고 그 다음부터 벙튀기만 보면 마치 둘레길이라도조성된듯 온 동네를 '그녀석'을 피해 빙 돌아 다니곤 했다. 어쩌다 집 가까이 자리라도 잡는 날은 내 제삿날이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바들바들 떨면서 밖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처음엔 나의 그런 기이한 행동의 원인을 모르던 친구들도 하나 둘 눈치채기 시작했고 급기야 동네방네 소문이 나고 말았다. 그당시엔 그야말로 누구네 숟가락 젓가락이 몇갠지도 다 알던 시절이라 더더욱...



그런데 지금도 야속한것은 녀석의 어마무시한 그 굉음보다 같이 있던 친구들이다. 왜 그들은 내게 알려주지 않았는가 귀를 막아야 한다고. 비겁하지 않은가. 완전 무방비상태로 당한 내가 황망해하고 겁을 먹자 그들은 내게 손가락질하고 겁보라고 놀려대고 소문을 냈다. 나의 약점이라면 약점일수 있는 부분을 사정없이 찔러대고 까발리고 그랬다 그들은.

이후로, 난 가까운 사람을 믿지 않는 버릇이 생긴거 같다. 가까울수록 배반한다는.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어느 유명 감독이 한 말이 떠오른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것은 개개인이 저마다의 약점을 드러내는 방식에 있다'고 한 그말이..

남의 약한 부분은 이해하려하고 보완해줘야 하는게 아닌가?.그럼에도 우린 그걸 빌미로 조롱하고 협박하고 장난치고 때로는 그런 심리, 행위를 그럴싸한 말들로 포장한다. 관심, 우정, 사랑.....인간에 대해 그닥 환상이 없는 나같은 인간도 이 부분은 안타까운게 사실이다. 최소한의 휴머니즘은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무라카미 하루키



다시 하루키 이야기로 돌아가서, 하루키는 대인관계도 소심한 편이고 낯을 많이 가리고 숫기도 없고 게다가 데드라인 공포증까지 있어 이런 자기를 숙지하고 있는 소수의 사람, 해당 출판사하고만 작업을 한다고 한다.즉 자신의 약점을 캐릭터로 존중해주는 그런 파트너하고만 일을 한다는 얘기가 되리라.

이부분, 1년에 장편 두어편씩을 떡하니 출간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비교되는 지점인데, 누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그들 개개인의 작업방식이고 취향이라 보는게 맞을것이다.


왜 우린 모두 똑같아야 하는가. 왜 나의 약점을 꽁꽁 숨기고 아닌척 해야하는거, 라는 질문은 꽤 심각한 사유를 요하는 부분인것 같다. 쉽게 대답한다면 편견, 아집, 이런게 답이 될수도 있겠지만...



난 하루키가 아니어서 그닥 데드라인을 무서워히진 않는다.오히려 마감시간보다 일찍 송고를 하는 버릇이 있고 그것이 곧 글의 퀄리티와 연결되는건 아니지만, 아무튼 빠르게 쓰는 재능? 정도는 있는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마감시간에 민감한 하루키를 바보라 놀려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루키도 내가 뻥튀기를 무서워한다고 비웃지는 않으리라. 우리 둘 사이엔 그런 믿음같은게 암묵적으로 존재한다.


솔직히 난 법으로 아예 뻥튀기를 금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걸 생계로 삼는 많은 이들이 있으니 어불성설임을 잘 안다.

내가 피해 다닐밖에...




이전 07화에세이<동거에 대한 나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