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위로
하루키가 '소확행'이란 단어를 조어한건 아마도 그 외에 누릴수 있는 큰? 행복이 많아서는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만 해도 소확행이 전부다. 다시말해 선택적 행복으로서의 소확행이 아니라 이 자체가 소확행이고 이 이상은 없다는것이다. 아침에 별일 없이 눈 뜨고 숟가락 들 힘은 남아 아침 먹고 운동하고 노트북 켜고 브런치 올리고 이런게 다 소확행 아닌가.
이렇듯 소확행이 전부인 사람들이 허다하다. 일상에 큰 탈이 나지 않으면 그걸로 감사하고 만족하는.
그런 의미에서 소확행은 주어진현재, 주어진 네것에 만족하라는 어드바이스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지리도 못난 연애로 된통 당했던 지난 겨울, 어느 친구가 말했다. 너보면 그냥 글이나 쓰고 책보고 하는 조용한 성품인데 어쩌다...
아마도 큰 욕심내지 않고 작은 것들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사는 니가 어쩌다 그런일을 당했냐는 뜻일게다. 내가 베셀 작가라도 돼서 돈을 긁어모으는것도 아니고 빠듯한 수입으로 근근이 살아간다는 말을 그리 표현한것이리라. 그만큼 별다른 욕심없이 조금은 선한 그런 캐릭터임을 에둘러 말한건인데. 그럼 딱히 그런 모진 일을 당할 이유가 없지않느냐, 뭐 그런 얘긴거 같은데....
세상은 있는자가 없는자를 짓밟을때가 다반사지만 똑같이 없는 사람이 없는 사람을 해코지 하는 하는 일도 다반사다. 그역시 소확행 외에는 달리 누릴게 없는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이었고 특별히 나쁘다, 독하다는 말이 들려온적도 없는 어찌보면 평균정도의 인성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도 왜 내게는 그리도 모질게 굴고 나의 재물을 탐하고 나를 이리저리 이용하고 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 안에는 소확행 따위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탐욕의 그림자가 드리워있기 때문이라는게 내 결론이다. 그는 결코 평범한 인성도 선한 소시민도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가면. 어쩌면 그 정도의 연기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온 내가 못났고 부끄러울 지경이다...
우리에게는 저마다 주어진 운명, 즉 평생의 '꼬라지'라는게 있다고 하지 않는다. 내가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나이들고 나니 남은생도 지나온 생과 별반 다를바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무에 그리 특별하고 대박사건이 일어나랴. 늘 그래온 것처럼 작은 기쁨,실망 , 만족 , 그런것들로 여생도 이어지리라는걸 난 잘 안다.
다시말해 하루키는 선택적 행복으로서의 '소확행'을 말한게 아니라 소시민들의 유일한 행복을 그만의 코드로 그런식으로 언급함과 동시에 위로를 건넨것이다.
하루키의 소확행은 단연 마라톤과 번역으로 알고 있다. 쉬고 싶을때는 번역을 한다는 글을 읽고 역시 유전자가 다른 인간이 있구나, 하고 감탄한 적이 있다. 아무튼, 하루키의 소확행과 나의 소확행이 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는 번역을 하면서 나는 흘러간 팝이나 샹송을 들으면서 지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것이면 족하고 서로의 '다름'을 비난하고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
안분지족으로 요악될수 있으리라 소확행은. 그렇다면 대부분의 소시민들은 하루종일 행복한 셈이다. 소소한 일상 매순간이 다 소확행이므로...